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목(裸木)>
나목 가지 속으로 시간이 몰입돼 간다
잔잔한 바람에도 뿌리째 뽑히는
그것은 내가 의식 못하는 내 자아다.
가지에서 뿌리로 흐르는
목덜미서 항문으로 빠지는
시간의 톱날에 내 자아는 해체된다.
문득 그 가지를 꺾어 보았는가
거기에 넘치던 수액(樹液)을 비쳐 보다가
응결하는 자아의 아픔을 반화(反畵)하면서
생명의 잔인함을 체험한다.
<다 계절 탓이지>
살아 있는 아무도 없는 비탈에
눈이 쌓이고 발목이 잠기고
시간이 가지에서 빠져 나와
하얀 눈이 되어 기침한다.
춥고 배고픈 나목의 말단에서
바람이 걸인(乞人)처럼 서성댄다.
내 자아는 자꾸 피를 머금고
죽음의 비탈은 살아 있는
이층 슬라브 위로 쏟아진다.
<다 계절 탓이지>
나목은 살해되었다.
수채화 속에서가 아니다. 스팀이 있는
빌딩에서 내려다 본 한길에서
연탄가스에 질식되었다.
피에 젖은 자아 위로
시간의 톱날이 쓸며 가고
세찬 바람이 텅 빈 가지를 접수한다.
쓰러진 나목 곁에 나 혼자
서 있을 수 없다.
*모든 사물에서 생명의 의미를 추구하는 이 유경은 이 작품에서도 지적인 언어로 고독한 자아를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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