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눈 물..........김 현승

바보처럼1 2006. 7. 27. 00:32

<눈 물>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김 현승 시초(1957) 수록

작자가 어린 아들을 잃고, 그 슬픔을 기도교 신앙으로 승화시킨 작품.

작자는 " 외향적인 웃음보다는 내향적인 눈물에서 인생의 미와 가치를 찾으려 한다"고 말하고 있다

*주제는 생명의 영원성과 그 근원

 

 

<플라타나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나스

너의 머리는 어느 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 모르나

플라타나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누린다..

 

먼 길에 올 제,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나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영혼을 불어 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나스,

나는 너와 함께 신이 아니다 !

 

이제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오늘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플라타나스,

나는 너를 지켜 오직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내 마음은 마른 나뭇가지>

 

내 마은 마른 나무가지

주여

나의 머리 위으로 산까마귀 울음을

호올로 날려 주소서

 

내 마음은 마른 나무가지

주여

저 부리 고운 새 새끼들과

창공에 성실하던 그의 어미 그의 잎사귀들로,

가랑잎이 되게 하소서.

 

내 마음은 마른 나무가지

주여

나의 육체는 이미 저물었나이다 !

사라지는 먼 데 종소리를 듣게 하소서.

마지막 남은 빛을 공중에 흩으시고,

어둠 속에 나의 귀를 눈 뜨게 하소서.

 

내 마음은 마른 나무가지

주여,

빛을 주고 밤이 가까왔나이다 !

당신께서 내게 남기신 이 모진 두 팔의 형상을 벌려

나의 간곡한 포옹을

두루 찾게 하소서.

두루  찾게 하소서.

 

*마른 나무가지의 고독 위에 산 까마귀 울음을 울게 하여,극한 고독을 노래하고 있다.

사라지는 먼 뎃 종소리에 귀기울이는 이 시인의 내면적 신앙은 크낙하기 그지 없다.

 

 

<자화상>

 

내 목이 가늘어 회의 에 기울기 좋고

혈액은 철분이 셋에 눈물이 일곱이기

포효(咆哮)보담 술을 마시는 나이팅게일--

 

마흔이 넘은 그보다도

뺨이 쪼들어

연애엔 아주 실망이고

 

눈이 커서 눈이 서러워

모질고 사특하진 않으나

신앙과 이웃들에 자못 길들기 어려운 나---

 

사랑이고 원수고 몰아쳐 허허 웃어 버리는

비만한 모가지일 수 없는 나---

 

내가 죽는 나

단테의 연옥에선 어느 비문(扉門)이 열리려나.

 

 

<고 독>

 

너를 잃은 것도

나를 얻은 것도 아니다.

 

네 눈물로 나를 씻겨 주지 않았고

네 웃음이 내 품에서 장미처럼 피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다.

 

눈물은 쉽게 마르고 장미는 지는 날이 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다.

 

너를 잃은 것을

너는 모른다

그것은 나와 내 안의 잃음이다.

그것은 다만.

 

 

<옹호자의 노래>

 

말할 수 있는 모든 언어가

노래할 수 있는 모든 선택된 사조(詞藻)가

소통할 수 있는 모든 침묵들이

고갈하는 날

나는 노래하련다 !

 

모든 우리의 무형한 것들이 허물어지는 날 

모든 그윽한 꽃향기들이 해체되는 날

모든 신앙들이 입증의 칼날 위에 서는 날

나는 옹호자들을 노래하련다.

 

티끌과 상식으로 충만한 거리여

수량의 허다한 신뢰자들이여

모든 사람들이 돌아오는 길을

모든 사람들이 결론에 이른 길을

바꾸어 나는 새삼 떠나련다.

 

아로새긴 상아의 유한의 층계로는 미치지 못할

구름의 사다리로, 구름의 사다리로

보다 광활한 영역을 나는 가련다!

싸늘한 증류수(蒸溜水)의 시대여

나는 나의 우울한 혈액 순환을 노래하지 아니치 못하련다.

 

날마다 아름다운 항거의 고요한 흐름 속에서

모든 약동하는 것들의 선율처럼

모든 전진하는 것들의 수레바퀴처럼

나와 같이 노래할 옹호자들이여

나의 동지여, 오오, 나의 진실한 친구여!

 

*현대문학 창간호(1955.1) 수록

 

 

<슬 픔>

 

슬픔은

나를 어리게 한다.

 

슬픔은

죄를 모른다

사랑하는 시간보다도 오히려

 

슬픔은

내가 나를 안는다

아무도 개입할 수 없다

 

슬픔은

나를 목욕시켜 준다

나를 다시 한번 깨끗하게 한다

 

슬픈 눈에는

그 영혼이 비추인다

먼 나라의 말소리도 들리듯이.....

 

슬픔 안에 있으면

나는 바르다

 

믿음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 모르지만

슬픔이 오고 나면

풀밭과 같이 부푸는

어딘가 나의 영혼.....

 

 

<독신자>

 

나는 죽어서도

무덤 밖에 있을 것이다.

 

누구의 품안에도 고이지 않는

나는 지금도 알뜰한 제 몸 하나 없다.

