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굴뚝노래.......김 상용

바보처럼1 2006. 7. 6. 21:53

<굴뚝노래>

 

맑은 하늘은 새 님의 오신 길!

사랑같이 아침볕 밀물짓고

"에트나"의 오만한 "포오즈"가

겨웁도록 아름져 오르는 흑연(黑煙)

현대인의 뜨거운 의욕이로다.

 

자지라진 "로맨스"의 애무를

아직도 나래 밑에 그리워하는 자여!

창백한 꿈의 신부는

골방으로 보낼 때가 아니냐?

 

어깨를 뻗대고 노호(怒號)하는

기중기의 팔대가

또 한 켜 지층을 물어 뜯었나니......

 

"히말라야"의 추로(墜路)를 가로막은 암벽의

심장을 화살한 장철(長鐵)

그 위에 "메"가 내려

승리의 작열이 별보다 찬란하다.

 

동무야 네 위대한 손가락이

하마 깡깡이의 낡은 줄이나 골라 쓰랴?

착공기(穿孔器)의 한창 야성적인 풍악을

우리 철강 위에 벌여보자

오 우로(雨露) 물결의 포효(咆哮) 지심(地心)이 끓고

창조의 환희! 마침내 넘치노니

너는 이 "심포니"의 다른 한 "멜로디"로

흥분된 호박빛 세포 세포의

화려한 향연을 열지 않으려느냐?

 

 

<눈 오는 아침>

 

눈 오는 아침은

가장 성스러운 기도의 때다.

 

순결의 언덕 위

수묵(水墨)빛 가지가지의

이루어진 솜씨가 아름다와라.

 

연지는 새로 탄생된 아기의 호흡

닭이 울어

영원의 보금자리가 한층 더 다스하다.

 

*이 '눈 오는 아침' 이나 다음의 ' 괭이'는 경향이 같은 시라고 할 수 있다.

이 두편의 시는 '남으로 창을 내겠소'나 마찬가지로 자연 속에서 조용히 생을 관조하면서 살아 가고자 하는 그의 정신적 자세가 잘 나타나 있는 작품들이다.

이런 정신 자세 때문인지 월파는 1945년 조국 광복이 되자 강원도지사로 발령받았으나 곧 사임을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생애를 마쳤다.

 

 

<괭이>

 

넓적 무우룩한 쇳조각, 너 괭이야

괴로움을 네 희열로

꽃밭을 갈고,

물러와 너는 담 뒤에 숨었다.

 

이제 영화의 시절이 이르러

봉우리마다 태양이 빛나는 아침

한 마디의 네 찬사 없어도

외로운 행복에

너는 호올로 눈물지운다.

 

 

<물고기 하나>

 

웅덩이에 헤엄치는 물고기 하나

그는 호젓한 내 심사에 길렸다.

 

돐새 너겁 밑을 갸웃거린들

지난 밤 져버린 달빛이

허무로이 여직 비칠리야 있겠니?

지금 너는 또 다른 웅덩이로 길을 떠나노니

나그네 될 운명이

영원 끝날 수 없는 까닭이냐.

 

*월파 김 상용의 시세계는 정한(靜閑)하고 명량(明凉)하며 관조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태 풍>

죽음의 밤을 어질르고

문을 두드려 너는 나를 깨웠다.

 

어지러운 병마(兵馬)의 구치(驅馳)

창검의 맞부딪침,

폭발, 돌격!

아아 저 포효(咆哮)와 섬광!

 

교란(攪亂)과 혼돈의 주재(主宰)여

꺾이고 부서지고,

날리고 몰려와

안일을 향락하는 질서는 깨진다.

 

새싹 자라날 터를 앗어

보수와 저애(阻碍)의 추명(醜名) 자취하던

어느 뫼의 썩은 등걸을

꺾고 온 길이냐.

