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10-4호인 선자장(扇子匠) 보유자 엄주원(嚴柱元) 명인은 1996년 3월 29일 지정이 되었다. 전주시 덕진구 인후3동 433-1에 소재한 공방에는 각종 부채들이 벽면 가득히 진열이 되어있다. 늦은 시간 전시관을 찾아 들어가니 햇살 엄재수씨(남, 41세)가 일행을 맞는다. 부친의 뒤를 이어 선자장의 전수자로 기능을 이어가고 있는 엄재수씨. 4대째 선자장으로 맥을 잇고 있는 가문의 장인답게 부채에 대한 역사와 각종 기능, 그리고 부채의 구별법 등을 자세하게 설명을 한다. 처음으로 본 부채의 형태가 다채로운데 일일이 진열이 된 부채와 공구 등을 꺼내 보이면서 설명을 한다. “아버님이신 미선 엄주원 선생께서 올 3월에 세상을 뜨셨습니다. 아버님이 일구어 놓으신 가업을 제가 물려받아 더 연구하고 우리 전통을 지켜 가리라 마음먹고 이 일에 온 정성을 다하고 있는 것이죠.” 수많은 자료들을 하나하나 들어 보이면서 설명을 하는 임재수씨의 표정에는 굳은 결의가 엿보인다. 어릴 적부터 아버님이 만드시는 부채의 모습을 보면서 자랐고 언젠가는 부친의 가업을 물려받아야겠다고 마음은 먹고 있었지만 그는 대학에서는 전혀 무관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제가 본격적으로 부채를 만드는 일에 뛰어든 것은 1991년부터입니다.” 대학을 마치고 난 뒤 부친의 자신의 의지대로 부친의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시작을 했다고 한다. “합죽선은 저희 전주에서만 생산이 됩니다. 그렇기때문에 전주부채하면 우선 합죽선을 떠올리는 것이죠.” 합죽선(合竹扇)이란 말 그대로 대나무를 합하여 만든 부채라는 뜻이다. 대나무를 껍질만 남기고 얇게 깎아서 풀로 붙여서 만든 부채를 말한다. 대나무를 구할 때는 선자장이 직접 현장에 내려가 대를 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알았다. 현재는 죽상(竹商)을 통해 대나무를 공급받지만 과거에는 만드는 사람이 현지에 가서 직접 대를 잘라 가지고 왔다고 한다. 그리고 <변죽>이라 불리는 부채의 양끝에 쓰는 대나무는 그 마디가 촘촘하고 대의 두께가 굵은 재료를 최고로 친다. 이러한 종류의 대나무는 경남 진주나 거제도 지방에서 구할 수 있고, 이 재료는 현재까지도 직접 가서 구해온다. 부채를 만드는 공장도 여러 가지다. 부채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대나무는 다음과 같은 정련 작업을 거친다. 대나무는 마디를 기준으로 적당한 길이로 잘라 진을 빼기 위하여 양잿물에 삶은 후 열흘 정도 햇볕을 쪼여 바래게 한다. 그 다음 사나흘 동안 물에 담가두었다가 다시 물에 삶아낸다. 그래야 대나무의 초록빛이 없어지고 맑은 빛을 띤 고운 색이 나타난다. 이것을 다시 산 속에서 흐르는 물에 대엿새 동안 담가 불린다. 합죽선은 부채살의 수에 따라 5살 간격으로 10살 부채에서 50살 부채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예전의 부채 만드는 일은 작업의 과정에 따라 전문성을 가진 골선방, 낙죽방, 광방, 사북방, 도배방, 그림방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골선방이란 정련 공정을 거친 대나무는 겉대작업을 하는데 대의 속을 칼로 도려내면 부채살이 되는 겉대가 된다. 불린 대나무를 ‘방목’이라 불리는 나무 도마에 올려놓고 여러 종류의 칼로써 대속을 깎아낸다. 이 작업을 부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그만큼 작업의 정교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50살 부채의 경우 양쪽 끝의 마디가 촘촘하고 두께가 두터운 두 변죽을 제외하고 48개의 살대를 96개의 겉대로 만든다. 즉 두 개의 겉대를 붙여 하나의 살대를 만드는데, 하나를 장살(또는 장시) 다른 하나를 도막살(내시)이라 한다. 도막살은 장살의 반정도의 길이만큼 잘라서 붙인다. 