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에서 ‘김성탄의 33不亦快哉’를 싣는다.김성탄은 명말,청초의 인상파평론가로서"西廂記"라는 희곡의 평석을 통해 33절에 걸친 '유쾌한 한 때'라는 것을 열거하고 있다.이것은 언젠가 그가 한 친구와 비 때문에 열흘 동안 어떤 절간에 틀어 박혀 있을 때, 둘이서 추려'낸 것이라한다.
원문이 없어 정확하게 번역이 된 것인지 모르나 ‘홍윤기,님이 옮긴 것을 그대로 적는다.
20대 초반 논어 學而편 學而時習之,不亦說乎.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愠 不亦君子乎?중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와 김성탄의 두번째 절을 자주 인용했던 기억이 난다. 시대가 17세기라서 현대생활과 같지는 않겠지만, 친구들도 생활해 나가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기쁜일 들을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즐거움을 맛보기 바라는 바이다.
"33不亦快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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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6월의 어느 무더운 날, 태양은 중천에 떠 있고 ,산들바람은 잠들었으며 구름은 한 점도 보이지 않는다. 앞뜰이나 뒤뜰도 마치 난로 속과 같다. 날던 새도 그림자를 감췄고,온몸에서 땀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점심 식사를 하려 했으나 무더위 탓에 젓가락은 들 마음조차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돗자리를 가져다 마당에 깔고 그 위에 벌렁 드러눕는다. 그렇지만 돗자리는 녹녹하고 파리들은 얼굴에 날아와 앉아, 쫓아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쯤 되고 보면 나는 도저히 속수 무책이다. 그 때 갑자기 천둥이 우르릉 꽝꽝 울리고 먹장같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전쟁터로 향하는 대군처럼 당당하게 밀어닥친다. 이윽고 처마에서 빗물이 우르르 떨어지기 시작한다.그러면 땀이 들고 땅으로부터 후덥지근하던 열기도 사라지고,파리들은 어디론가 날아가 숨어버렸고 이제야 비로소 밥을 먹을 수 있게 된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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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가 갑자기 해질녘에 찾아온다. 문을 열고 그를 맞이해서,배를 타고 왔느냐 육로로 왔느냐 묻지 않고,침대에 눕겠는냐 소파에 앉아서 쉬겠느냐도 묻지않고,우선 거실로 가서 조심스럽게 마누라에게 이렇게 말한다.”소동파의 마누라처럼 술을 잔뜩 사다 주지 않을려우?” 그러면 아내는 선뜻 금비녀를 뽑아,”이것을 팝시다.”하고 말한다. 우선 사흘 동안은 넉넉히 마실 수 있다는 계산이 앞선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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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방에 나는 넋을 놓고 앉아 있다. 그러면 베개맡에 쥐란 놈이 나타나서 제법 성가시게 군다. 도대체 무엇을 갉고있는지 달그락닥그락 요란스럽다. 내 책 중의 어느 것을 쏠고 있는 걸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궁리하지도 못한 채 있으려니, 대뜸 무서운 얼굴 표정으로 고양이가 뭔가를 노리는 듯 꼬리를 흔들며 눈을 크게 뜨고 다가온다. 나는 옴쭉달싹 안 하고 숨을 죽인 채 잠시 동안 기다린다. 그러면 쥐는 바삭소리를 내며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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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앞의 해당화와 박태기나무를 뽑고, 그자리에 열 포기 스무 포기의 푸릇푸릇한 파초를 심는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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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밤에 정다운 친구들과 잔을 주거니받거니 나누어 어지간히 취한다. 잔을 놓기는 싫지만 더 이상 마시는것도 괴롭다. 그러자 기분을 알아챈 동자가,열 두서너 개의 큰 폭죽을 담은 바구니를 서둘러 갖고 온다. 나는 탁자에서 일어나 뜨락으로 나가 폭죽을 터뜨린다.유황냄새가 코를 찌르고,머리를 자극해서 온 육신이 무척이나 기분좋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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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걷고 있자니, 두명의 불량배가 무언가 심하게 다투고 있다. 얼굴은 벌겋게 피가끓고, 눈에는 분노가 번뜩여서 마치 불구 대천의 원수와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서로간에 예의만은 갖추고,팔을 쳐든다거나 허리를 굽히며 절까지 하면서,’댁에서는’이라든가 ‘댁을’, ‘그렇지 않습니까’,’그래서는 않되겠지요’라는 둥 매우 점잖고 거창한 말을 쓰고 있다. 그 시비는 그칠 줄을 모른다. 그곳으로 갑자기 하늘을 찌를 듯한 건장한 사나이가 팔을 휘두르며 다가와서는 커다란 소리로 ’집어치워!’하고 외친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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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물이 출렁이듯 제 자식들이 옛글을 줄줄 외고 있다. 그것을 차분히 들어본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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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심심파적으로 근처에 있는 가게를 찾아가, 사소한 물건을 사려고 한다. 잠시 동안 흥정을 하면서 좀더 값을 깎으려 한다. 좀더 깎으려고 흥정을 계속하지만,점원 아이는 좀처럼 깎아 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물건을 소맷자락에서 꺼내어 점원아이에게 내준다. 그러자 점원 아이는 대뜸 미소를 지으면서,공손하게 인사하며 말한다. “오, 어른께서는 정말 성품이 훌륭하신 분이군요.”