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김선구(45)가 1997년 경기도 김포(양촌면 석모리)에 작업실을 마련한 후 일상이 되어버린 풍경이다. 차로 30분 거리인 가족이 있는 서울 가양동 집을 그렇게 오가며 그는 ‘출근 작업’을 해왔다. 그에게서 전원작업은 ‘배부른 타령’이 아니다. 자칫 나태해지기 쉬운 자기자신을 독려하는 수단이다. 직장인처럼 하루 8시간 작업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전원작업실도 남들이 생각하는 여유있는 객기와는 거리가 멀다. 1996년 일본경마협회 말조각 국제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 그때 받은 상금 1억5000만원으로 땅을 사고 작업실을 지었다. 벽돌 쌓는 일과 전기배관을 빼고는 몸으로 때웠다. 잔디밭 정원과 인공폭포도 혼자 만들었다. 정원 담벼락의 전봇대를 치우는 대신 그 비용으로 그 앞에 소나무를 심어 가렸다. 이런 그의 행동 근저에는 조각가는 무슨 일이든 노동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철학이 깔려 있다. 사실 조각은 힘든 노동이다. “몸이 작업을 지배해야지, 일한테 지면 작품이고 뭐고 끝장이지요. 일을 가지고 놀아야 당사자는 물론 보는 사람도 즐겁기 마련입니다.” 마음대로 쥐고 논 작품만이 감흥이 있다는 얘기다. 그는 구상조각을 고집한다. 신라조각 등 찬란한 전통에도 불구하고 한국 현대조각에선 서양 추상조각의 수입에만 급급해 구상조각에 대한 천착이 부족했다는 평가에서 비롯한다. 구상조각 한가지만 붙들고 깊이 들어가 보겠다는 결심이다. 일본경마협회 말 공모전 수상작도 의외로 고개를 떨구고 의기소침해 있는 패한 말 모습이다. 박진감 넘치는 질주나 우승마의 의기양양함이라는 일반 상식과 어느 사조(흐름)에도 따르지 않은 독창성이 높게 평가받았다. “2차대전 때 패배의 쓴맛본 일본인들은 패자에 대한 미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패한 말이 어필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대구월드컵경기장 상징 조형물 공모전에선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경기에서 진 세사람이 서로를 위로하고 달래는 모습을 형상화한 ‘내일의 승자’라는 작품이었다. 한국에선 아직은 패자의 미학이 스며들 여지가 없음을 확인하는 기회였다. ‘작가는 고독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는 그는 직장인들이 일터를 지키듯 작업실의 외톨이 붙박이를 자청한다. 처음엔 외로웠지만 이젠 혼자가 제일 편하고 좋다. 한때 그도 조수를 두었다. 손보다는 머리만 쓰려 하고, 시켜서 만드는 버릇이 생기니 조금 마음에 덜 차도 적당히 타협하게 되는 자신을 보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게으름과 약삭빠른 재간만 남은 작품들만 남게 됐다. 당시 작품들은 지금 보아도 내놓기가 부끄럽다. 마흔이 되어서야 그는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허명을 좇아 삶을 낭비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 것이다. 어느날 문뜩 무엇을 해야 하고 포기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궁극에는 자신을 살게 하는 일인지 확신이 생겼다. 대학 강의를 중단하고 작업에만 전념키로 했다. 교직은 그에게 천성적으로 어울리지 않았다. 재능이 보이지 않는 애들에게 가능성을 말해주어야 하는 곤혹스러움도 괴로웠다. 싱싱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조차 진학과 미래를 위해 교수들에게 스스로 기생하는 그 어린 교활함이 싫었다. 교직이 단지 호구책이거나 권력과 권위 수단이 되어 때로는 예술가로, 때로는 지엄한 교수로, 이권 앞에서는 장사꾼으로 변신하는 부류로 취급당하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집사나 비서 노릇을 해야만 그들의 편이 될 수 있는 분위기도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전업작가로 작업에 승부수를 던지기로 했다. 청동 철 스테인리스 스틸로 인체와 동물을 해부학적으로 분해한 것 같은 근육과 골격이 두드러진 조각작품을 만들어 온 그가 요즘엔 합성수지로 형상을 만든 후 다시 잘라 해체해 붙이는 작업을 한다. 엇각이 나도록 해 양각과 음각의 음양조화로 극명한 효과를 얻어내고 있다. 깊이와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승부수는 지난 4월 베이징아트페어에서 출품작이 매진되는 ‘보답’으로 돌아왔다. 오는 11월 상하이아트페어 출품작 준비로 요즘 그는 하루가 짧다. 그래도 하루종일 놀고 있다고 너스레다. 작가는 작품마다 형태의 비밀을 하나씩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걸 푸는 순간 시간을 아껴가며 프라모델 맞추듯 천천히 즐기면서 작업을 한다. 재미를 더 잘게 썰어 더 늘려 보고 싶은 것이다. 조각가는 만드는 재미, 만드는 것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란다. 아침 일찍 도시락 가방을 들고 신이 나서 집을 나서는 등뒤로 아내가 혼자말을 한다. “뭐가 그리 재미있을까.” 일을 놓고는 잠자는 밤마저 길게 느껴지는 작가의 모습에서 소풍 전날의 아이들 얼굴이 떠오른다. 작업대 앞에 그가 다시 섰다. 거울앞에 칼을 든 조각상이 형태를 갖춰가고 있다. 거울속 허상과 실상이 서로 겨루는 자세다. 작품이란 결국 작가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얻어지는 전리품이란 것을 비유하고 있는 듯하다. 황금 들녘 바람이 작업실 창을 넘어와 작가의 땀을 훔친다. 석양에 비친 그의 얼굴이 불타고 있다. 글 편완식, 사진 허정호기자 /wansik@segye.com |
2004.10.04 (월) 1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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