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지킴이

윤도현씨 "청자는 불.흙으로 빚는 최고의 예술품

바보처럼1 2007. 7. 24. 11:21
윤도현씨 "청자는 불ㆍ흙으로 빚는 최고의 예술품"
'1억 짜리 초대형 청자' 제작으로 화제에 올라
운영하던 약국까지 접고 28년째 '도공'으로
 ◇청자명인 윤도현씨가 7일 전남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청자촌’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도자기를 굽기에 앞서 물레를 돌리며 자기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고 있다.
“청자는 세월의 겹이 쌓일수록 빛이 납니다. 보면 볼수록 은은한 빛깔의 향기에 빠져듭니다. 이는 제가 살아가려는 인생 목표와 같아 각별한 애착을 느꼈습니다.” 28년간 고려청자의 비색 재현에 공들여온 청자 명인 윤도현(64·전남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씨. 윤씨의 인생은 ‘팔색조’에 가깝다. 윤씨가 가진 직업만 해도 약사, 정치인, 농민, 도공 등 4가지. 윤씨가 처음부터 ‘도공’의 길을 택한 것은 아니다. 양조장을 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조선대 약대에 진학해 고향인 강진에서 약국을 운영했다. 그러나 윤씨는 1979년 겨울 강진 도요지(가마터) 부근 고려청자 발굴작업에 우연히 들렀다가 고려청자 조각을 보고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

청자 조각의 매혹적인 푸른 빛깔에 푹 빠졌다는 윤씨는 이때부터 약국 운영을 뒷전으로 미루고 도자기 굽는 데 열중했다. 윤씨는 발굴현장에 차려진 청자사업소 이용희 연구실장을 따라다니며 고려청자에 대해 배웠다. 집 인근에 조그마한 작업실을 차려놓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려청자 재현에 몰두했다. 가족들은 갑작스러운 윤씨의 ‘이상한’ 행동에 반대가 심했다.

“돌아가신 아버님은 ‘편히 살게 하려고 약대에 보냈더니 왜 손에 흙을 묻히려 하느냐’면서 크게 질책하셨고, 아내도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 도자기를 왜 구우려고 하느냐’면서 난리였습니다.”

하지만 윤씨의 의지는 확고했다. 강진의 상징물인 고려청자의 명맥을 이어내는 것이야말로 죽어서도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윤씨는 1991년 지방선거에 출마해 군의원에 당선됐다. 고려청자의 명성을 널리 알리고 농민이 대부분인 군의 농업 발전에 앞장서겠다는 것이 당시 출마의 변이었다.

군의원이 된 윤씨는 1995년 강진군과 협의해 옛 고려청자 도요지였던 대구면 사당리에 대규모 ‘청자촌’을 건립하기로 했다. 강진군 곳곳에 흩어져 있던 ‘도공’을 한자리로 묶어내기 위해서였다. 윤씨는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같은 해 처음으로 민간 가마인 ‘도강요’를 만들었다. 이때 아예 약국 문을 닫아버렸다. 고려청자 재현에 매진하기 위해서다. 윤씨가 앞장서자 12명의 도공이 이곳으로 터를 잡았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큰 시련을 맞았다. 1997년 말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청자 판매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청자촌 건설을 위해 정부에서 빌린 자금과 운영비 등 10억원의 빚만 남았습니다. 후회하기도 했지만 힘들 때마다 물레에 앉아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다행히 2000년을 지나 경기 회복과 맞물려 강진군청의 적극적인 홍보와 윤씨의 전문성이 알려지면서 판매가 호조를 보였다. 해가 갈수록 판매량도 늘어 최근 몇 년간 해마다 수억원의 매출액을 올려 지난해 말 빚을 모두 청산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윤씨가 다섯 달 동안 공을 들여 제작한 높이 110㎝, 둘레 320㎝ 짜리 초대형 청자가 1억원에 판매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 청자상감당초문호(靑磁象嵌唐草文壺)에 들어간 흙만 300㎏. 고려청자의 비색을 그대로 재현한 것처럼 보이는 신비스러운 빛깔, 부드러운 곡선, 빈틈없는 균형미를 뽐내 최고의 명품으로 인정받았다. 판매가의 절반인 5000만원을 자신이 다니던 교회에 헌금해 또 한번 화제가 됐다.