 

풀 뿌리, 나뭇잎, 뭇 오예(汚穢)로 덮인

어느 항만을 비질하여

질식에 숨지려는 물결을

일깨우고 온 길이냐.

어느 진흙 쌓인 구렁에

소낙비 쏟아 부어

중압(重壓)에 울던 단 샘물

웃겨 주고 온 길이냐.

 

파괴의 폭군!

그러나 세척과 갱신의 역군(役軍)아,

세차게 팔을 둘러

허섭쓰레기의 퇴적(堆積)을 쓸어 가라.

 

상인(霜刃)으로 심장을 헤쳐

사특, 오만,순준(巡逡) 에어 버리면

순진과 결백에 빛나는 넋이

구슬처럼 새 아침도 빛나기도 하려니.

 

*역사의 회오리바람을 노래한 시이다.

*구치:말이나 수레 따위를 발리 몰아 달림.

*포효: 사나운 짐승이 소리지르는 상태

*주재: 주장하여 처리하는 사람

*저애:저지와 장애가 됨

*오예: 사물이 지저문하고 더러움

*상인: 서슬이 시퍼런 칼날.

 

 

<서글픈 꿈>

뒤로 산

높이 둘리고

돌 새에 샘 솟아 적은 내 되오.

 

들도 쉬고

잿빛 뫼뿌리의

꿈이 그대로 깊소.

폭포는 다음 골(谷)에 두어

안개냥"정적"이 잠기고.....

나와 다람쥐 인(印)친 산길을

넝쿨이 아셨으니

 

나귀 끈 장꾼이

찿을 이 없오.

 

"적막" 함께 끝내

낡은 거문고의

줄이나 고르랴오.

 

긴 세월에게

추억마저 빼앗기면

 

풀잎 우는 아침

혼자 가겠소.

 

*김 상용은 1939년 5월에 처녀 시집<망향>을 문장사에서 간행했는데, 이것은 그의 유일무이한 시집이 되고 말았다. 그는 1951년에 뜻하지 않게 식중독으로 숨을 거두게 된 것이다.

<망향>에는 '남으로 창을 내겠소'이외 27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표지를 태지(苔紙)로 싸서 묶은 이 시집의 제자(題字)를 하나하나 저자으 육필(肉筆)로 써서 간행한 아주 인상적인 시집이다.

 

 

<새벽 별을 잊고>

 

새벽 별을 잊고

산국(山菊)의 "밝음"이 불러도

겨를 없이

길만을 가노라.

 

길!

아아 먼 진흙길

 

머리를 드니

가을 석양에

하늘은 저러히 멀다.

 

높은 가지의

하나 남은 잎새!

 

 

오래만에 본

그리운 본향(本鄕)아.

 

*월파는 그의 시집<망향>에 서문을 대신하여 다음과 같은 단 한 필의 글을 적었다.

"내 인생의 가장 진실한 느껴움을 여기 담는다."

 

 

<기 도>

 

님의 품 그리워.

뻗으셨던 경건의 손길

거두어 가슴에 얹으심은

거룩히 잠그신 눈이

'모습'을 보신 때문입니다.

 

*평론가 김 환태(김환태)는 김 상용을 다음과 같이 평한 바 있다.

" 생을 관조할 수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태도....이와 같은 인생 태도가 빚어 내는 이상은 아마도 창을 남쪽으로 낸 집일 것이요, 그 집을 둘러싼 밭일 것이요, 그 밭에 무르녹는 강냉이일 것이다."

 

 

<한잔 물>

 

목마름 채우려던 한 잔 물을

땅 위에 엎질렀다.

 

너른 바다 수많은 파두(波頭)를 버리고

하필 내 잔에 담겼던 물.

 

어느 절벽 밑 깨어진 굽이런지---

어느 산마루 어렸던 구름의 조각인지

어느 나뭇잎 위에

또 어느 꽃송이 위에

내려졌던 구슬인지---

이름 모를 골을 내리고

적고 큰 돌 사이를 자난 나머지

내 그릇을 거쳐

물은 제 길을 갔거니와.....

