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88올림픽 당시 일본 도쿄의 긴자 아오키메탈 초청전에서 이 기법을 소개, 요미우리신문이 발간하는 칠보잡지에 게재되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 이 기법은 일본 공예인들 사이에서 ‘동박기법’이란 이름으로 널리 모방되고 있다. 1982년 프랑스 리모주 국제칠보전과 86년 제16회 서울시 공예품경진대회에 출품, 입상하기도 했다. 칠보란 금·은·구리·점토·유리 등의 프레임에 칠보유약으로 디자인한 뒤 가마에 굽는 독특한 공예기법의 하나로 구워진 유약은 유리질화돼 아름다운 보석으로 탈바꿈된다. 칠보는 귀고리·목걸이·브로치·팔찌·반지 등 액세서리와 장신구는 물론 작품성이 뛰어난 실내용품, 실외 조형물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김씨는 그의 유약이 지닌 특성에 대해 “기존의 원색에 비해 색상을 한톤 낮게 해 현대적 감각이 묻어나고 중후하면서 고급스런 느낌을 준다”며 “자연의 색감을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에 주안점을 뒀다”고 소개했다. 작품의 제작과정을 ‘불과의 싸움’으로 표현한 그는 굽는 온도에 따라 유약의 색깔이 달라지기 때문에 온도를 맞추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털어놨다. 작업 도중 가마에 작품을 넣어놓고 깜박하는 사이에 유약이 다 녹아버려 못 쓰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것이다. 반면 그런 실수가 오히려 상상하지 못할 색감을 발견하는 계기로 작용할 때도 있단다. 85년 무렵 발견한 산화피막을 제거하지 않은 걸작품도 바로 그런 과정에서 탄생된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가 칠보공예 분야에 처음 뛰어든 것은 고교 졸업 직후인 1970년. 남대문에서 칠보 액세서리 가게를 운영하는 부친에게서 관련기술을 전수받은 그는 국내 대학의 공예·귀금속·금속 전문학과를 다니며 이론을 겸비한 공예인으로 발돋움했다. 82년 은평구 진관외동에 금하칠보개발연구소를 개설했으며, 현재 대구대 조형예술대 공예디자인과에 출강하고 있다. 칠보공예 분야의 문제점과 관련, 그는 “어느 분야건 중국의 저가(低價) 공세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라며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선 소규모일지라도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틈새시장을 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활필수품보다 창의력이 발휘된 작품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일본에서 칠보와 금속공예를 공부하고 돌아온 조카 박수경(33)씨와 함께 최근 인터넷 쇼핑몰까지 개설, 칠보의 국내 대중화와 해외시장 개척에 나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그는 조카 박씨의 제안으로 제주도 서귀포의 공방을 철수, 오는 8∼9월 강화도로 이전할 예정으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고도 했다. “우리 칠보공예를 되살리는 일에 조카가 가담해 3대를 잇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뻐요. 앞으로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주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체험교실을 운영하는 한편 유럽·미국 등지를 주요 무대로 삼아 해외 판로도 개척해 나갈 계획입니다.” 여론독자부 기자 /sksong@segye.com |
2004.07.27 (화) 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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