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을>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4.19혁명 직후에 씌어진 작품.
문학의 ㅣ현실 참여를 고취하며 사회 정의를 주장하였다.
1연: 쉽게 얻어진 자유는 무의미하다는 것.
2연: 자유를 얻기위한 과정.
3연: 그것의 어려움을 노해했다.
<현대식 교량>
현대식 교량을 건널 때마다 나는 갑자기 회고주의자가 된다.
이것이 얼마나 죄가 많은 다리인 줄 모르고
식민지의 곤충들이 24시간을
자기의 다리처럼 걸어 다닌다.
나이 어린 사람들은 어째서 이 다리가 부자연스러운지를 모른다.
그러니까 이 다리를 건너갈 때마다
나는 나의 심장을 기계처럼 중지시킨다.
(이런 연습을 나는 무수히 해 왔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반항에 있지 않다.
저 젊은이들의 나에 대한 사랑에 있다.
아니 신용이라고 해도 좋다.
"선생님 이야기는 20 년 전 이야기이지요"
할 때마다 나는 그들의 나이를 찬찬히
소급해 가면서 새로운 여유를 느낀다.
새로운 역사라고 해도 좋다.
이러한 경이는 나를 늙게 한느 동시에 젊게 한다.
아니 늙게 하지도 젊게 하지도 않는다.
이 다리 밑에서 엇갈리는 기차처럼
늙음과 젊음의 분간이 서지 않는다.
다리는 이러한 정지의 증인이다.
젊음과 늙음이 엇갈이는 순간
그러한 속력과 속력의 정돈(停頓) 속에서
다리는 사랑을 배운다.
정말 희한한 일이다.
나는 이제 적을 형제로 만드는 실증을
똑똑하게 천천히 보았으니까!
*제목 "현대식 교량"은 역사의 과도기적 과정의 뜻.
근대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을 이해와 동정으로 조화시켜 나아가자고 읊었다.
*주제는 사회 발전의 바탕이 되어야 할 이해와 사랑.
<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도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1968년 5월에 쓴 작품, 사후 <창작과비평>에 발표되었다.
"풀"은 민족이나 민중 혹은 한개인의 끈질긴 생명력과 저항의 상징
"바람"은 불의나 또는 부조리.
<팡세>속의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말을 생각게 하는 주지시.
*주제는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
<눈>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문학 예술>(1957)에 수록
눈을 소재로 하여, 순수한 생명인 "눈"과 저속한 일상을 대조시키고 있다. 그 깨끗한 생명 위에 가래침을 뱉는 고뇌를 찾아보게 된다.
*주제는 순수 생명을 향한 갈망과 그 고뇌.
<폭 포>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사 랑>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절 망>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데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는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적(敵)>
우리는 무슨 적이든 적을 갖고 있다.
적에는 가벼운 적도 무거운 적도 없다
지금의 적이 제일 무거운 것 같고 무서운 것 같지만
이 적이 없으면 또 다른 적--내일
내일의 적은 오늘의 적보다 약할지 몰라도
오늘의 적도 내일의 적처럼 생각하면 되고
오늘의 적도 내일의 적처럼 생각하면 되고
오늘의 적으로 내일의 적을 쫓으면 되고
내일의 적으로 오늘의 적을 쫓을 수도 있다
이래서 우리들은 태평으로 지낸다.
*"우리는 무슨 적이든 적을 갖고 있다"라는 팽팽한 대결의식은 어려운 현실을 살아 가는 지성인의 당당한 현실감을 의미하고 있다.대결적인 냉용의 참여시이다.
<잔인의 초>
한번 잔인해 봐라
이 무이 열리거든 아무 소리도 하지 말아 봐라
태연히 조그맣게 인사 대꾸만 해 두어 봐라
마루바닥에서 하든지 마당에서 하든지
하다가 가든지 공부를 하든지 무얼 하든지
말로 걸지 말고---저놈은 내가 말을 걸 줄 알지
아까 점심 때처럼 그렇게 나긋나긋할 줄 알지
암 지금도 부드럽기는 하지만 좀 다르다
초가 쳐 있는 잔인의 조가
요 놈--요 오란 놈--맹랑한 놈--6학년 놈--
에미 없는 놈--생명
나도 나다--잔인이다--미안하지만 잔인이다
콧노래를 부르더니 그만두었구나--너도 어지간한 놈이다--요 놈 죽어라
*김 수영은 60년대에 들어서면서도 반(反) 서정의 기치를 들고 참여시를 주장하였다. 그가 강조한 것은 문학의 사회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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