 

허젓한 마음

그릇의 비임만을 남긴

아아 애닳은 추억아!

 

 

<해바라기>

 

나도 한낮의 밝은 정기

지그히 미미하나

내 우주의 핵심이어니.....

 

시공(時空)에 초연하고

나를 둘러 세계는 찬연히 돈다.

 

내 응결이 바숴지면

어둠과 쉬되

나비도 춤추고

시냇물도 웃고

구름과 소요(逍遙)하고

적도 아래 우뢰로 아우성치리라.

 

나를 비웃지도, 어찌하지도 못한다.

나는 있기 때문에 없앨 수도 없다.

 

섭리와 함께

새 선미(善美)를 계획도 하려니,

 

나는 아침 이슬에 젖은

동경의 해바라기

아아 영원히 복된 절대로다.

 

 

<어미소>

 

산성(山城)넘어 새벽드리 온 길에

자욱자욱 새끼가 그리워

슬픈 또 하루의 네 날이

내(煙)끼인 거리에 그므는도다.

 

바람 한숨짓는 어느 뒷골목

네 수고는 서푼에 탈피아니

눈물로 잊은 네 침묵의 인고(忍苦)앞에

교만한 마음의 머리를 숙인다.

 

푸른 초원에 방만(放漫)하던 네 조상

맘놓고 마른 목 추기던 시절엔

굴레 없는 씩씩한 얼굴이

태초 청류(太初淸流)에 비췬 일도 있었거니.....

 

 

<가을>

 

달이 지고

귀뚜리 울음에

내 청춘에 가을이 왔다.

 

<황혼의 한강>

 

"고요함"을 자리인 양 편 '흐름'위에

식은 심장같이 배 한 조각이 떴다.

아-- 긴 세월, 슬픔과 기쁨은 씻겨 가고

예도 이젠 듯 하늘이 저기에 그문다.

 

*월파는 "왜 사냐건 웃지요"하는 생활 태도를 지니고 이었고, 또 한편 " 인생은 요강 같다"고 하는 역설적인 태도도 지니고 있었다.

이상의 말들은 그의 인간 편모를 말해 주는 것으로서, 그의 세계는 관조적 세계와 더불어 회의적 세계라는 특성을 이룬다.

 

 

<노래 잃은 뻐꾹새>

 

나는 노래 잃은 뻐꾹새

봄이 어른거리긴

사립을 닫치리라.

냉혹한 무감(無感)을

굳이 기원한 마음이 아니냐.

 

장미빛 그름은

내 무덤 쌀 붉은 깊이어니

이러해 나는

소라같이 서러워라.

 

"때"는 짓궂어

꿈 심겼던 터전을

황폐의 그늘로 덮고.....

 

물 긷는 처녀 돌아간

황혼의 우물가에

쓸쓸히 빈 동이는 놓였다.

 

 

<손 없는 향연>

 

하늘과 물과 대기에 길려

이역의 동백나무로 자라남이여,

손 없는 향연을 벌이고,

슬픔을 잔질하며 밤을 기다리로다.

 

사십고개에 올라 생을 돌아보고

적막의 원경(遠景)에 오열(嗚咽)하나,

이 순간 모든 것을 잊은 듯

그 시절의 꿈의 거리를 배회하였도다.

 

소녀야 내 시름을 간직하여

영혼히 네 가슴 속 신물(信物)을 삼으되

생의 비밀은 비 오는 저녁에 펴 읽고,

묻는 이 있거든 한 사나이

생각에 잠겨 고개 숙이고,

멀리 길을 간 어느 날이 있었다 하여라.

 

*일제의 탄압은 날이 갈수록 더해졌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여 이화 여전에서 미국인 교수들이 물러남과 함께 영문학교육은 철폐되었다. 설 자리를 잃게 된 월파가 그 무렵 쓴 시가  '손 없는 향연'이다.

