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속의 작가들

섬진강변 진메마을서 낳고 자라고 살고있는 김용택 시인

바보처럼1 2007. 7. 10. 23:04
[전원속의 작가들]섬진강변 진메마을서 낳고 자라고 살고있는 김용택 시인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에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함박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새워, 몇밤을 새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자의 방 앞

뜰방에 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신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가만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가만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그 여자네 집’ 중에서

김용택(57) 시인은 ‘전원속 작가’의 상징적인 문인이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 전북 임실군 덕치면 장산리 섬진강변 진메마을이고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자연스레 몸에 밴 대지와 강물의 정서를 시로 표현해온 토종 시인이다. 그리하여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도시에서 자연을 그리는 정서가 강렬할수록 그는 전원의 상징적인 시인으로 더 선명하게 등장했고, 지금 몸은 섬진강변 외진 곳에 있어도 전국적으로 노출된 ‘전국구 전원작가’가 돼 버렸다. 이번 방학만 해도 2000여명에 이르는 외지 방문객들이 진메마을을 찾아왔다. 전라도권 문학기행 단골지역으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연유로 그동안 상징적인 전원작가 김용택의 고향 방문은 뒤로 미뤄왔다. 이 시리즈의 기본 방향이 숨어 있는 전원속 그들의 외로움과 그 외로움을 자양분으로 문학의 텃밭을 일구어 가는 내공을 소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원과 한 몸이 되어 살아오면서 이제는 이순을 눈 앞에 둔 중견 시인의 내면에 일어나는 화학적 변화와 현주소를 알고 싶었고, 세상에 환하게 노출된 섬진강변 살이는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그의 시는 이제 어떤 방향을 향해 몸을 틀고 있는지, 지금쯤은 아이들과 생활하는 일이 지루하지 않은지 궁금했다.

“아이들과 벌써 35년째 살고 있는데 아이들은 늘 새롭고, 늘 충동적이고, 늘 엉뚱해. 이 아이들은 이제 내 몸이 돼 버렸어. 아이들과 생활하지 않는 삶은 생각만 해도 불안해. 애들과 놀면 재미있어. 어른들과 달리 질리지가 않어. 학교에 가지 않으면 뭔가 불안정하고 글도 써지질 않어. 교실에 앉아 있어야 내 자리에 있는 것 같어.”

전라선 임실역으로 마중나온 그의 차를 타고 섬진강변 진메마을로 가는 길에 시인은 쉼없이 요즘 근황에 대해 빠른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어른들을 위한 시집 ‘그 여자네 집’ 못지 않게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도 많이 팔린다고 했다. 요즘 성인들은 시도 소설도 외면하는 풍토이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아이들은 책을 더 많이 본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부모나 교사들이 추천해서 아이들이 반 강제로 읽게 되는 탓도 있겠지만, 문제는 아이들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게 텍스트에 대해 반응할 줄 아는 순백의 마음을 아직까지도 충분히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해가 넘어갈 무렵 섬진강에 이르렀는데 예전과는 달리 징검다리 대신 시멘트 길이 진메마을 앞 섬진강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강 건너 비탈밭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을 위해 놓인 다리였다. 그 때문이었을까. 시인은 시멘트 다리에 주저앉아 물속에서 노니는 피라미들을 내려다보다가 물 썩는 냄새가 난다고 한탄한다. 축산농가 폐수와 생활오수까지 합쳐져 섬진강의 상류조차 썩어가고 있었다. 시인의 집은 시인의 어머니가 홀로 지키고 있었다. 서재는 퇴계 이황의 시에서 따온 ‘관난헌(사진왼쪽)’이라 이름지었는데, 이는 ‘마루 위에서 물결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왕희지의 글을 집자해 현판을 걸어두었다. 사진 몇장을 서둘러 찍은 뒤 집을 나서려 하자 시인의 모친이 부엌에서 시원한 보리차 한잔을 서둘러 들고 나온다. 수없이 찾아드는 방문객들을 위해 모친은 밭에서 따온 고추나 가지를 선물하기도 하고, 그도 아니면 물을 많이 끓여놓았다가 물 한 잔이라도 대접하기를 잊지 않는다고 했다. 귀찮을 법도 하지만 아들의 문학적 배경을 찾아온 이들은 모두 아들 같은 심성을 지닌 소중한 자식들로 보였기 때문이리라.

