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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선 창극의 소리가문 김창룡명창 가문

바보처럼1 2006. 6. 2.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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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룡명창(1872(고종 9)∼1935)은 고종 말기와 민족항일기에 활약한 5명창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충청남도 서천군 횡산리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할아버지는 진양조를 처음으로 판소리에 넣었다는 김성옥(金成玉)이고, 아버지는 판소리에 삼공제비를 응용하였다는 김정근(金正根)이다. 따라서, 판소리 명문에서 태어난 셈이다. 아우 창진(昌鎭)도 명창으로, 한때 고종으로부터 참봉의 직계를 받기도 하였다. 7세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판소리를 배우고, 후에 이날치(李捺致)에게 1년간 판소리를 배웠다. 그 뒤 오랫동안 홀로 공부하다가 32세 때 서울에 올라와 연흥사(延興社)창립에 공헌하였고, 1933년에는 송만갑(宋萬甲)·이동백(李東伯)과 조선성악연구소를 만들어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 창극공연에도 참가하였다. 적벽가와 심청가를 잘하였고, 특히 심청가 중에서 ‘꽃타령’과 적벽가 중에서 ‘삼고초려(三顧草廬)’ 대목을 잘하였다. 원래 그의 집안은 경기도 및 충청도 지역에 전승되는 중고제(中古制)소리를 이어오고 있었는데, 김창룡도 또한 자기 가문의 소리제를 그대로 이었다고 볼 수 있으나, 전승이 끊어졌고 취입한 음반만 남아 있다. 그의 소리는 오늘날 전승이 끊어진 중고제 판소리연구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현재 남아 있는 여러 음반 중에서 적벽가 중 ‘삼고초려’, 단가 중 ‘장부한(丈夫恨)’, 수궁가에서 ‘수정궁(水晶宮)들어가는데’, 심청가에서 ‘화초타령’은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김창룡의 할아버지인 김성옥 명창은 가왕(歌王)이라는 찬사를 받은 송흥록과는 처남, 매부의 관계다. 강경 일끗리에 살던 김성옥은 여산의 한 동굴에 들어가 동굴독공을 하여 진양조를 창시하였다. 독공에서 심한 관절염의 일종인 학슬풍을 얻은 김성옥은 송흥록에게 진양을 전해주고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김성옥이 타계한 후 창룡과 창진 두 아들을 데리고 장항 빗금내로 이주를 한 김정근은 그 곳에서 판소리의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이동백과 김창룡이라는 걸출한 두 명창을 키워낸 것이다. 김정근은 무숙이 타령을 잘했으며 상궁접이라는 독특한 장단의 창법을 창안해 내었다고도 한다. 김창룡 명창의 아우인 김창진은 형과 함게 전국의 소리판을 누비던 당대 명창들의 수행고수였다. 그러나 소리꾼과 고수의 대우가 현저하게 차이가 나자 부여의 한 사찰 암자로 들어가 10년이나 되는 긴 시간을 소리공부를 하였다. 김창진 명창에게 소리를 배운 고 박동진 명창은 “김창진 선생님의 소리는 맑고 청아하여 오히려 형인 김창룡 명창을 능가하였다.”고 하였으며 득음을 한 후 서울로 올라가 소리 한대목으로 청중을 압도하자 형과 당대 명창들에게 질시를 받아 서천 너더리로 돌아와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판교에 계시는 동안에도 선생님은 참 깨끗하셨어요. 나중에는 마음고생이 너무 심하셔서 아편에 손을 대기도 하셨지만 돌아가시는 날까지 깨끗하게 돌아가셨으니까요.” 10여 년 전인가 노제자의 눈가에 선생님을 그리는 듯 이슬방울이 맺히는 것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뭉클했던 기억이 난다.  

『조선창극사』는 정노식(鄭魯湜)이 조선 영조 때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판소리 명창·명고수 등 88명의 더늠과 일화 등을 정리한 책으로 1940년 조선일보사 출판부에서 간행되었다. 서언(緖言)에는 신위(申緯)의 관극시(觀劇詩)를 비롯하여 이건창(李建昌)의 배령이수(裵伶二首) 등 정조∼고종 때까지의 여러 학자들의 시문 가운데 판소리와 관계있는 내용들을 뽑아 실었으며, 이어 조선창극조의 유래와 변천·발달, 조직과 장단, 창극조 광대의 효시 등에서는 판소리에 관한 이론 및 사적(史的) 고찰을 시도하였다. 본편에서는 권삼득(權三得)으로부터 당시의 명창 박녹주(朴綠珠)·김여란(金如蘭) 등에 이르기까지 역대 남녀 명창 88명의 약전(略傳)과 더늠, 누구의 제[式·類] 등을 소개하였다. 역대의 기록에 근거를 두지 못하고 재래의 구전(口傳)이나 당시 생존하던 명창들의 구술을 중심으로 소략하게 엮어졌다는 한계성이 있으나 판소리에 대하여 최초로 체계적인 정리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국악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 조선창극사에서 정노식은 “조선의 소리는 김문에서 만들어지다 시피 했다”고 적고 있다. 중고제를 창시한 김성옥과 그 아들 김정근, 그리고 손자인 김창룡, 김창진 등 3대에 걸쳐 판소리의 명창 집안으로 전해진 김문의 소리. 이제는 더 이상 그 완판을 들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아직도 판소리의 대목대목 들려오는 소리들을 찾아 중고제의 재정리를 하는데 주력해야 할 것 같다.

출처 : 하늘을 보세요. 그 곳에 꿈이 ~
글쓴이 : 늪바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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