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속의 작가들]부산 다대포 바닷가에 사는 시인강은교씨 | ||
"다대포에 잃어버린 꿈이 있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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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바닷가도 시인의 눈에는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다. 10여 년 전까지도 아무렇게나 방치돼 황량하기만 하던 바닷가, 간첩이 출몰했던 곳으로만 기억되던 부산시 사하구 다대포가 시인이 시심을 투영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단박에 시상을 뿜어내는 명소로 탈바꿈했다.
“펄럭이네/ 다대포 모래들 속에서/ 모래의 눈까풀들이// 펄럭이네/ 다대포 그림자들 속에서/ 그림자의 눈까풀들이// 펄럭이네/ 다대포 벼랑들 속에서/ 벼랑의 눈까풀들이// 펄럭이네/ 다대포 마른번개들 속에서/ 마른번개의 눈까풀들이// 펄럭이네/ 다대포 저녁들 속에서 저녁의 눈까풀들이// 펄럭이네/ 다대포 수평선 속에서/ 수평선의 눈까풀이// 모든 일몰이 아름다운 이유는/ 은빛 별, 또는 주홍빛 해가 거기 미리 와/ 서 있기 때문이다”(‘일몰’).
강은교(姜恩喬·59) 시인이 바닷가로 게처럼 스며든 건 1983년이다. 첫 시집 ‘허무집’(71년)에 이어 ‘풀잎’(74년) ‘빈자일기’(77년) ‘소리집’(82년) 등을 잇달아 내며 시인으로서 상한가를 칠 때 서울을 버리고 훌쩍 찾아온 부산. 그를 반갑게 맞아주는 존재는 하나도 없었다. 예수가 갈릴리 바닷가를 찾듯, 시인은 하염없이 바닷가를 거닐다 송도해수욕장과 오륙도와 영도다리가 빤히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보금자리를 꾸몄다. 몇 해를 그렇게 보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허전했다. 지도를 더듬다 발견한 곳이 바로 다대포 백사장이 내려다보이는 지금의 집필실이다. 길고 긴 여로 끝에 몸을 푸는 낙동강과 태평양이 파도를 토하는 남해가 극적으로 만나는 곳이다. 지난 여름엔 태풍 ‘매미’란 놈이 베란다 유리를 깨고 화분까지 뒤집어 놓았을 정도로 바다는 거실 깊숙이 들어와 있다.
“바다는 가끔 섬을 잊곤 하지/ 그래서 섬의 바위들은 저렇게 파도를 부르는 거야/ 목놓아 목놓아/ 우는 거야/ 목놓아 목놓아/ 제 살을 찢는 거야”(‘바다는 가끔’).
“구름은 어둠의 드넓은 입술/ 이 섬의 허리도 핥아보고/ 저 섬의 허리도 핥아보고/ 이쪽 어둠의 어깨도 쓰다듬어보고/ 저쪽 어둠의 어깨도 쓰다듬어보고’(‘별 한 개 머리에 인 구름, 섬 사이로 걸어오네’).
아파트 23층에서 내려다 보이는 백사장은 한폭의 수채화다. 수평선은 있다지만 어디가 바다인지, 어디가 하늘인지 떠 있는 배마저 없다면 구별조차 어렵다. 시인이 처음 찾은 다대포 백사장엔 게와 갈매기와 철새들이 넘쳐났다. 게들은 마치 달리기 대회라도 하듯 서로 어디론가 몰려 다녔고, 철새들은 곡예를 부리며 낯선 이방인을 맴돌았다.
다대포 바로 옆에는 ‘몰운대’(沒雲臺·구름이 지는 곳)가 있다. 수십 년은 됨직한 구부정한 소나무들로 빼곡한 이곳은 학과 두루미가 둥지 틀기에 딱 좋은 풍광이다. 몰운대와 다대포 백사장 사이는 기암절벽이다. 견우노옹이 절벽을 기어올라 꽃을 꺾어 수로부인에게 바쳤다는 그곳이 여기가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아침마다 몰운대를 오르는 시인의 마음이 절로 읽힌다.
“오늘 아침 몰운대로 가는 길가/ 죽 늘어선 포장마차들의 간판이 눈 비비며 미소하는 이유는/ 그래서 거기 내리는 안개가 세상을 눈부시게 칠하며 일어서는 이유는/ … / 네가 나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조만간 황금빛 햇님이 통통한 팔을 뻗쳐 너와 나의 손을 잡아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조만간 황금빛 햇님이’).
그렇다고 시인의 눈에 비친 바다가 낭만적인 곳만은 아니다. 때로는 풍랑이 일고, 비바람 속에서도 고깃배나 상선을 몰고 나가야 하는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시인은 최근 발간한 산문집 ‘사랑법―그 담쟁이가 말했다’(솔과학)에서 작고 하찮은 존재에 대해 한없는 애정을 표한다. 또한 느리게 사는 것을 찬양한다.
출근할 때마다 거실에 주렁주렁 매달린 종을 치는 버릇이 있는 시인은 요즘엔 북도 친다. 영광도서 갤러리에서 매월 셋째 금요일 개최되는 시낭송회 ‘시바다’ 무대에 서서 노래하듯 시를 낭송하며 ‘둥둥’ 북을 친다. ‘북 치는 시인’이 된 것이다.
시인은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 그대에게 이렇게 답한다. ‘사랑하여라,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일 때까지/ 사랑하여라, 들리지 않는 것이 들릴 때까지’(‘까페 오디시아’).
부산=글·사진 조정진기자/jjj@segye.com
연 보 ▲1945년 함남 홍원 출생 ▲1968년 연세대 영문과 졸업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순례자의 잠’이 당선돼 등단 ▲1983년∼ 동아대 한국어문학부 교수, 미국 버클리대 방문교수(2000년), 시낭독 모임 ‘시바다’ 대표 ▲시집 ‘허무집’ ‘빈자일기’ ‘소리집’ ‘붉은 강’ ‘우리가 물이 되어’ ‘바람노래’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 ‘벽 속의 편지’ ‘시간은 주머니에 은빛 별 하나 넣고 다녔다’, 산문집 ‘그물 사이로’ ‘시인수첩’ ‘허무수첩’ ‘추억제’ ‘사랑법’, 동화 ‘하늘이와 거위’ ‘삐꼬의 모험’ 등 ▲한국문학작가상, 현대문학상 등 수상
2004.02.09 (월) 16: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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