시인과 함께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전주로 나가는 길목에서 섬진강 댐 둔덕에 앉아 있는 카페 겸 갤러리로 들어섰다. 산 능선들이 섬진 호수 멀리 수묵화의 선들처럼 흘러가고 있는 배경을 바라보며 시인이 입을 열었다.

“요즘처럼 내 시에 대해서 불안해본 적이 없어. 요즘 시들은 너무 낡았어. 내 시도 너무 상투적으로 보여서 써놓고도 발표를 못하겠어. 그동안 나는 문학이 거창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 그냥 살아오면서 책을 읽고, 읽다 보니 문학이란 것이 아름답고,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들과 아이들과 더불어 자연 속에서 살면서 자연을 이해하고 아이들과 함께 뒹구는 삶이 행복했어. 그냥 그 세월을 종합하고 정리하다 보니 시가 되고 문학이 된 것이지. 그런데 요즘은 내가 세상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물질문명이 우리네 삶을 갈수록 포박하고 위협하는 이 자본의 세상에 대해 철학적인 공부가 아쉬웠던 것 같어.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이 세상에 대해 문학적으로 발언을 하고 싶은데 그게 쉽지가 않어.”

그러나 아무리 어떤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시에서 그 목적의식이 앞서면 자연스러운 시의 서정과 감동이 훼손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공부’에 대한 강박관념보다도 섬진의 자연 속에서 깊이 쌓아온 연륜과 정서를 보다 절제된 이성과 감성을 동원해 뚜렷한 지향성을 자양분으로 길어낸다면, 시인의 불안은 질 좋은 거름이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인은 정작 자신의 ‘오래된 미래’에 대한 밑그림을 충실하게 그려놓고 있었다.

“나는 정년퇴직 후 덕치초등학교 교실 한 칸만 마련해 준다면 원이 없겠어. 그곳에서 머리 허연 할아버지 시인이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글을 쓰고, 또 그 아이들과 더불어 한시간이라도 글 쓰기 학습을 하면서 늙어가는 그런 노후가 내 소망이야. 지금 나보다 어린 교감이나 교장도 많지만 나는 그런 감투에 대한 미련은 버린 지 오래야. 그것이 내 생에 무슨 도움이 되겠어?”

시인은 지금 할 일이 태산 같이 쌓여 있다. ‘촌놈’이 보고 느껴온 그림에 대한 에세이를 쓰는 일, 모친이 장만했던 가난했던 시절의 음식 이야기, 어쩔 수 없이 자연과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글과 그림으로 자연을 연결해주기 위한 다양한 작업들이 산더미처럼 그의 앞길에 놓여 있다.

그는 오전 4시에 일어나 2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글을 쓰고, 다시 학교에 나와 아이들과 더불어 학습하는 시간이 끝나면 오후 2시경부터 퇴근 무렵인 5시까지 아이들을 교실에 붙잡아놓고 놀게 만든 후 자신은 또다른 집필에 전념한다. 술도 그는 많이 마시지 못한다. 이처럼 집중적인 그의 성실한 글쓰기 ‘노동’은 수많은 저작들로 쉼없이 생산되고 있지만, 그는 아직 자신이 상정한 작업의 반도 채 해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부터 농사로 단련된 체력에다 ‘복잡한 일은 오래 끌지 못하고 생각도 못하는’ 타고난 낙천적 성격이 그를 영원한 자연속 아이 같은 싱싱함으로 노년에도 그를 늙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임실=글·사진 조용호기자/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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