 

나의 그림자마저

내게서 가르자

그리하여 뉘우쳐 머리 숙인 한 그루 나무같이

나의 문 밖에 세워 두자.

 

계단은 쌓지 말자

무형의 것들은 나에게는 자유롭고 더욱 선연(鮮姸)한 것......

크리스마스와

새해가 오면

나의 친구는 먼 하늘의 물 머금은 별들.....

이단을 향하여 기류 밖에 흐르는 보석을 번지우고

 

첫눈이 내리면

순결한 살에 듯

나의 볼을 부비자!

 

 

<견고한 고독>

 

껍질응 더 벗길 수도 없이

단단하게 마른

흰 얼굴

 

그늘에 빚지지 않고

어느 햇볕에도 기대지 않는

단 하나의 손발.

 

모든 신들의 거대한 정의 앞엔

이 가느다란 창 끝으로 거슬리고,

생각하던 사람들 굶주려 돌아오면

이 마른 떡을 하룻밤

네 살과 같이 떼어 주며,

 

결정(結晶)된 빛의 눈물

그 이슬과 사랑에도 녹슬지 않는

견고한 칼날- 발 딛지 않는

피와 살.

 

뜨거운 햇빛 오랜 시간의 회유에도

더 휘지 않는

마를 대로 마른 목관 악기의 가을

그 높은 언덕에 떨어지는

 

굳은 열매

쌉슬한 자양에

스며드는

네 생명의 마지막 남은 맛 !

 

 

<창>

 

창을 사랑하는 것은,

태양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눈 부시지 않아 좋다.

 

창을 잃으면

창공으로 나아가는 해협을 잃고,

 

명랑은 우리게

오늘의 뉴우스다.

 

창을 닦는 시간은

또 노래도 부를 수 있는 시간

별들은 12월의 머나먼 타국이라고.....

 

창을 맑고 깨끗이 지킴으로

눈들을 착하게 뜨는 버릇을 기르고,

 

맑은 눈은 우리들

내일을 기다리는

빛나는 마음이게.....

 

 

<가을의 기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무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파 도>

 

아, 여기 누가

술 위에 술을 부었나.

이빨로 깨무는

흰 거품 부글부글 넘치는

춤추는 땅- 바다의 글라스여.

 

아, 여기 누가

가슴들을 뿌렸나.

언어는 선박처럼 출렁이면서

생각에 꿈틀거리는 배암의 잔등으로무터

영원히 잠들 수 없는

아, 여기 누가 가슴을 뿌렸나.

 

아, 여기 누가

성보다 깨끗한 짐승들을 몰고 오나

저무는 도시와

병든 땅엔

머언 수평선을 그어 두고

오오오오 기쁨에 사나운 짐승들을

누가 이리로 몰고 오나.

 

아, 여기 누가

죽음 위에 우리의 꽃을 피게 하나.

얼음과 불꽃 사이

영원과 깜짝할 사이

죽음의 깊은 이랑과 이랑을 따라

물에 젖은 라일락의 향기

저 파도의 꽃 떨기를 칠월의 한 때

누가 피게 하나.

 

 

<오월의 그늘>

 

그늘,

밝음을 너는 이렇게도 말하는구나

나도 기쁠 때는 눈물에 젖는다.

그늘,

밝음에 너는 옷을 입혔구나

우리도 일일이 형상을 들어

때로는 진리를 이야기한다.

 

이 밝음, 이 빛은

채울 대로 가득히 채우고도 오히려

남음이 있구나

그늘- 너에게서..... .

 

내 아버지의 집

풍성한 대지의 원탁마다

그늘,

오월의 새 술들 가득 부어라 !

 

이 깔나무- 네 이름 아래

나의 고단한 꿈을 한 때나마 쉬어 가리니.....

 

<절대 고독>

 

나는 이제야 내가 생각하던

영원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

그 끝에서 나는 하품을 하고

비로소 나의 오랜 잠을 깬다.

 

내가 만지는 손 끝에서

아름다운 별들을 흩어져 빛을 잃지만

내가 만지는 손 끝에서

나는 무엇인가 내게로 더 가까이 다가오는

따스한 체온을 느낀다.

 

그 체온으로 내게서 끝나는 영원의 먼 끝을

나는 혼자서 내 가슴에 품어 준다.

나는 내 눈으로 이제는 그것들을 바라본다.

 

그 끝에서 나의 언어들을 바람에 날려 보내며,

꿈으로 고이 안을 받친 낸 언어의 날개들을

이제는 티끌처럼 날려 보낸다.

 

나는 내게서 끝나는

무한의 눈물겨운 끝을

내 주름 잡힌 손으로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

더 나아갈 수 없는 그 끝에서

드디어 입을 다문다- 나의 시는.

 

*시집 절대고독(1970) 수록

주지적인 시

김 현승을 가리켜 " 1950년대에 와서야 발견된 1930년대의 ㅇ리 시단의 모더니스트"라 하는데, 이 시에는 모더니스트가 사유에 도달한 일종의 관념시이다.

*주제는 영원한 세계에서의 새로운 자아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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