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나비..........윤 곤강

바보처럼1 2006. 7. 26. 23:13

<나 비>

 

비바람 험살궂게 거쳐 간 추녀 밑-

날개 찢어진 늙은 노랑 나비가

맨드라미 다가리를 물고 가슴을 앓는다.

 

찢긴 나래의 맥이 풀려

그리운 꽃밭을 찾아갈 수 없는 슬픔에

물고 있는 맨드라미조차 소태 맛이다.

 

자랑스러울손 화려한 춤 재주도

한 옛날의 꿈조각처럼 흐리어

늙은 무녀(舞女)처럼 나비는 한숨진다.

 

*시문학(1930.5) 수록

늙고 병든 나비의 형상을 통하여 생의 애상을 노래하고 있다.

소재가 된 나비는 작자일 수도 있고, 일제치하의 조국일 수도 있다.

*주제는 인생 무상

 

 

<아지랭이>

 

머언 들에서

부르는 소리

들리는 듯.

 

못 견디게 고운 아지랭이 속으로

달려도 달려가도 소리의 임자는 없고.

 

또다시

나를 부르는 소리,

머얼리서

더 머얼리서

들릴 듯 들리는 듯.....

 

 

<세 월>

 

물처럼 흘려 보냈노라

구름처럼 띄워 보냈노라

 

서른 해의 나의 세월!

멀미나는 어둠 속에서

지리한 밤이 지새어 가고

 

젖빛 새벽이 보오얀 제 품 안에

불꽃 햇살을 안고 올 때마다

 

항상 나는 피보다도 붉은 마음으로

소리 높여 외쳤노라 자랑했노라

 

이 하늘 밑에 태어난 슬픔을!

이 하늘 밑에 태어난 기쁨을!

 

*윤 곤강의 시는 그 주제가 대개 불안이나 절망 등에서 취해져 있고,또한 그 언어 역시 자의식의 작용을 느끼게 하는 것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 사(丹蛇)>

--k에게

 

양귀비꽃 희게 우거진 길섶에

눈부시는 붉은 금

또아리처럼 그려 놓고

징그럽게 고운 꿈

서리고 앉은 짐승.

 

오오, 아름다운 꿈하 !

 

주검처럼 고요한 동안

내 눈과 네 눈이 마주치는 찰나

징그러운 오뇌(오뇌)를 지녀, 너는

죄스럽게 붉은 한 송이 꽃이어라.

 

선뜻 대가리 감아 쥐고

휘휘 칭칭 목에 감아나 볼거나.

 

네 징그러운 육체 속에 품은

해보다도 뜨거운 정열의 불곷

낼름거리는 붉은 혓바닥으로

피도 안 나게 물어 뜯은 상채기-

 

이브. 유우리디스.클레오파트라.......

 

누리는 꽃 피는 여름이라

살구나무에 살구 열고

배나무에 배꽃 피는 시절......

 

어떤 이는 네 몸에서 사랑을 읽고

어떤 이는 네 몸에서 이별을 읽고

어떤 이는 네 몸에서 죽음을 읽었다.

 

아으, 못 견디게 고와도 아리따와도

덥석 ! 껴안고 입맞추지 못함은

내 더러힌 몸 다시 씻지 못하는 죄인저 !

 

*백민(白民)15호(1948.10)수록

뱀을 인간의 애욕과 결부시켜 노래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꿈하" "아으"등 우리의 고어를 썼다. 그러나 서구적인 소재로 해서, 이는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가 없겠다.

 

 

<피 리>

 

보름이라 밤 하늘의

달은 높이 현 등불 다호라

임하 호올로 가오신 임하

이 몸은 어찌호라 외오 두고

너만 혼자 훌훌히 가오신고

 

아으 피 맺힌 내 마음

피라나 불어 이 밤 새오리

숨어서 밤에 우는 두견새처럼

나는야 밤이 좋아 달밤이 좋아

 

이런 밤이사 꿈처럼 오는 이들----

달을 품고 울던 <벨레이느>

어둠을 안고 간 <에세이닌>

찬 구들 베고 간 눈 감은 고월(고월), 상화(상화).......

낮으란 게인양 엎디어 살고

밤으란 일어 피리나 불고지라

 

어두운 밤의 장막 뒤에 달 벗삼아

임이 끼쳐 주신 보밸랑 고이 간직하고

피리나 불어 설운 이 밤 새오리

 

다섯 손꾸락 사뿐 감아 쥐고

살포시 혀를 대어 한 가락 불면

은쟁반에 구슬 구을리는 소리

슬피 울어 예는 여울물 소리

왕대숲에 금바람 이는 소리.......

 

아으 비로소 나는 깨달았노라

서투른 나의 피리 소리언정

그 소리 가락 가락 온 누리에 퍼지어

 

붉은 피 방울 방울 돌면

찢기고 흩어진 마음 다시 엉기리

 

*이 시는 시집<피리>(1948)에 수록되고 <현대문학>(1967.12)에 발표된 작품으로 윤 곤강이 해방 후에 모교인 보성고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발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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