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속의 작가들

강원도 평창군 고향집서 창작하는 소설가 김도연

바보처럼1 2007. 7. 10. 23:16
[전원속의 작가들]강원도 평창군 고향집서 창작하는 소설가김도연
소·닭·당근이 등장하는 소설, 어떨까요?
 ◇가을걷이가 끝난 텅 빈 당근밭에 들른 김도연씨. 빈 밭에 굴러다니는 당근 하나 주워 들고 환하게 웃는다.
아궁이 앞에서 불을 때는 남자가 있다. 깊은 산골의 외딴집 아궁이 속 장작불이 남자의 얼굴을 뜨겁게 비춘다. 돌배나무에서 제 무게를 못 견딘 돌배 하나가 쿵, 함석지붕 위로 떨어진다. 남자는 아궁이 곁에 둔 술단지에서 지난 계절의 돌배로 담근 술을 한 잔 퍼내 목구멍으로 털어넣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자의 얼굴은 아궁이의 열기와 돌배술로 인해 점점 더 붉어진다. 남자는 생각한다. 이곳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유천리 고향집이 지구의 막다른 절벽이라고. 아궁이 곁을 떠나면 남자는 다시 두 평짜리 자신의 방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곳은 남자가 지구를 향해 열어놓은 꿈의 산실이다. 그는 밤마다 꿈을 꾸고, 꿈속에서도 꿈을 꾼다.

그 남자는 아직 미혼인 채로 고향집에서 노부모를 모시고 당근과 당귀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려가는 소설가 김도연(38)이다. 강원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강원일보(1991년)와 경인일보(1996년) 신춘문예에 연거푸 당선된 후 다시 제1회 중앙일보 신인문학상(2000년)으로 문단에 나온 작가다. 등단 햇수로만 치면 10년이 넘지만 본격적으로 이른바 ‘중앙문단’에 등단한 지는 이제 5년 차에 불과한 신인이기도 하다.

그에게 ‘귀농’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도시에서 방황을 하다가 고향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는 될 수 있는 한 농사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집에서 한 시간 거리 떨어져 있는 강릉으로 가지 않고 도 경계선의 끄트머리인 춘천으로 유학 가서 그곳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한 연유도 그 때문이다. 강릉으로 가면 주말마다 집에 안 올 수도 없고, 노부모가 1만평이 넘는 밭을 경작하는데 쉴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끊임없이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수원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누나 가게에서 숙식을 하며 도시의 삶을 살았다. 부모로부터 돈을 빌려 춘천에서 자신이 직접 카페를 꾸리기도 했지만, 결국 밤중에 도둑처럼 짐을 싸서 고향집으로 돌아갔다. 그의 나이 서른네 살이었다. 그는 겨울이 지나도록 도시에서 싸 온 짐을 풀지 않았다. 봄이 오면 다시 떠날 작정이었다. 하지만 젊은 날과는 달리 정작 봄이 왔을 때 노부모가 드넓은 당근밭을 경작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차마 떠날 수 없었다.

그렇게 붙잡힌 세월이 벌써 5년째다. 도둑처럼 귀향하던 그 해 가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에 단편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당선되었다. 결국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를 짓고, 긴 겨울 동안 소설을 쓰는 삶이 시작되었다. 물론 농사일 틈틈이 청탁받은 단편을 쓰는 일도 병행했지만, 유난히 긴 강원도의 겨울이 와야 그는 그만의 깊은 꿈속을 마음 놓고 유영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늘 담장 위에 서 있는 꼴이었습니다. 담 위에 서 있으면 양쪽이 다 보이지요.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가장 먼저 발견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느 쪽으로도 뛰어내려 깊이 살아내지 못하는 주변인 신세를 면하지는 못하지요. 지금 내 화두는 밭과 집과 산입니다. 밭에서 제대로 무언가를 키워내고 싶고, 집에서도 본격적으로 살고 싶어요. 물론 지금도 농사를 짓고 집에서 살고 있지만 주체적이진 못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뛰어내리는 건 쉽지만 어떻게 내려가느냐의 문제일 겁니다.”

