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새소리에 잠을 깨 밤하늘에 별이 총총 뜰 때 손길을 멈춘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작업실 문을 나서 하늘을 향해 긴 기지개를 켠다. 전원생활에서 얻은 습관이다. “피로도 풀리지만 하늘, 땅, 나무들이 모두 저만의 공간 같은 뿌듯함에 흠뻑 취하지요.” 이런 운치도 3년 전 주변에 공장들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작가는 오늘도 아침 일찍 가벼운 산책에 나선다. 신록이 움트는 앞산을 돌아 40여분간 걷는다. 하루를 시작하기에 앞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명상순례’다. 도공이 가마를 열때 마음을 정갈히 하듯, 그는 아침마다 칠방(건조방) 문을 열기에 앞서 30여년간 그렇게 아침을 맞이한 것이다. 언제나 칠방 문을 대뜸 열고 들어가기가 두렵다. 원하는 색깔이 안 나왔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조바심에서다. 이젠 그것마저도 부질없는 욕심이란 걸 알면서도 떨쳐버리지 못한다. 바람이라고나 할까.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경건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이거다’ 싶을 땐 세상을 얻은 기분이다. ‘아니다’ 싶을땐 조용히 문을 닫고 되돌아 나온다.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은 후에야 잘못된 작품을 꺼내서 다시 작업을 한다. 도공이 도자기를 깨는 심정과 같다. “옻칠이 제대로 마르려면 75% 정도의 습도가 유지돼야 합니다. 습도가 이보다 높거나 낮으면 색이 탁해져요.” 저녁에 옻칠을 해 칠방에 넣고 물까지 뿌려 적당한 습도를 유지한 채 밤을 보낸다. 행여 먼지가 떨어질세라 칠방에 들어갈 땐 웃통까지 벗는다. 작가는 욕심을 벗어던지는 의식으로 여긴다. 다음날 아침까지 옻칠이 화려하게 피어나기를 바라는, 긴 기다림은 도공이 불을 지피는 마음과 한가지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하는 일뿐이다. 자연은 그런 것이다. 옻은 도자를 만드는 불과 흙처럼 자연이다. 30여년 옻칠 작업에서 터득한 진리다. “옻칠은 시간이 지나 옻이 피면서 색의 깊은 맛을 냅니다. 음식으로 말하면 발효 과정을 거친 맛이지요.” 숙성 기간이 몇개월에서 길게는 2년까지 걸린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이지요. 작가는 미래의 색까지 계산하고 작업을 해야 합니다.” 오늘을 살면서 현실과 타협할 수 없는 예술가의 ‘슬픈초상’을 닮았다. 손씨는 18세 때 옻칠의 광채에 이끌렸다. “서울역 근처 무역회사 사환으로 근무할 당시 같은 건물에 나전칠기공방이 있어 자주 들르는 사이 저도 모르게 흠뻑 빠져버렸습니다.” 그는 공방을 찾아 옻칠을 배우게 해달라고 졸랐다. 그곳에서 당시 나전칠기의 3대 대가인 김복룡 민종태 김태휘의 이름을 귀동냥해서 듣게 된다. 민종태 선생을 무작정 찾아갔다. 문하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를 통해서지만 쉽게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다. “청소 심부름 등 온갖 궂은일을 하며 6개월을 기다려서야 ‘이제 됐다’며 승락을 받았어요.” 그는 3년이 지나면서 애제자로 인정을 받는다. 10년 문하생 끝에 결혼을 계기로 공방을 차려 독립을 했다. 스승은 일감까지 주며 자립을 지켜봤다. 호암미술관과 국립민속박불관에 스승과 함께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1999년 영국여왕 방한 등 국빈 선물용으로도 그의 작품은 단골 메뉴가 된다. 1997년 스승은 세상을 뜨면서는 병수발을 한 제자에게 수곡(壽谷)이란 호까지 물려주었다. 조선 말 상궁의 양아들로 궁중유물을 관리하고 칠기공방을 운영하던 수곡 전성규 선생 애제자로 스승이 물려받은 바로 그 호다. 3대째 이어가는 셈이다. “철저한 장인정신을 평생토록 간직하라는 뜻일 겁니다.” 옻칠은 완성해 놓으면 일반인들은 잘못된 부분을 외형상 찾기 어렵다. 겉으론 안 보이지만 철저하고 지루한 작업을 거쳐야만 명품이 되게 마련. “대충 해도 된다는 유혹에 빠지기 쉽지요. 그러면 작품에서 우러나오는 울림이 없습니다.” 생명력을 상실한다는 얘기다. “일본 사람이 문양까지 지정해 주문하면 민 선생님은 한국 문양을 고집했습니다. 해달라는 대로 해주면 쉽지만 ‘색깔’이 없어진다고 하셨지요.” 결국 반응도 좋아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는 이를 자신의 예술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손씨는 요즘 전통적 작업을 바탕으로 옻칠 작가로서 다양한 모색을 하고 있다. 장인 기질을 바탕으로 작가로서 거듭나기 위해서다. 벌써부터 유럽 등지에서 전시회 요청이 들어 올 정도. 국제미술계에도 도전해 볼 생각이다. 쓰임에만 머물러 있는 공예를 미술품으로 승화시키려는 열망에서다. 삼베를 캔버스 삼고 옻칠을 물감 삼아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옻에 돌가루를 혼합해 다양한 색을 얻는다. 볏짚으로 만든 새끼로 다양한 틀을 만들고, 그 위에 진흙을 발라 형태를 만든 뒤 겹겹이 삼베를 바르고, 황토와 옻을 섞어 칠하는 과정을 반복해 조형물을 만들기도 한다. 이른바 건칠기법을 현대적 조형물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옻칠공예과에서 옻칠 강의를 맡고 있는 그는 학생들에게 기법을 가르치지만 과제를 내주면서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얻는다. 체계적으로 미술공부를 한 적이 없는 그에게는 배움의 시간이다. “저만의 조형세계를 어떻게 풀어갈지 답답하고 막막할때가 가장 힘들지요. 삶의 암호를 해독하듯 평생 과제로 삼아 풀어갈 겁니다.” 작가는 전통적 재료가 현대적 조형세계와 어우러지게 한다. 단골 컬렉터도 많이 생겼다. 가평에 미술관과 제대로 된 작업실을 짓기 위해 사둔 땅도 컬렉터가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딸에게 주려고 마련한 땅을 양보한 것이다. 덴마크국립미술관 큐레이터 등 외국인이 옻칠을 배우러 왔을 때 제대로 된 공간에 없어 쩔쩔맸던 점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편완식기자/wansik@segye.com
연보 �1949년 황해도 장현생 �1968년 민종태 문하 입문 �1992년 일본 다카시마야 백화점 미술관 초대전 �1995 신라호텔 개인전 �1999년 서울시무형문화재 지정(나전칠기장)�2002년 배제대 초빙교수�2003년 남산골한옥마을전�호암미술관·국립민속박물관 작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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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19 (월) 1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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