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집이자 작업실이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팔당리로 퇴근하는 그의 차에 동승했다. 30여분만에 도착한 곳은 팔당대교 아래 강변에 나지막이 자리잡은 땅이었다. 저녁노을이 서쪽 하늘과 강물을 벌겋게 물들이는 풍광이 제법 낭만적이다. “인생의 귀거래사를 준비하기엔 제격인 곳입니다.” 요즘 그는 석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물들일 것인지 생각할 나이가 된 거지요.” 작가는 자신에게 되묻는다. ‘뭔가 할 수 있을까.’ 답은 늘 ‘그렇다’로 돌아온다. 작가로서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한 자기최면이기도 하다. 현대도예 1세대인 김석환 권순형 황종례 김익영 원대정의 뒤를 잇는 2세대답게 그는 자신의 정체성이 확실하다. “선배들이 척박해진 전통의 텃밭을 다시 갈았다면 저는 거기에 씨를 뿌리고 있는 셈이지요.” 3세대에선 분명 한국도예의 찬란한 꽃을 다시 피울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다. 창조의 뿌리가 전통이라는 그는 맛깔스런 전통도자의 맛을 재해석해 내고 있다. 엉뚱하게도 금동불상이 그의 작업의 모티브가 됐다. “5년 전 골동품시장에서 금박 일부가 벗겨진 불상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바로 이 맛이야’ 하는 외마디가 저도 모르게 터져나왔습니다.” 불상의 속살인 동(銅)의 검은 녹과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금박의 거친 대비에서 오히려 생명력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해타산의 기준으로 잘 다듬어진 도시보다 그냥 바라볼 수 있는 자연에서 생명력을 더 리얼하게 느끼는 이치와 같다. 한국 막사발의 미학이 아마도 그런 것일 게다. 작가의 예술적 영감은 결국 그런 생명력이다. 전원작업도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작가가 도자기에 금불상처럼 옻과 금박을 입히는 작업은 이렇게 시작됐다. “처음엔 안산에 있는 공장에서 금도금을 시도했어요. 미끈했지만 너무 천박스럽더라고요.” 나중에 서양화 작가인 후배 채은미씨의 “금박으로 해보라”는 조언를 받아들였다. 방부, 접착, 방습 기능이 뛰어난 옻과 금박의 만남은 우리 조상들의 지혜의 결정체였다. “색깔과 분위기에서 고고한 기품이 감돌았습니다.” 최근 금박된 찻잔 작품을 본 일본 도예 관계자가 반할 정도. 즉석에서 올 가을 일본 초대전이 결정됐다. 그는 도자기가 깨지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도 깬다. 그것조차 인간이 만들어 낸 틀이기 때문이다. 일부러 금이 간 도자를 만들어 옻과 금으로 정성스럽게 꿰맨다. 다시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인 것이다. 상처가 아물듯이. 자연의 치유력을 닮은 자연스러움이다. ‘사람도 깨졌다가 수선을 해서 온전해 지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바람도 담겨 있다. 기물을 해체하고 다시 결합하는 과정은 사람도 다시 치유되면 온전해질 수 있다는 작가의 현실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 자신도 깨진 도자기나 다름없다. “흠이 많은 저 자신을 메워가는 것입니다.” 작가에게서 삶과 작품은 같은 숙제를 안고 가고 있다. 허물 있는 인간이 그것을 인정하고 거듭날 때 금박으로 꿰맨 도자기의 아름다움이 된다. 작가가 흙을 만진 지도 어언 32년이 흘렀다. 처음엔 걸작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힘으로 흙과 겨눴다. 이제서야 흙이 친구로 다가선다. “손가는 대로 흙 가는 대로 내맡깁니다.” 흙 가자는 대로 손이 저절로 따라간다. 흙과 춤을 추듯 유희를 즐긴다. “이제야 흙을 이해할 수 있어요.” 흙쟁이의 겸손함이 읽혀진다.
“예수와 석가 등 깨달은 이들은 모두 우주의 생명력을 간파한 이들입니다. 예술가는 자신이 본 생명력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을 뿐이지요.” 그는 생명력을 느끼는 의식화작업이 매 순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장바구니 속의 채소 등 주위의 온갖 대상에서 인간중심의 쓰임새보다 다양한 형태의 생명력을 읽어내라는 주문이다. 생명력을 잃어가는 시대에 깨어 있는 작업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남양주=편완식기자/wansik@segye.com <연보> ▲1949년 서울 출생 ▲김석환 선생 사사(단국대) ▲개인전 12회 ▲산업미술가협회 공모전 대상(1979년) ▲미술대전 우수상(1984년) |
2004.04.05 (월) 16: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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