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나 목(裸木)...........이 유경

바보처럼1 2006. 12. 21. 00:15

<나 목(裸木)>

 

나목 가지 속으로 시간이 몰입돼 간다

잔잔한 바람에도 뿌리째 뽑히는

그것은 내가 의식 못하는 내 자아다.

가지에서 뿌리로 흐르는

목덜미서 항문으로 빠지는

시간의 톱날에 내 자아는 해체된다.

문득 그 가지를 꺾어 보았는가

거기에 넘치던 수액(樹液)을 비쳐 보다가

응결하는 자아의 아픔을 반화(反畵)하면서

생명의 잔인함을 체험한다.

<다 계절 탓이지>

 

살아 있는 아무도 없는 비탈에

눈이 쌓이고 발목이 잠기고

시간이 가지에서 빠져 나와

하얀 눈이 되어 기침한다.

춥고 배고픈 나목의 말단에서

바람이 걸인(乞人)처럼 서성댄다.

내 자아는 자꾸 피를 머금고

죽음의 비탈은 살아 있는

이층 슬라브 위로 쏟아진다.

<다 계절 탓이지>

 

나목은 살해되었다.

수채화 속에서가 아니다. 스팀이 있는

빌딩에서 내려다 본 한길에서

연탄가스에 질식되었다.

피에 젖은 자아 위로

시간의 톱날이 쓸며 가고

세찬 바람이 텅 빈 가지를 접수한다.

쓰러진 나목 곁에 나 혼자

서 있을 수 없다.

 

*모든 사물에서 생명의 의미를 추구하는 이 유경은 이 작품에서도 지적인 언어로 고독한 자아를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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