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오 일도...........내 소녀

바보처럼1 2006. 6. 7. 02:22

<내 소녀>

 

빈 가지에 바구니 걸어 놓고

내 소녀 어디 갔느뇨.

 

.....................

 

 

박사(薄紗)의 아지랭이

오늘도 가지 앞에 아른거린다.

 

*시원(1936.8) 수록

점선은 많은 여운과 함축성을 지닌 하나의 언어다.

*주제는 봄의 화사한 서정과 낭만.

 

 

<누른 포도잎>

 

검젖은 뜰 위에

하나 둘.......

말없이 내리는 누른 포도잎.

 

오늘도 나는 비 들고

누른 잎을 울며 쓰나니

 

언제나 이 비극 끝이 나려나!

 

겁젖은 뜰 위에

하나 둘......

말없이 내리는 누른 포도잎.

 

*시원(1935.12) 수록

오 일도는 "문학을 그 시대의 반영이라 하면, 문학의 골수인 시는 그 시대의 대표적 울음일 것이다" 고 했다.

작자는 누른 포도잎에서 조국의 모습을 보고 있다.

 

 

<내 연인이여! 가까이 오렴>

 

내 연인이여! 좀더 가까이 오렴

지금은 애수의 가을. 가을도 이미 깊었나니.

 

검은 밤 무너진 옛 성 너머로

우수수 북성(北城) 바람이 우리를 덮어 온다.

 

나비 날개처럼 앙상한 네 적삼

얼마나 차냐? 왜 떠느냐? 오오 매 무서워라.

 

내 연인이여! 좀더 가까이 오렴

지금은 조락의 가을. 때는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

 

한여름 영화를 자랑하는 나뭇잎도

어느 덧 낙엽이 되어 저- 성뚝 밑에 훌쩍거린다.

 

잎사귀 같은 우리 인생 한번 바람이 흩어 가면

어느 강산 또 언제 만나리오.

 

좀더 가까이 좀더 가까이 오렴

한 발자치 그대를 두고도 내 마음 먼 듯해 미치겠노라.

 

전신의 피란 피 열화같이 가슴에 올라

오오 이 밤 새기 전 나는 타고야 말리니.

 

깜-한 네 눈이 무엇을 생각하느냐.

 

좀더 가까이 좀더 가까이 오렴

오늘 밤엔 이상하게도 마을 개 하나 짖들 않는다.

 

어두운 이 성뚝 길을 행여나 누가 걸어오랴

성위에 한 없이 짙어가는 밤- 이 한밤은 오직 우리의 전유(專有)이오니.

 

네 팔이 내 목을 안아라. 우리는 두 청춘, 청춘아!

제발 걸어 다오.

 

*시원5호(1935.12)수록

오일도는 철학을 전공한 시인이기에 그의 시에서 그런 사변적인 면을 찾아 해석해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노변(爐邊)의 애가>

 

밤새껏 저 바람 하늘에 높으니

뒷산에 우수수 감나무 잎 하나도 안 남았겠다.

 

계절이 조락(凋落),잎잎마다 새빨간 정열의 피를

마을 아이 다 모여서 무난히 밟겠구나.

 

시간조차 약속할 수 없는 오오 나의 파종(破鍾)아울적의 야공을 이대로 묵수(默守)하려느냐?

 

구름 끝 열규(熱叫)하던 기러기의 한 줄기 울음도 멀리 사라졌다, 푸른 나라로 푸른 나라로-

고요한 노변에 홀로 눈 감으니

향수의 안개비 자욱히 앞을 적시네.

 

꿈속같이 아듯한 옛날, 오 나의 사랑아

너의 유방(乳房)에서 추방된지 이미오래라.

 

거친 비바람 먼 사막의 길을

숨가쁘게 허덕이며 내 심장은 찢어졌다.

 

가슴에 안은 칼 녹스는 그대로

오오 노방(路傍)의 죽음을 어이 함을 것이냐!

 

말없는 냉회(冷灰) 위에 질서없이 글자를 따라

모든 생각이 떴다- 잠겼다- 또 떴다-

 

--앞으로 흰눈이 펄펄 산야(山野)에 내리리라

--앞으로 해는 또 저무리라.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저 황막한 벌판을 희게 덮어다오.

 

차디찬 서리의 독배(毒杯)에 입술이 터지고

무자비한 바람 때 없이 지내는 잔 칼질에

 

피투성이 낙엽이 가득 쌓인

대지의 젖가슴 포-트립 빛의 상처를.

 

눈이여! 어서 내려 다오

저어 앙상한 앞 산을 고이 덮어 다오.

 

사해(死骸)의 한지(寒枝)위에

까마귀 운다

금수(錦繡)의 옷과 청춘의 육체를 다 빼앗기고

한위(寒威)에 쭈그리는 검은 얼굴들.

 

눈이여! 퍽퍽 내려 다오

태양이 또 그 위에 빛나리라.

 

가슴 아픈 옛 기억을 묻어 보내고

싸늘한 현실을 잊고

성역(聖域)의 새 아침 흰 정토(淨土)위에

내 영을 쉬이려는 희원(希願)이오니.

 

 

<오월 화단>

 

5월의 더딘 해 고요히 내리는 화단.

 

하루의 정열도

파김치같이 시들다.

바람아, 네 이피리 하나 흔들 힘 없니!

 

어두운 풀 사이로

월계의 꽃조각이 환각(幻覺)에 가물거리다.

 

 

 

<검은 구름>

 

높이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가슴 한복판을 누린다.

 

내 무슨 죄로

두 손 가슴에 얹고 반듯이 침대에 누워

취행 시간을 기다리느뇨.

 

그러나 모두 우습다.

그러나 모두 무(無)다.

 

눈만 달아

벌레 먹은 육체, 내려다볼 때에

인생은 결국 동물의 한 현상이어니.

 

백 년도 그렇고......

천 년도 그렇고.....

 

내 한 가지 희원(희원)은

나 간 후

뉘우칠 것도 꺼릴 것도 아무것도 없게 하라.

 

 

<코스모스>

 

가을볕 엷게 내리는 울타리 가에

쓸쓸히 웃는 코스모스꽃이여!

 

너는 전원이 기른

청초한 여시인(女詩人).

 

남달리 심벽(深僻)한 곳, 늦 피는 성격을 가졌으매

세상의 영예는 저 구름 밖에 멀었나니.

 

 

<저녁놀>

 

작은 방 안에

장미를 피우려다 장미는 못 피우고

저녁놀 타고

나는 간다.

 

모가지 앞은 잊어 버려라.

하늘 저편으로

둥둥 떠 가는

저녁놀 !

 

이 우주에

저보담 더 아름다운 것이 또 무엇이랴.

저녁놀 타고

나는 간다.

 

붉은 꽃밭 속으로--

붉은 꿈나라로--

 

*오일도의 마지막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