“처음 이 청자를 사겠다는 사람이 5000만원을 제시했는데 충북의 한 사업가가 1억원을 주겠다고 해 ‘공짜로’ 생긴 듯한 5000만원을 기증한 것 뿐입니다.”

윤씨의 청자 사랑은 자녀에게도 이어졌다. 2남1녀를 둔 윤씨는 막내아들 영대(30)씨와 도자기를 전공한 며느리 오길수(28)씨를 강진으로 불러 대를 잇도록 했다.

“내가 죽게 되면 또다시 고려청자의 재현 노력이 사라질 것 같아 아들에게 대를 이을 것을 요구했고 아들이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윤씨는 이 같은 노력을 인정받아 2005년 대한신문화예술교류회에서 수여하는 청자부문 ‘대한명인’에 올랐다.

‘농부의 아들’인 윤씨는 친환경농업에도 관심이 각별하다. “농산물 수입이 개방되면서 농촌이 살길은 친환경으로 재배한 고품질 농산물을 생산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2002년 중국에 건너가 참게를 이용한 무공해 농사법을 보고 국내로 들여왔다. 새끼 참게를 이용하는 참게농법의 최대 장점은 참게가 해충과 잡초를 먹어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과 논에서 자란 참게를 판매해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특히 엄지손톱만한 참게가 손바닥 크기로 성장하면서 1년에 9번 정도 껍질을 벗어내는데, 게 껍질에는 키토산 성분이 많이 들어 있어 논을 더욱 비옥하게 만들어 쌀맛을 증가시키는 효과도 있다. 벼논 1평에는 새끼 참게 10마리 정도가 필요하다. 윤씨는 2003년 3000평의 벼농사를 지어 쌀값 1920만원, 참게 값 2500만원 등 모두 442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참게농법을 쓰지 않은 2002년 판매한 쌀값 1700여만원의 2.5배에 달한 것이다. 그러나 참게 비용이 만만치 않는 데다 중국산이라는 점이 찜찜했다.

이에 윤씨는 2004년부터 강진군 농업기술센터 오상동 연구사와 인공부화를 시도해 1년 만에 성공했다. 2005년 6월에는 탐진강에 새끼 참게 100만마리(1억원가량)를 방류해 지역민들로부터 큰 찬사를 받았다.

“수질 오염과 하천 정비 사업 등으로 참게가 점차 사려져 안타까운 맘이 들었습니다. 여기에 강진을 참게와 친환경 지역으로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습니다”.

윤씨는 현재 이 지역 특산품인 토하(민물새우) 양식장에도 참게를 방류해 공생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윤씨가 현재 보유 중인 참게는 200만마리 정도. 윤씨의 이 같은 노력에도 지난해 강진 지역에서 참게농법을 활용한 논 면적은 40ha에 불과했다.

윤씨는 고려청자 재현 활성화와 참게농법 확대를 위해 지난해 도의원에 출마했으나 120표 차로 낙선했다.“청자는 인간이 불과 흙으로 빚을 수 있는 최고의 예술품입니다. 재현한 청자가 위상과 가치에 걸맞는 대접을 받았으면 합니다. 죽는 날까지 ‘청자 알림이’ 역할과 함께 참게농법 확산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강진=박진주 기자 pearl@segye.com

■윤도현씨는 누구

▲1943년 전남 강진군 칠량면 출생 ▲61년 광주공고 졸업 ▲65년 조선대 약학대학 졸업 및 약국 개업 ▲79년 강진 도요지 발굴 현장 방문 후 청자에 몰입 ▲91년 강진군의원 당선 ▲95년 도강요(민간가마)를 만듬 ▲2002년 참게농법 도입 ▲2004년 참게 인공부화 성공, 탐진강에 참게 100만마리 방류 ▲(사)대한신문화예술교류회 청자부문 ‘대한명인’추대 ▲2006년 열린우리당으로 전남도의원 출마 낙선 ▲자신이 빚은 청자 1억원에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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