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속의 작가들]청도 구만산자락의 화가 이목을 | ||
손때 묻은 도마에 대추·감 극사실화 "사람의 역사가 스민 영혼을 만난다" | ||
|
작가는 그렇게 잠드는 시간까지 “혼자 가만있어 버린다”고 말한다. 흙탕물을 침전시키듯 하루를 가라앉히고 있는 것이다. 퍼내려 하면(무언가 하려들면) 자꾸 흐려지는 이치를 알기 때문이다. 자신이 봐도 ‘미친놈’이라며 허허 웃는다. 혼자 있을 때 즐겁고 사람과 있을 때 되레 외롭단다.
경북 청도군 매전면 구만산 자락. 저만치 금천이 굽이쳐 흐르는 옛 절터(장연사지)인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1997년. 번지수 없는 자신의 작업 정체성을 찾아 이산 저산 산생활 끝에 찾은 곳이다. 땅은 밤에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그는 늦은밤 이곳에 들렀을 때 엄마 품 같이 편안함을 느꼈다고. 보통 사람들은 낮 시간에도 무서움을 느끼는 곳이다. 소름이 끼치는 장소는 자신과 맞지 않는 터라는 것. 그가 밤늦게 산짐승처럼 산에 올라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것은 그런 땅의 기운을 몸으로 체득하기 위해서다. 멧돼지 등과 눈을 마주칠 때가 가장 두렵다는 작가는 이웃 마을도 자주 서성거린다. 수상한 사람으로 몰려 수차례 곤욕도 치렀다.
그가 터를 잡고 손수 집을 지었다. 공사판 막노동 경험이 요긴했다. 초등학교 졸업 무렵 부친의 사업 실패로 그는 물로 배를 채우며 해본 일이 200여가지가 넘는다. 대학 시절에도 사정은 마찬가지. 학교(영남대)보다 일터에 더 많이 있었다. 그림 그리는 것이 그저 좋아 유일한 낙으로 삼았다. 길거리에서 꽃을 팔다가도 이젤을 펴놓고 그림을 그렸다.
목재로 집짓는 일을 끝마치는 날 나무들이 달려들듯 다가왔다. 그 즉시 그림 그릴 만한 나무판을 찾아 마을로 내려갔다. 비에 젖은 몸으로 애걸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그가 실성했다고 했다.
이때부터 손때가 묻은 소반이나 도마 위에 고무신이나 대추, 감, 도루묵 등을 극사실로 표현했다. 소반이나 함지박의 뒷면에 그리는 것을 고집한다. 채우려고만 했던 물건들을 뒤집어 쏟아버리듯, 자신을 비워가고 있는 것이다.
그림의 주 소재인 대추와 감은 그의 작업실 주변에 손만 뻗으면 널려 있다. 작업실에 이르는 길을 달리다 보면 길가의 대추와 감이 차창 안으로 뛰어들어 온다. 그의 그림이 실제 사물처럼 보이는 것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재라는 점도 일조하고 있다. 정말 더 실감나게 해주는 이유는 따로 있다. 소반 등 실체 위에 그리기에 더 진짜 같은 것이다.
![]() |
한때 그는 초월적인 종교화에 몰두했다. 그럴수록 사람들이 읽어 낼 수 있는 보편성을 잃어갔다. 심지어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보면 도망치기 일쑤였다. 그는 이 난제를 풀기 위해 산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지금 눈에 보이는 극사실화를 그리면서 비로소 초월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가까운 곳에 풀지 못했던 해답이 있었던 것. 오랜 시간이 흘러 손때에 전 기물엔 사람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고들 한다. 그 위에 그려넣는 그림은 보이는 형상 그 이상의 것이 내포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가 그리고자 했던 영혼 등 초월적인 것이 거기에 스며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결국 무형을 그리려고 극한의 형상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
그는 넘쳐 흘러 나눔이 진정한 비움이라고 말한다. 실제 사물을 그리는 것도 화면을 채우는 일이다. 그 뒤로 흘러 넘치는 비움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대추가 가득한 한쪽에 빈 공간을 병치시키는 것은 이를 은유한다.
서양화가 표피적으로 형상의 유무에 따라 구상과 추상을 구분하는 것은 이제 더는 그에게는 의미가 없다.
베끼기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기 것을 만들어야 남과 나눌 수 있다는 그는 이제 서양화에 빚진 것을 갚을 때가 됐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내년엔 뉴욕에 진출해 작업할 예정이다.
집안에서만 종을 울리면 시끄럽지만 밖에서 치면 은은하게 들리게 마련. 그는 세계의 중심부에서 자신을 울려보려는 것이다.
그의 작업실 앞마당의 잔디가 푸르다. 그 모퉁이에 큰 솟대가 하나 세워져 있다. 나무막대기 끝에 새가 앉아 있는 조형물이다. 나무새는 이승과 저승을 매개하는 영매다. 작가는 예술로서 그 역할을 하고 싶어한다.
새벽녘 작업실 옆 연못에 고라니가 내려와 물을 먹는다. 작가도 일어나 물을 마신 후 작업대에 다가앉는다. 작업의 특성상 해가 뜨면 시작하고 해가 지면 접어야 한다. 자연광 아래서 해야만 하는 작업이라 지붕 위에도 유치창이 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빛을 요리’하는 일이라 했다.
청도=글·사진 편완식기자
/wansik@segye.com
2004.09.13 (월) 16:46 |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전원속의 작가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화 석모리 족가가 김선구씨 (0) | 2007.07.10 |
---|---|
충북 영동군 영국사 뒷방 기거시인 양문규 (0) | 2007.07.10 |
원주 치악산 자락서 사는 목사시인 고진하 (0) | 2007.07.10 |
광주 태화산자락서 작업 화가 장순업 (0) | 2007.07.10 |
섬진강변 진메마을서 낳고 자라고 살고있는 김용택 시인 (0) | 2007.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