귀향하던 해에 가까운 진부면에 도서관이 생겼다. 그는 그곳으로 출퇴근하면서 글을 써왔다. 그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의 총량은 한 달 동안 불과 10분도 안 되는 때가 있다. 함경도 출신의 무뚝뚝한 노부모와 겸상을 하는 경우도 하루에 한 번 있을까말까 하다. 그렇다고 산골에 대화가 통할 다른 젊은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부모와 나누는 짤막한 대화나 도서관 직원과의 사무적인 대사가 고작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소설을 쓰자면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그 속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들을 자양분으로 삼아야 하지 않느냐는 강박감이 그에게 있다.

“집에서 키우는 소 개 닭 등의 가축이나 밭에서 키우는 당근이나 당귀들과 부딪치는 것은 소설이 안 될까요? 김유정풍의 농촌소설이 아닌, 눈만 뜨면 사람보다 먼저 보이는 자연과 부딪치는 모던한 소설을 써보고 싶어요.”

문학이란, 문학뿐만이 아닌 모든 예술이란,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적인 영역이 생명일 터이다. 그렇다면 김도연이 꿈꾸는 소설이야말로 득의의 한 영역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던 고향의 농사짓기에 이제 서서히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일치시켜가는 중이다.

그가 노부모와 경작하는 당근밭에 들렀을 때 마침 외지인들에게 팔아 넘긴 올 당근을 거두기 위해 일꾼들이 포장박스를 늘어놓고 있고, 트럭이 그것들을 싣고 있었다. 텅 빈 당근밭에는 생채기 난 당근들만 뒹굴고 있다. 당근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히는 김도연의 얼굴이 석양의 측광을 받아 깊은 어둠과 빛으로 양분된다. 당근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가 자랑하는 돌배나무를 보았다. 이미 돌배는 모두 떨어지고 아직 청청한 돌배 이파리들이 무성하다.

돌배는 배처럼 먹는 과일은 아니다. 맛이 없고 딱딱하다. 돌배는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해 저절로 떨어진다. 카메라 파인더 속에 비친 김도연의 얼굴이 얼핏 단단하고 무거운 돌배의 이미지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방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나무를 때는 보일러실을 들렀다. 사방에 장작더미가 쌓여 있고 화덕 앞은 움푹하게 패어 있다. 그가 장작을 때면서 돌배술을 마신다는 그 현장이다. 김도연의 방은 채 두 평도 되지 않을 만큼 좁았지만, 벽에 그득하게 채워진 책들과 창 밖으로 보이는 드넓은 당근밭과 그 너머 산색이 평화롭고 아늑했다. 책상 위쪽 벽에는 일본영화 ‘철도원’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그는 눈이 나오는 영화나 소설이라면 무조건 좋다고 했다.

겨울 내내 지겹게 내리는 눈의 고장임에도 그는 눈에 대해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첫 창작집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실린 단편들에도 끊임없이 눈이 등장한다. 그가 담근 지 얼마 안 된 것과 지난해에 익힌 곰삭은 돌배술 두 단지를 내왔다. 곰삭은 돌배술은 쌉싸름하고 달콤했다.

아무런 첨가물도 없이 돌배에 소주만 부어서 숙성시키면 딱딱하고 무심한 돌배가 내뿜는 향에 술이 익는다. 그는 올 겨울을 나기 위해 여섯 단지의 돌배술을 담가놓았다고 했다. 그 술이 김도연의 식도와 위장을 거쳐 핏줄에 스며들 때, 외진 산골의 깊은 밤은 아궁이 앞에서 소설로 익어갈 터이다. 김도연의 첫 창작집에 수록된 단편 ‘검은 눈’의 한 대목은 이렇게 이어진다.

“눈이 그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마을로 이어지는 길이 오래 전에 흔적을 감췄다는 사실을 알았다. 눈 위에는 짐승의 발자국 하나 찍혀 있지 않았다. 언제 길을 쳤는지 기억하려 했지만 술기운 탓인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길을 쳐도 사실 찾아올 사람도 없었다. 폭설로 뒤덮인 골짜기에 집 한 채가 있고 그 집에는 늘 취해 있는 사내가 있을 뿐이다.”

평창=글·사진 조용호기자/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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