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속의 작가들]강화에 터전잡은 조각가 김주호씨 |
작가인듯…조각상인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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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가는 길이 싱그럽다. 온 산이 녹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수채화다. 차창 안으로 5월의 신록이 달려 들어온다. 강태공들이 즐겨 찾는 내가저수지를 지나 꼬불꼬불 산길을 넘으니 조각가 김주호(55)의 작업실이 저만치 보인다. 행정구역상으론 강화군 내가면 오상리. 건물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작은 인물상들이 사열하듯 손님을 맞는다. 작가의 작품들이 작업실 주변을 미니 조각공원으로 치장하고 있다. 그 사이를 걸어 나오는 작가도 또 하나의 조각상이 되는 풍경이다. 고려산을 배산으로 멀리 내려다보이는 저수지를 임수로 한 풍수가 예사롭지 않다. 찾는 이들마다 작품 좋다는 소리보다 좋은 자리 잡았다는 말이 앞설 정도. 작가는 그럴 때마다 시샘이 난다고 했지만 자연은 그런 것이란다. 대학에 다니는 두 딸이 초등학생 때인 1992년 이곳에 터를 잡았으니 강산이 한 번 변한 세월이다. 작업 특성상 넓은 공간이 요구되니 도시공간에서 이곳까지 밀려왔다. 짝짓기가 한창인 새들의 소란스러운 지저귐도 이젠 음악처럼 들려온다. 작품엔 뱀 새 개구리 강아지 등과 어우러진 인물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서울에선 시대에 안 맞는 촌스러움으로 생각했던 것이 여기선 현실이요 시골스러움(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여졌다. 재료도 어느 하나를 고집하기보다 돌, 나무, 흙, 쇳조각 등 마음 가는 대로 사용하게 됐다. “편식 안 하고 입맛대로 먹게 된 거지요. 편애하지 않는 부모사랑과 같은 자연을 닮아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우후죽순처럼 자라는 텃밭의 풀들은 땅에 대한 욕심을 접게 만든다. 간단치 않은 풀뽑기가 삶의 가르침이 되고 있다. 이곳으로 온 뒤 낙조와 호수 속 달을 그린 ‘이발소 그림’에 대한 편견도 사라졌다. “별밤 저수지 위에 뜬 조각달이 영락없는 ‘이발소 그림’이더라고요.” 엄연한 현실을 느끼지 못하고 격이 떨어진다고 이런 저런 의미 속에 가둔 세상을 한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작가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이웃들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이웃의 얼굴들은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이 되어 줍니다. 세상의 진실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두 개의 눈이 필요하지요. 세상을 향한 우리의 눈, 그리고 우리를 향한 세상의 눈말입니다.” 김주호의 인물 작품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그렇다고 철학적 무거움을 내세우지 않는다. “예전 사람들은 의미 있고 심오한 척하는 것에 뭔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지요. 요즘 젊은애들이 재미와 가벼움 속에 진지함을 담아내는 자세를 기성세대들이 배워야 한다고 봅니다.” 작가의 인물상은 편안하게 와 닿으면서도 나름의 시각이 있다. 해학과 재미의 뒤꼍에 여운의 진실과 솔직함, 왜곡되지 않음이 있다. “재미가 있어야 힘이 있게 마련입니다.” 예전 작품보다 갈수록 가슴에 많은 꽃을 달고 있는 우스꽝스런 인물상들은 꾸밈에 대한 욕망이 커져 가는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강아지를 안고 있는 두 남녀가 앞만 보고 있는 조각상에서 두 강아지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남녀의 속마음을 은연중 드러난다.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단란한 가족상의 경우 모두가 엄마를 향해 살짝 기울어져 있다. 가정이 안정되려면 어머니라는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일상의 평범한 몸짓이나 상황의 묘사를 통해 가슴 치고 싶은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다. 단순한 표정에 가치관이 자연스레 스며든다. 이른바 ‘허허실실’의 조형세계다. 작가가 작업실에 들어선다. 한옥 대들보 한 토막이 작업대 위에 올려져 있다. 이웃이 한옥을 헐면서 가져다 준 것이다. 분필로 대상의 형태가 그려지고 이내 바쁜 손놀림 끝에 작품이 탄생한다. “흙이 됐건 폐농기구에서 나온 쇳조각이 됐건 일단 재료와 대면하면 대화를 하게 됩니다. 재료는 ‘한번 들어와 봐라’ 하고, 그러면 저는 ‘이제 들어갈게’라고 하지요.” 작품은 작가와 재료의 대화 산물인 것이다. 재료 속에 숨겨져 있던 것이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맛에 조각가는 살아간다. 작가에겐 취미 자체도 사치다. “작품으로 먹고 살겠다고 꺼덕거리고 있는데 작업 자체가 취미일 수밖에 없지요.” 가끔 술생각이 나면 대학 동기인 김병화(조각)와 후배 박진화(조각) 장진영(만화가)을 읍내로 불러내 소줏잔을 기울이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전원생활은 아내와도 많은 시간을 허락했다. 도란도란 이야기가 즐겁고 상대의 얼굴을 넉넉히 살필 수 있어 좋다. 함께 술을 들며 인생과 작품을 논하기도 한다. 약학을 전공한 아내 박유미(53)씨는 오늘 남편의 팔짱을 끼고 포구 횟집 나들이에 나섰다. “인천 앞바다에 당신의 ‘배’가 들어온다는 데 왜 아직 안 들어와요.” 남편이 말한다 “조금만 더 기다려봐.” 아내가 말한다 “내가 바보야, 믿는 척 살아야지.” 두 사람의 대화가 정겹다. 어쩔 수 없이 이젠 우린 한 팀이라는 아내의 얼굴 위로 서해 낙조가 벌겋게 떨어진다. 작가는 미술평론가가 다된 아내의 어깨를 감싸안는다. “우리 잘살아 왔지.” 7∼20일 학고재 개인전 02-720-1524 글 편완식·사진 송원영기자 /wansik@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