<산 너머 남촌에는>
1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 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 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2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넓은 벌엔 호랑나비 떼.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3
산 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 꽃 아래엔 누가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영에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네.
끊였다 이어 오는 가느다란 노래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네.
*조선 문단18호(1927.1)수록
7.5조를 리듬으로 한 민요풍의 시
"산 너머 남촌"은 미지의 세계이지만, 아련한 그리움이 깃들여 있는 곳이다.
*주제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
<송화강 뱃노래>
새벽 하늘에 구름장 날린다.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구름만 날라나
내 맘도 날린다.
돌아다 보면은 고국이 천리런가.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온 길이 천 리나
갈 길은 만 리다.
산을 버렸지 정이야 버렸나.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몸은 흘러도
넋이야 가겠지.
여기 송화강, 강불이 운다야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강물만 우더냐
장부도 따라 운다.
*삼천리(1935.3) 수록
민요조에 바탕을 둔 자유시. 조국을 떠나 앞길을 예축할 수 없는 미지의 나라를 향해 가는 사나이의 씩씩한 가상, 그러면서도 애절한 심정이 어울려 있는 마음을 읊었다.
*주제는 우국지정(憂國之情)
<웃은 죄>
지름길 묻길래 대답했지요.
물 한 모금 달라기에 샘물 떠 주고,
그러고는 인사하기에 웃고 받았지요.
평양성에 해 안 뜬대도
난 모르오,
웃은 죄밖에.
*신세기(1938.3)수록
우물가의 정경을 민요조로 표현한 시로서 기본 음수유은 4. 4 .5조.
*주제는 아련한 그리움
<북청 물장수>
새벽마다 도요히 꿈길을 밟고 와서
머리맡에 찬물을 쏴- 퍼붓고는
그만 가슴을 디디면서 멀리 사라지는
북청 물장수
물에 젖은 꿈이
북청 물장수를 부르면
그는 삐꺽삐꺽 소리를 치며
온 자취도 없이 다시 사라져 버린다.
날마다 아침마다 기다려지는
북청 물장수.
*동아일보(1924.10.24)수록
청각적인 정서와 반복법의 구사로 독자에게 북청 물장수의 근면한 성격의 정서적인 공감을 주고 있다.
*주제는 북청 물장수를 통한 생활에의 서정적 애착.
<오월의 향기>
오월의 하늘에 종달새 떠올라 보표(譜表)를 그리자
산나물 캐기 색시 푸른 공중 치어다 노래 부르네 그 음부(音符) 보고 봄의 노래를.
봄의 노래 바다에 떨어진 파도를 울리고 산에 떨어진 종달새 울리더니 다시 하늘로 기어올라
구름 속 거문 소나기까지 울려 놓았네.
거문 소나기 일만 실비를 몰고 떨어지자 땅에는 흙이 젖물같이 녹아지며, 보리밭이 석 자나 자라 나네.
아 오월의 하늘에 떠도는 종달새는 풍년을 몰고 산에 들에 떨어지네. 떨어질 때 우린들 하늘 밖 이라 풍년이 안오랴.
오월의 산에 올라 풀 베다 소리치니 하늘이 넓기도 해 그 소리 다시 돌아 앉으네. 이렇게 넓다라면 날아라도 가 보고 싶은 일 넋이라도 가 보라 또 소리쳤네.
벽에 걸린 화액(畵額)에 오월 바람에 터질 듯 익은 내 나라가 걸려 있네. 꿈마다 기어와선 놀다가도 날 밝기 무섭게 도로 화액 속 풍경화가 되어버리는 내 나라가.
*조선지광(1927.5)수록
<강이 풀리면>
강이 풀리면 배가 오겠지
배가 오면은 임도 탔겠지
임은 안 타도 편지야 탔겠지
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
임이 오시면 이 설움도 푸리지
동지 섣달에 얼었던 강물도
제멋에 녹는데 왜 아니 풀릴까
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
*파인의 다른 작품이나 마찬가지로 역시 민요풍에 의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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