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

석류..............발레리

바보처럼1 2007. 4. 22. 01:39

<석 류>

       Pomegranate

 

너무 많은 알맹이에 견디다 못해

반쯤 방싯 벌려진 단단한 석류여

스스로 눈을 떠서 황홀해 하는

고결한 이마를 나는 보는 것만 같다!

 

오, 방싯 입 벌린 석류여

네가 겪은 온 세월이

오만스럽게도 너희들로 하여금

애써 이룬 홍옥의 간막이를 삐꺽거리게 해도

 

또한 껍질의 메마른 황금이

어떤 힘에 눌려

찢어진 빨간 보석의 과즙이 되어도

 

그래도, 그 빛나는 균열은

비밀의 얼개를 지닌

내가 지닌 영혼을 생각케 한다.

 

 

<애정의 숲>

      Forest of Love

 

우리는 나란히 길을 따라가면서

순수한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름 모를 꽃 속에서

말없이... 손을 잡았다.

 

우리는 단 둘이 약혼자처럼

목장의 푸른 밤 속을 걸었다.

그리고 이 선경(仙境)의 열매인

정겨운 달을 미치광이들에게 나눠 먹였다.

 

그리고 우리는 이끼 위에서 죽었다.

아득히 먼 곳에서 소근대는 정다운 숲의

아늑한 그늘 사이에 둘이 묻혀서.

 

그리고 저 높은 하늘 위

무한한 빛 속에서 우리는 울고 있었다.

오, 나의 사랑스런 침묵의 길동무여!

 

 

*발레리(Paul Valery, 1871-1945);프랑스 순수시의 주창자로 상징주의의 거장 말라르메에게 사사하여 그 영향을 받았으며 지이드와 친교했다. 대표시집은 <해변의 묘지><매혹><바리애테><고정관념><나의 파우스트>등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