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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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의 무료한 때에, 헌가방을 열고 그 안을 이리저리 뒤적인다. 그러면 우리집에서 돈을 꾸어간 사람들의 수십,수백 장의 차용 증서가 나타난다. 꾸어간 사람 중에는 고인이 된 이도 있고, 또한 살아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여하튼 빚을 갚아 줄 가망은 없다. 나는 슬그머니 그것을 다발로 묶어 불을 지피고는 하늘을 쳐다보며 연기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바라본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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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날, 모자도 없이 맨발로 문 밖으로 나가서,젊은이들이 물레방아 발판을 밟으며 쑤저우의 민요를 부르는 것을 양산을 쓴 채 듣고 있다. 논의 물은 녹은 백은이나,녹은 흰눈처럼 거품을 일으키며 흘러흘러 물레방아에 의해 퍼올려진다. 아아, 이것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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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자 간밤에 어디서 누가 죽었다고 집안 사람들이 수군수군 이야기하는 눈치다. 나는 대뜸 누가 죽었느냐고 집안 사람에게 묻는다. 그래서 죽은 사람이 마을에서 가장 구두쇠로 소문난 영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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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아침에, 이찍 잠을 깨니 소나무 시렁 밑에서 커다란 대나무를 물통으로 쓰려고 켜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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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내내 장마로 지새면서 주정뱅이나 병자처럼 늘 잠만 자자니 이젠 일어나기조차 귀찮다. 그러자 창밖에서 비가 그친 것을 알려 주는 새소리가 들려 온다.나는 서둘러 침실의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밀어서 연다. 그러면 햇빛이 쨍쨍 비치고 나무들은 금새 목욕을 마친 듯 신선하다. 아아, 이것 또한 즐겁지 아니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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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에 누군가 먼 곳에서 나에 관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음날 나는 그 사람을 찾아 나선다. 그 집에 들어가 거실을 보니 본인은 남쪽을 향해 책상에 앉아 무슨 기록인가를 읽고 있다. 내 모습을 발견하자 대뜸 인사를 하고는 내 소맷자락을 당겨 그 자리에 앉게 하고, “때마침 잘 왔네, 자아 이것을 읽어 보게나,”하고 권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웃음을 나누며 담벼락 끝으로 석양이 사라질 때까지 즐겁게 담화를 나눈다. 이윽고 친구는 시장기를 느꼈는지 내게 조용히 말한다. “자네도 시장할 테지.” 아아, 이것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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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집을 짓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한 일도 없는데, 뜻밖에 얼마간의 돈이 생겼기에, 집을 짓게끔 되었다. 그 뒤로부터는 온종일을 재목을 사러 다닌다. 나는 그런 것들을 파는 거리를 찾아서 쏘다닌다. 그게 다 집을 짓기 위한 것이니 그리하지만, 그렇다고 그 동안에 새로 지은 집에 사는 것도 아니다. 마침내 그런 일을 포기해 버리고 싶어진다. 이윽고 그러던 어느 날 겨우 집이 완성된다. 벽에는 마지막 덧칠을 하고 마루는 산뜻하게 닦여지고, 문짝에는 종이를 바르고,벽에는 서화를 건다. 일꾼들은 모두 물러가고 친구들이 찾아와서,잘 정돈되어 여기저기 놓인 의자에 걸터앉는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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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에 술을 마시고 있는 동안에 문득 방 안이 매우 추워진 것을 느끼게 된다. 창을 열고 내다보니,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면서 땅 위에는 이미 10센티 이상이나 쌓이고 있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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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 전부터 승려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다. 그러나 육식을 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망설이고 있던 차에 승려가 된 다음에도 마음껏 육식을 해도 무방함을 허락받았다 치자. 과연 그렇게 된다면 양동이에다 물을 가득히 끓인 다음 잘 드는 면도칼로 삭발을 한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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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이상스런 곳에 약간의 습진이 생겼기 때문에, 문을 꽉 닫아 걸고, 이따금씩 뜨거운 김을 쐬 주거나 한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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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속에서 우연히 옛 친구들의 자필 편지를 발견한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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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가난한 선비가 돈을 꾸러 온다. 