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만 오르면 신들린 사람처럼 힘이 솟구치니 광대의 피는 속일 수 없나 봐요. 외줄 위에 높이 올라서면 만물이 이 어름사니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요. 다시 태어나도 ‘줄꾼’이 될 겁니다.” 30년 동안 ‘외줄’을 타 온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 이수자인 어름사니 권원태(40·안성 시립바우덕이풍물단 상임단원)씨. ‘줄타기의 명인’으로 불리는 그는 30년간 줄을 타며 겪은 희로애락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줄타기는 남사당 말로 ‘어름’이라고 한다. ‘얼음 위를 걷듯이 조심스럽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남사당에선 또 줄꾼을 ‘어름사니’라고 부른다.
지난해 1230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흥행 대박을 터뜨린 영화 ‘왕의 남자’에서 장생(감우성 분)의 대역으로 출연해 유명해진 권씨는 자타가 공인한 줄타기 명인이다. 그러나 그가 ‘오늘의 권원태’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무수한 시련의 날들이 있었다. 항도 부산이 고향인 권씨. 외할아버지와 부모 모두가 광대인 탓에 자신의 인생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도 못한 채 10살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광대’가 됐다. 여기다 전통문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하대와 편견 등은 어린 그를 무척 힘들게 했다. 그는 춥고, 배고팠던 과거의 어두운 ‘인생 편린’을 담담하게 설명했다.
“잘 알다시피 30년 전 한국 사회에서의 ‘광대 인생’은 집시의 삶처럼 힘들고 슬펐어요. 잠시 구경꾼들 앞에서 공연을 할 때 외에는 신명나는 일이 없었지요. 여기다 겨울에는 굶는 일이 허다했어요. 특히 추운 날씨에 야외 공터에 가마니 몇 장 깔아 놓고 줄타기 연습을 하다 땅으로 떨어져 다쳤을 때 돈이 없어 민간요법으로 치료하며 견딜 때에는 운명을 탓하며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다”고 말한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젊은 사람들과 청소년들이 우리의 전통문화를 배우기 위해 바우덕이풍물단을 찾아 구슬땀을 흘리며 배우는 모습을 보면 힘이 저절로 솟는다”고 말했다.
그는 간난신고의 세월을 이겨 내며 ‘외줄’을 탄 ‘인고’의 덕에 지금은 세계적으로는 40∼50명, 국내에는 10명 가량 밖에 되지 않는 ‘줄타기 고수’가 됐다.
권씨가 그동안 국내외에서 한 공연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덕분에 상도 많이 받았다. 미국과 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 그리스, 중국, 일본, 대만 등 10여개 국에서 선보인 세계줄타기공연을 대표적인 해외공연으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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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서울 청계천에서 줄타는 모습. |
“지난해 독일월드컵 때에는 베를린, 하노버, 라이프치히 등을 방문, 줄타기 공연을 했는데 박수갈채도 많이 받았어요. 앞서 2004년과 2005년에는 그리스 아테네올림픽 공연과 프랑스 10개 도시를 순회공연했어요. 지난해 초에는 홍콩축제 초청공연에도 참가했었죠.”
그는 ‘왕의 남자’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지난해 ‘왕의 남자’에 출연한 이후 한동안 집에서 편히 쉬기 어려울 정도로 바빴어요.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대목인 장생이 줄 위에서 연산군의 화살을 피하는 장면을 대역했는데, 그렇게까지 반응이 좋을 줄 몰랐어요. 운명을 거스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 왔기 때문인가 봐요.”
권씨는 인생을 줄타기에 비유했다. “줄타기는 곡예하듯이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살이와 같아요. 30년이란 긴 세월 동안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줄을 타며, 전국 공연장을 다녔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아요. 서민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는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고 있는 것에 큰 보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항상 광대로 생각하며 생활한다”는 그는 “양반전이나 호질문 등을 보면 당시 조선시대 민초들이 탈춤을 통해 양반들의 위선을 해학적으로 고발하듯, 줄꾼들도 줄타기를 통해 해학적인 풍자와 몸짓으로 사회부조리를 고발하는 묘미가 있다”고 말했다.
권씨는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아 한때 많은고민을 했다고 털어 놨다. 그래서 20대 후반 슬럼프에 빠져 잠시 방황했다.
“순수한 우리 것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과 경제적인 어려움, 양악과 국악 등 전통문화에 대한 편견과 차별 때문에 잠시 줄을 타지 않은 적도 있었어요. 줄꾼의 길을 포기하려 했던 거죠.”
그는 1995년 결혼한 뒤 방황을 끝내고 다시 ‘광대의 길’로 돌아왔다. 이처럼 평범한 광대에 지나지 않던 권씨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것은 지금부터 4년여 전. 안성시가 전통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2002년 5월 시립 남사당바우덕이풍물단을 창단하고, 그 이듬해 그를 줄타기 상임단원으로 채용하면서부터다.
권씨는 이때부터 매년 4∼10월 안성 남사당전수관에서 열리는 토요상설공연에서 신명나는 줄타기 묘기를 선보여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또한 안성에서 열린 세계줄타기대회에서 우승, 주가를 한껏 높였다. 이후 지난해 ‘왕의 남자’에 장생의 대역으로 출연, 일약 ‘스타급 줄꾼’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지금은 각종 축제와 공연마다 줄타기공연 단골 초청자로 꼽힐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권씨는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은 줄꾼이야말로 ‘진정한 광대’라고 말한다. ‘전통문화 대가’로 성장한 그에게도 작은 바람이 있다. 진정한 어름사니 후배를 양성, 줄꾼의 명맥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안성에서 제자 2명을 애지중지 키우고 있다고 귀띔했다. 또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공연물을 만들어 국내외에서 외국인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우리나라의 수준 높은 전통문화를 보여 주는 일도 꼭 실현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우리나라 전통문화 공연단도 외국의 공연단처럼 당당하게 입장료를 받고 공연해야 한다”며 “흥행만을 위해 비싼 로열티를 주고 외국 공연단을 수시 초청하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힘줘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물이 물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흐르듯이 운명을 탓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 왔어요. 그래서 내 좌우명은 평범하지만 ‘매사에 열심히 하자’입니다.”
글=박석규, 사진=지차수 기자 skpar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