 

 

<마음의 조각>

 

1

허공에 스러질

나는 한 점의 무(無)로--

 

풀 밑 버레소리에,

생과 사랑을 느끼기도 하나

 

물거품 하나

비웃을 힘이 없다.

 

오직 회의의 잔을 기울이며

야윈 지축(地軸)을 스러워하노라.

 

임금 껍질만한 정열이나 있느냐?

'죽음'의 거리여!

썩은 진흙 골에서

그래도 샘 찾는 몸이 될까

 

3

고독을 밤새도록 잔질하고 난 밤,

새 아침이 눈물 속에 밝았다

 

4

달빛은

처녀의 규방으로 들거라.

내 넋은

암흑과 짝진 지도 오래거니---

 

5

향수조차 잊은 너를

오늘부턴 또야 부르랴?

 

혼자 가련다.

 

6

오고 가고

나그네 일이오

 

그대완 잠시

동행이 되고.

 

7

사랑은 완전을 기원하는 맘으로

결함을 연민(憐憫)하는 향기입니다.

 

8

생의  '길이'와 폭과 '무게' 녹아

한낱 구슬이 된다면

붉은 '도가니'에 던지리라.

 

심장의 피로 이루어진

한 구의 시가 있나니---

 

'물' 과 '하늘'과 '님'이 버리면 외로운 다람쥐처럼

이 보금자리에 쉬이로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문학2호(1934.2)수록

이 태백의 <산중문답>의 영향을 받은 작품.

*주제는 소박한 전원 생활 예찬

*한참갈이: 한참 갈 만한 농토

*구름: 헛된 명리

*왜 사냐건: 왜 사느냐 물으면

 

 

<포구(浦口)>

 

슬픔이 영원해

사주(砂州)의 물결은 깨어지고

묘막(杳漠)한 하늘 아래

고할 곳 없는 여정(旅情)이 고달파라.

 

눈을 감으니

시각(視覺)이 끊이는 곳에

추억이 더욱 가엾고

 

깜박이는 두 셋 등잔 아래엔

무슨 단란(團欒)의 실마리가 풀리는지.....

 

별이 없어 더 서러운

포구의 밤이 샌다.

 

*시집<망향>수록

고독으로 말미암아 오는 여술를 노래한 시.

3연의.....표 부분은 지껄이는 말소리를 나타낸 것

*묘막: 아득하게 먼.

 

 

<반딧불>

 

너는 정밀(정밀)의 등촉

신부 없는 동방(동방)에 잠그리라.

 

부러워하는 이도 없을 너를

상징해 왜 내 맘을 빚었던지

 

헛고대의 밤이 가면

설은 새 아침

가만히 네 불꽃은 꺼진다.

 

*재치가 앞서는 시. 이런 시에서 사상을 찾아 보려 하는 것은 무리한 노릇이다. 읽고 음미하며 즐기면 그저 그 뿐이다.

 

 

<나>

 

나를 반겨함인가 하여

꽃송이에 입맞추면

전율할 만치 그 촉감은 싸늘해--

 

품에 있는 그대로

이해(理解)저편에 있기로

'나'를 찾을까?

 

그러나 기억과 망각의 거리

명멸하는 수 없는 '나'의

어느 '나'가 '나'뇨.

 

*재치 속에 어떤 사색이 섬광처럼 번쩍인다. 월파의 시가 전원적이면서도 서구적이라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향수>

 

인적 끊긴 산 속

돌을 베고 하늘을 보오.

 

구름이 가고,

있지도 않은 고향이 그립소.

 

 

<추억>

 

걷는 수음(樹陰)밖에

달빛이 흐르고,

물에 씻긴 수정같이

내 애상(哀傷)이 호젓하다.

 

아--- 한 조각 구름처럼

무심하던들

그 저녁의 도성(濤聲)이 그리워

이 한밤을 걸어 새기야 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