그러나 얘기를 터놓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면서 화제를 딴 곳으로 돌리려고 한다, 얼마나 괴로우랴 싶어 단둘이 만 있을 곳으로 데리고가, 얼마가 필요하냐고 물어본다, 그러고 나서 방으로 돌아와 돈을 건네 주고,건네 준 다음에 다시 이렇게 묻는다. “자네는 지금 당장 가서 문제를 처리해야만 하겠나?”자 좀더 있으면서 한 잔 나누고 가는 게 어떻겠나?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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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쪽배안이다. 시원한 바람이 상쾌하게 불어 오지만,배에는 돛이 없다. 그러자 대뜸 돛배가 나타나서 바람처럼 빠르게 다가온다. 나는 그 배에 접근하여 갈고리 쇠를 걸려고한다. 요행히 제대로 걸렸다, 그래서 상대방 배에다 밧줄을 던져 그 배가 끌어 주도록 부탁한다. 그러고는 두보의 시를 읊기 시작한다. “푸른빛은 뾰죽뾰죽한 산봉우리를 애처럽게 여기게 하고(靑惜峯巒) 누른빛은 귤과 유자가 달려 있음을 알려주네(黃知橘柚).” 하면서 호탕하게 웃기 시작한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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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와 함께 살 집을 찾아나섰으나 적당한 집을 찾을 길 없다. 그러던 차에 누가 찾아와서 알맞은 집이 있다고 한다. 그다지 크지도 않고, 방이 열 두어 개가 있으며,강변에 있는 데다 아름다운 나무로 둘려싸여 있다고 한다. 나는 그 사람에게 저녁 식사를 권하고 식사가 끝난 다음에, 어떤 집인가를 궁금히 여기지도 않고,살펴보기 위해 따라 나선다. 문 안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공터가 있고,곡물 곡간이 예닐곱 개나 된다. 그곳에 서서 나는 내심으로 말했다. ‘이제는 야채며 호박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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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가 긴 여행길에서 돌아온다. 정들었던 성문이 보이고 강의 양쪽 기슭에서 여자들이며 아이들이 제 나라말을 지껄이고 있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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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자기 그릇이 깨진다면 도저히 본래처럼 다시 만들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깨어진 그릇을 이리저리 젖혀 보며 살피노라면 사뭇 화가 나는 법이다. 이런때에는 그 그릇을 요리사한테 넘겨 주고, 다른 헌 그릇과 함께 쓰도록 일러준다,.그러나 일단 깨어진 그 그릇을 다시금 내 눈에 띄지않게 하라고 명한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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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인 군자가 아니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가 없다. 밤에 무언가 잘못을 저지르면, 아침에 일어난 후에 그 때문에 몹시 우울해한다. 그때 문득 생각나는 것은, ‘잘못했음을 숨기지 아니함은 참회와 같도다’라고 하는 불교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나는 모르는 사람이거나 옛 친구이거나 주변의 사람들 모두에게 스스로의 잘못을 말해 준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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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위로 30센티쯤 되는 커다란 글씨를 누가 쓰고 있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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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방 안에서 꿀벌을 몰아낸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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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縣官)에게 북을 치게 해서 퇴당(退堂) 때를 알려 주게한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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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날리던 연실이 끊어진다. 그것을 지켜본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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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에서 들불이 일어 타오르고 있다. 그것을 바라본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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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진 돈을 모두 갚는다. 아아,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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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염객전”(‘규염객’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영웅이야기. 어느집을 뛰쳐나온 두 애인을 구해 멀리 떨어진 도시로 가정을 마련하게 한 다음에 자신은 다시 행방을 감춘다는 줄거리-원주)을 읽는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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