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속의 작가들

제주서 '바다위 전원생화' 소설가 이명인씨

바보처럼1 2007. 7. 10. 22:45
 
[전원속의 작가들]제주서 '바다위 전원생활' 소설가이명인씨
변화무쌍한 햇빛·바람…내 삶의 자양분이죠
“생각이 자꾸만 헐거워져요. 오랫동안 미워할 수도 없고, 더 이상 무엇이 좋아서 격정으로 휘몰아치지도 않는 그런 상태…. 그 헐거워진 틈새로 제주의 햇빛과 바람이 들어와요. 섬에 와서 자연과 더불어 마흔 고개를 넘어올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소설가 이명인(44)에게 제주의 햇빛과 바람은 남다르다. 서귀포의 작은 아파트 베란다에 서면 바다 앞으로 소나무 70여 그루가 도열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소나무에 떨어지는 햇빛은 황금빛이었다가 투명해지는가 하면 우윳빛으로 바뀌었다. 초원에 떨어지는 햇빛은 소나무에 내리는 빛과 달리 아득하고 신비로웠다. 건물마다 드리워지는 빛의 질감과 양감도 다양했다.

이명인은 그 빛 때문에 산란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고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다. 제주의 바람도 그녀를 사로잡은 매혹이었다. 서귀포의 외돌개에서 광포한 바람이 거대한 파도를 몰고오는 모습도 장관이었지만, 땅바닥에 낮게 엎드린 야생화들을 흔들며 오름을 휩쓸고 지나가는 바람도 좋았다. 그렇게 제주의 햇빛과 바람은 객지에서 생계 때문에 섬으로 들어온 갇힌 자의 답답한 심정을 여유롭게 바꾸어놓았다. 헐거워진 가슴뼈 사이로 빛이 내리고 바람이 들고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명인은 1992년 ‘현대소설’에 장편 ‘먼 하늘 가까운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이후 1994년 농민신문 장편공모에 다시 ‘빼앗긴 들의 사람들’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남편이 시간강사 생활을 접고 탐라대학에 전임 자리를 얻으면서 1997년 서귀포로 이주했다. 아직 ‘초보작가’인 데다 경기도 부천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사귀었던 정든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떠나 낯선 섬으로 들어온 이명인은 외로웠다. 서귀포는 가뜩이나 고즈넉하게 가라앉은 결코 ‘젊지 않은 도시’였다.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하루에 11시간 이상 책상 앞에 앉아 소설쓰기에 매달렸다. 제1회 ‘탐라문학상’ 당선작 ‘사랑에 대한 세 가지 생각’(1997년)이 그 결실이었다.

이후 ‘아버지의 우산’(1999년), ‘집으로 가는 길’(2000년), ‘치즈’(2002년) 등의 장편을 제주의 햇빛과 바람을 자양분 삼아 꾸준히 펴냈다.

이명인의 장편들을 꿰뚫는 공통된 주제나 소재를 짚어내기는 어렵다. 지난 시절 아버지들의 가부장적 권위와 애틋함을 살려내는가 하면, 제주의 설화를 배경으로 이복남매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를 쓰기도 하고, 연극판 사람들의 애환과 배회가 담긴 장편을 내기도 했다.

“제주에 와서 붙인 취미 중의 하나가 전시회 관람인데, 어떤 화가의 작품은 이름을 가려도 매번 짚어낼 수 있지만 반면에 전시회를 열 때마다 전혀 다른 작품을 선보이는 화가도 있어요. 저도 그런 의외성에 매달리는 편이에요. 새로운 직업과 사람들을 소설 속에서 만나는 동안 저 자신이 더 깊어지는 느낌입니다.”

◇서귀포 바닷가의 이명인씨.제주의 일만팔천 신들은 모두 그녀의 이웃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늘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종교적인 깊이로 인간의 본질을 천착하는 일이다. 제주의 자연과 설화가 녹아 있는 ‘집으로 가는 길’의 ‘청비’라는 여성의 캐릭터는 제주 설화에 농사를 주관하는 여신으로 등장하는 ‘자청비’를 육화시킨 인물이다. 자청비는 육지의 여자들과 달리 주관이 뚜렷하고 자기 의견을 분명하게 내세우는 적극적인 여성이다. 소설 속에는 감귤밭의 삼나무를 흔들고 가는 바람소리며, 제주의 청옥빛 바다색이 짙게 깔려 있다.