도막살 쪽은 후에 한지를 붙이는 곳으로 장살 겉대의 속을 파낸 부분은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살대를 붙이는 재료는 현재 아교를 일반적으로 사용하지만 전통적인 재료는 민어 부레나 민어 뼈를 삶아 만든 풀을 썼다고 한다. 풀칠한 살대 마흔여덟 개는 함께 묶어 하루 동안 방안에서 말린다. 낙죽방은 변죽과 살대에 인두로 무늬를 새기는데 이를 ‘낙죽’이라 칭한다. 무늬의 대상은 앞서 말한바와 같이 박쥐, 매화, 국화가 된다. 광방이란 낙죽 작업을 마친 살대를 매끄럽게 만드는 작업을 하는 곳을 말한다. 먼저 곱지 않은 부분을 칼로 깎아내고 거친 부분은 끌과 페이퍼로 닦아서 반질반질하게 광을 낸다. 사북방은 부채의 고리를 ‘사북’이라 하고 고리를 박음으로써 부채의 형태는 완성되지만 합죽선의 완성은 한지에 그림을 그려야 이뤄진다. 살대의 고리박을 지점에 송곳으로 구멍을 뚫는데 몇 개의 살대를 한꺼번에 모아 송곳을 대고 활로 비벼서 작업을 한다. 도배는 살대에 한지를 붙이는 작업으로, 합죽선에 붙이는 한지는 한지제조업체에 특별 주문한다. 전래로는 송광지가 유명했고, 과거 진상품의 경우 선자지라 하여 고급한지를 사용했다고 전한다. 현재는 단순히 한지만 붙이는 부채가 대다수지만, 과거에는 기름을 먹인 한지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 경우 그림을 그릴 수 없음은 당연하다. 전주가 전래로 한지제조에 유명세가 있었다는 것은 합죽선의 발달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림방에서는 형태가 갖춰진 부채의 한지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을 ‘환친다’고 한다. 화가의 비속어로 ‘환쟁이’라는 말이 쓰이는 것과 같은 우리의 전래어법이다. 하지만 호랑이나 사슴과 같은 동물의 그림과 무궁화 꽃과 같은 그림은 정밀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도배작업을 마친 한지에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먼저 그림이나 글씨를 한지에 완성해서 도배하는 경우가 많고, 이 경우 도배와 환치는 것이 순서가 바뀜은 당연하다. “예전에는 경공장과 외공장이 있었어요. 경공장은 내공장이라고도 하는데 주로 진상부채를 만들던 곳을 말하죠. 이 부채들은 여성들이 많이 이용을 하였고 사대부들이 주로 하사품으로 받아 사용을 하였습니다. 이와는 달리 외공장에서 만든 부채들은 한량부채라고도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사용을 했으며 튼튼하고 남성적인 것이 특징입니다. 경공자의 부채끝이 좁은데 비해 외공자의 부채들은 끝이 넓고 튼실한 것이 특징입니다.” 밤새도록 끝날 것 같지 않은 엄재수씨의 설명이다. 그는 아직은 개인전을 열지 않았지만 지금 작업을 하는 모든 과정이 끝나면 개인전도 가질 계획이라고 한다. “부채에 옻칠을 한 것이 가장 귀한 것입니다. 황칠이나 옻칠을 한 것을 칠선이라고 하는데 아주 고귀한 분들이 사용을 하는 것이죠. 그리고 360도로 펼쳐지는 대륜선은 우산과 해를 막는 양산으로도 사용한 멋진 부채입니다.”그의 전시실에 진열된 부채들의 모습에서 그만의 노력이 얼마나 땀과 노력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나를 가늠할 수 있다. “아직도 저는 부친께서 사용하시던 도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손때가 붙어 윤기가 흐르는 작업도구를 들여다보면서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서 4대째 대물림을 하는 명장의 전승자다운 면모를 본다 |
출처 : 하늘을 보세요. 그 곳에 꿈이 ~
글쓴이 : 늪바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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