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속의 작가들]천안 목천읍 산속에서 사는소설가 박경철 | ||
賣文은 안한다, 오직 내 글을 쓸 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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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철은 대학 졸업 후 8년 동안 아산시 송악면에서 부모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소설을 썼다. 1997년 결혼하면서 목천읍 산속에 지어진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이곳 16평짜리 공간에서 지금까지 생활하고 있다. 9살 연하의 아내는 뒤늦게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이고, 그는 바깥 나들이를 최대한 절제한 채 7살짜리 아들 채성을 키우면서 살아간다.
현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문간 옆에 그의 좁은 집필실이 있고, 정면에 보이는 거실은 침대가 놓여 있는 침실 겸용이다. 15층 꼭대기 방 베란다 너머로 줄기줄기 흘러가는 산 능선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부모님이 계시는 송악에 다녀오는 것 빼고는 도시에 일절 나가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 관계가 폭이 넓진 않지만, 새로운 만남은 가급적 피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면 지출이 발생하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지요. 오래된 고마운 친구들이 많은데 그들도 제대로 만나지 못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에는 너무 버겁습니다.”
그에게 가장 친한 친구는 아들 채성이다. 갓난아이 때부터 엄마 역할을 그가 도맡다시피 해왔다. 아들은 잠을 잘 때도 아빠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아침에 아내를 도서관에 데려다주고 늦은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한 뒤 아이와 함께 근처 산길을 산책한다. 오후 내내 다시 아이와 함께 게임을 하기도 하고 책을 읽어주면서 낮시간을 전업주부처럼 산다. 설거지나 빨래와 집안청소도 낮시간의 주된 노동 항목이다. 밤 9시 무렵에서야 아이가 잠이 들면 그 때부터 새벽까지 그만의 고독한 글쓰기가 시작된다.
공군 군견병으로 군대생활을 한 그는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군대 사회의 일단을 혹독하게 경험했다. 이 체험이 그를 습작으로 내몰았다. 경기대 전자계산학과에 복학한 뒤 신춘문예에 응모했지만 잇달아 고배를 마셨다.
대학 졸업 후 박경철은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직장에 다녀야만 하는 현실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 글쓰기와는 영영 결별해야 할 것 같은 안타까움을 간신히 접어둔 채 중소기업체 면접관 앞에서 섰는데, 어떤 말끝에 그는 “집에 가서 소설이나 쓰겠다”며 뛰쳐나와 그 길로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1993년 겨울 ‘세계의 문학’에 단편을 보낸 뒤 그 사실조차 잊고 있었는데 이듬해 잡지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리하여 1994년 단편 ‘매향’으로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다. 이후 그는 군 생활의 체험을 담은 장편 ‘염소를 위하여’를 비롯해 ‘헤밍웨이를 읽을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 ‘마음의 지도’, 창작집 ‘빙어가 올라오는 계절’ ‘유년의 자리’ 등을 펴냈다. 데뷔 10년 동안 써낸 장편 3권과 창작집 2권 분량은 그동안 그가 쉬지 않고 집요한 글쓰기를 해왔다는 충분한 반증이다.
박경철의 소설들은 의식의 흐름을 좇아가는 다분히 실험적인 스타일이다. 장편 ‘헤밍웨이…’에서는 담배가게 표지판들을 따라가며 기억을 되살리는 형식이고, 2000년 삼성문학상을 안겨준 ‘마음의 지도’는 소설 속에서 작가가 이상한 전화를 받고 황금펜촉 작가로 변신해가는 과정을 통해 메타소설을 시도하는 방식이다. 대중 독자들로서는 통상적인 서사 구조를 갖춘 여타 작품들과 다른 그의 소설 형식에 빠져들기가 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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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을 미주알고주알 엮어내는 작품에는 흥미가 없습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에너지가 강력한 소설, 역동성이 넘치는 그런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베스트셀러를 쓰고 싶은 욕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내 능력 밖인 것 같아요.” 기승전결을 갖추어 갈등하고 화해하는 소설을 그는 ‘나이 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미주알고주알의 세계’로 상정한다. 그는 소설에서 ‘감동’은 ‘밀도가 낮은 그 무엇’으로 생각한다. 그는 ‘감동’보다도 인생의 본질적 정서를 담아낸 한 문장이 비수처럼 찔러 돋게 만드는 ‘소름’의 경지에 더 집착한다. |
그는 해가 뉘엿뉘엿 지는 ‘개와 늑대의 시간’에 사춘기적 감성을 대입한 오정희의 절묘한 문장에서 소름이 돋는다.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달리는 버스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데 아이가 흔들릴 때마다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은 손에 힘을 주는 대목에 관한 묘사에서 또한 소름이 돋는다.
언젠가 어린 아들이 실수로 보조키를 잠그는 바람에 밖에서 문을 열지 못 해 홀로 집안에 갇혀 울기 시작했는데, 아이는 자신의 눈물을 문 밖의 아빠가 우유 넣는 구멍으로 손을 디밀어 닦아주기를 원했다. 고집스럽게 아빠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기를 바라는 어린아이를 보면서 그는 깊은 전율을 느꼈다. 이렇듯 한순간의 이미지, 느낌, 동력 같은 것들을 소설 속에 그만의 방법으로 밀도 높게 형상화하는 작업이 그가 지향하는 소설인 셈이다.
그가 요즘 ‘시간’이라는 화두에 유난히 민감하게 집착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생의 틈새, 그 틈과 틈을 이어주는 시간, 그 속 어딘가에 숨어서 반짝, 빛을 발하는 그 무엇을 찾아내는 일이야말로 우주의 근원을 엿보고 싶은 자의 무한한 욕망일 터이다.
직접 손보지 않는 곳이 없는 10여 년 묵은 낡은 엑셀 승용차로 그가 천안 역까지 바래다주었다. 먼지 낀 뿌연 유리창 너머로 염천의 하늘이 보이는 역전 카페. 뜨내기들이 잠시 쉬어 가는 그 카페에서 담배 연기를 길게 토해낸 박경철이 맑은 눈빛으로 말했다.
“결혼 전에는 시골에 갇혀서 살아가는 생활이 답답하고 뭔가 다른 이들에 비해 뒤처지는 느낌이었는데, 결혼이 내 소설의 몸을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이렇게 사는 사람도,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으려니 생각합니다. 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내 길을 갈 뿐입니다.”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광풍이 몰아쳐도 깊은 막장에서 지상의 변덕스러운 일들은 아랑곳없이 묵묵히 생의 비의를 캐내는 일, 그 소름 끼치는 인생의 본질을 글로 천착하는 작업이 그의 몫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천안=글·사진 조용호기자/jhoy@segye.com
2004.08.09 (월) 16: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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