이주 초기에는 육지에 볼일을 보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한라산을 내려다볼 때면 ‘또 저 섬에 갇혀야 되는구나’ 한숨을 쉬었고 안개와 습도 때문에 힘들었지만, 섬의 자연경관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워 자주 애증이 교차했다.

지금은 이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섬 바깥이 오히려 타향이 돼버렸다. 벗들과 함께 약초를 캐러 오름과 초원으로 돌아다니며 풀밭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지금 다시 제주를 떠나야 된다면 “제주에 들어올 때 울고 나갈 때 운다”는 이곳 사람들의 이야기가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될 것 같다고 그녀는 말한다. 이명인은 2년 전에 서귀포에서 아이들 교육 때문에 제주시 노형동으로 옮겨왔다. 정작 서귀포에 살 때는 육지의 중소도시처럼 느껴졌는데 중심지에 와도 잠깐만 걸어가면 수목원이 나오고 오름에 오르면 바다가 보이는 환경을 접하면서 이제야 제주가 완전한 섬이라는 인식에 이르렀다. 제주는 어디에 머물든 간에 섬 자체가 바다에 떠 있는 전원인 셈이다.

그녀에게 소설은 무엇인가, 왜 소설을 쓰는지 물었다. 작가라면 늘 받게 마련인 이런 질문 앞에서 선뜻 한마디로 답을 내놓기는 어렵다. 근원을 따져 올라가다 보면 분명 어떤 이유가 발견되기는 할 터이지만 왜 누구를 좋아하느냐고 묻는 질문처럼 뼈마디에 이미 육화돼버린 삶의 관성을 몇 가지 이유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 안의 열정을 발산하기 위해” 혹은 “다른 직업이 없는 마당에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말로 에둘러 말했다. 그리고 당분간 소설을 쉬고 싶다고도 했다. 속에서는 여전히 소설에의 욕구가 들끓지만 정작 쓰고 싶지는 않은 이중적인 감정에 시달린다는 얘기다. 더 깊어질 때까지 자기 안의 욕망을 꾹꾹 눌러 발효의 과정을 거치고 싶다는 것일까. 결국 쓰면서 깊어지는 것이지, 내 안의 욕망을 외면한다고 자동으로 깊어지는 것도 아닐 터이고 보면 이래저래 글 쓰는 자의 자의식은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먼바다에서 태풍이 북상하던 날 비 내리는 서귀포의 갈치국 집에서 그녀는 소주 몇 잔을 마시며 아버지 얘기를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자동차 1급 정비사 자격증을 가진 기술자였다. 예전에는 흔치 않은 자격증이었을 그 기술로 아버지는 식솔들을 성실하게 보살폈고, 일하는 틈틈이 소설을 읽고 대학노트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던 문학청년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아버지를 닮은 셋째딸 이명인의 문학적 유전자의 근원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팔순이 넘은 늙은 아버지는 지금도 딸의 소설이 출간될 때마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다. 단아하지만 깊이 있고 고즈넉한 그녀의 작품을 둘러친 정서적인 돌담의 배경인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도 언젠가는 신이 될 것이다. 제주의 일만팔천 신들처럼.

“난 우리와 함께 우리 이웃에서 숨쉬던 신들의 부활을 꿈꾼다. 예전처럼 그들이 우리 곁, 허름한 집에서 함께 숨쉬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온 도시를 내려다보는 엄청난 신전을 요구하지도 않고, 그 발 아래 납작 엎드릴 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예전처럼 우리와 함께 편안한 모습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소박한 인간의 곁에서. 인간은 인간답게 신은 신답게. 그 본성을 잃지 않고.”(‘집으로 가는 길’ 서문에서)

제주=글·사진 조용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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