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겨울바다............김 남조

바보처럼1 2006. 11. 8. 22:54

<겨 울 바 다>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마저 얼어 버리고

허무의 불

물 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혼령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갔었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겨울 바다가 주는 암담하고 우울한 절망감과 한계 의식--그것을 아련한 그리움과 感傷을 어린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다.

*미지의 새:희망-동경-꿈

*허무의 새: 새도 그대도 진실도 없이 모든 것이 허무뿐이라는 것

*기도: "새"를 보게 해 달라는 기도

 

 

<목 숨>

 

아직 목숨을 목숨이라고 할 수 있는가

꼭 눈을 뽑힌 것처럼 불쌍한

산과 가축과 정든 장독까지

 

누구 가랑잎 아닌 사람이 없고

누구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없고

불 붙은 서울에서

금방 오무려 연꽃처럼 죽어갈 지구를 붙잡고

살면서 배운

가장 욕심 없는 기도를 올렸읍니다

 

반만년 유구한 세월에

가슴 틀어박고 매아미처럼 목 태우다 태우다

끝내 헛되이 숨져간 이건 그 모두 하늘이 낸 선천의 벌족(罰族)이더라도

 

돌맹이처럼 어는 산야에고 굴러

그래도 죽지만 않는

그러한 목숨이 갖고 싶었읍니다

 

*전쟁의 처절한 비극적 상화에서 느낀 위기 의식을 노래하고 있다.절박한 위기 의식이 길래 실오라기 같은 목숨에 대한 간절한 소원이 기원되고 있다.

 

 

<눈의 시>

 

눈은 축복의 흰 장미를 닮고

내려 쌓이면 수정과

속고의 냄새가 난다.

 

연한 못을 뽑아 내고

눈발 속에 열어 젖히는

정념(情念)의 문

 

매양 잊어 오면서

아련히 바래옴을 온 시간이 지금이라고

끄덕이며 눈 감고 섰거니

 

착잡하고 황홀한

불가사의로

밝혀진 대낮

은밀한 신비의 음악이면서

 

혼례 때 입은

구름 같은 옷자락을

닮은 눈을랑

 

여릿여릿 피어나는

불의 다홍으로

적셔 버리면

 

 

<이 바람속에>

 

바람은 찢겨진 피리의 소리

하설은 파적(破笛)의 피울음이 아니고야

바람은 분명 찢겨진 피리

 

나도 바람처럼 울던 날을 가졌더랍니다.

달밤에 벗은 맨몸과도 같은

염치 없고도 어쩔 수 없는 이 회상

 

견뎌 낸 슬품도 지나고

못 견딘 슬품도 지나고

모두 물처럼 이젠 흘러 갔는데

 

잊어 버리노라 죽을 뻔하고

잊히움에서 못내 쓰라린 가슴

왜 아직 이런 것이 남았답니까

 

 

<임>

 

1

임의 말씀 절반은

맑으신 웃음

그 웃음의 절반은

하느님 거 같으셨네

 

임을 모르고 내가 살았더면

아무 하늘도 안 보였으리

 

2

그리움이란

내 한 몸

물감이 찍히는 병

그 한번 번갯불이 스쳐간 후로

커다란 가슴에

나는

죽도록 머리 기대고 산다

 

3

임을 안 첫 계절은

노래에서 오고

그래 만날 시만 쓰더니

 

그 다음 또 한 절은

기도에서 오고

그래 만날 손 씻는 마음

 

어제와 오늘은 말도 잠자고

눈 가득히

귀 가득히

빛만 갖고 있다

 

 

<정 념(情念)의 기>

 

내 마음은 한 폭의 기.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

없는 것 모양 걸려 왔더니라.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熱氣)를 이기지 못해

눈 오는 네거리에 나서면

 

눈길 위에 연기처럼 덮여오는 편안한 그늘이여

마음의 기는

이제금 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가.

 

나에게 원이 있다면

뉘우침 없는 일몰이 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 가는 그것이란다.

 

황제의 항서화도 같은 무거운 비애가

맑게 가라앉은

하얀 모래벌 같은 마음씨의

벗은 없을까.

 

내 마음은

한 폭으 기.

 

보는 이 없는 시고에서

때로 울고

때로 기도 드린다.

 

*시인은 스스로를 한 폭의 기로 자처하면서도 "혼란과열기"를 이기지 못하여 거리로 나서는 것이다. 그리고 정화된 벗을 찾으며 혼자서 울고 기도하는 것이다.

*주제는 순수한 인간 존재의 갈구.

 

 

<태양의 각문(刻文)>

 

가을을 감고 우리 산 속에 있었읍니다.

하늘이 기폭처럼 퍼덕이고 눈 들 때마다

태양은 익은 석류처럼 파열했읍니다.

 

당신은 낙엽을 깔고 그리고 향수를 처음 안 소년처럼 구름을 모아 동자(瞳子)에 띄웠고, 나는 한 아름 벅찬 바다를 품은 듯 당시과 가을을 느끼기에 한때 죄를 잊었읍니다.

 

마치 사람이 처음으로 자기 벗었음을 알던 옛날 에덴의 그 억센 경이(驚異) 같은 것이 분수처럼 가슴에 뿜어오르고

 

만산(萬山) 피 같은 홍엽(紅葉)---

만산 불 같은 홍엽---

아니 아니 만산 그리움 같은 그리움 같은 홍엽에서 모든 사랑의 전설들이 검붉은 포도주처럼 뚝뚝 떨어졌읍니다.

 

무슨 청량한 과즙처럼 바람이 풍겨 오고 바람이 스처 갈 뿐, 사변(四邊) 폐망(廢茫)한 하루의 천지가 다만 가을과 당신만으로 가득 찼고, 나는 차라리 한갓 열병 앓는 소녀였음이 사랑한다는 것은, 참말 사랑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나, 또 하나의 내 목숨을 숨막히도록 느끼는 것이었읍니다.

또 하나의 나, 또 하나의 내 목숨, 아아 응혈(凝血)처럼 뜨거운 것이 흘러 내리고---

 

나는 비수(匕首)처럼 하나의 이름을 던져 저기 피흐르게 태양을 찔럿으니, 그것은 이 커다란 우주 속에서 내가 사랑한 다만 하나의 이름이었읍니다.

 

*시인은 스스로의 열정을 그야말로 태양처럼 원색적이고 뜨겁게 노래하고 있다.

*가을을 감고(1연): 가을 속에 파묻혀

*하늘이 기폭처럼 퍼덕이고(1연): 정열에 넘친 사랑에의 도취의 표현.

*죄(2연): 사랑해선 안 된다는 죄.

*피 같은 홍엽(4연): 뜨거운 정열

*응혈처럼 뜨거운 것(5연): 사랑의 정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