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고품격 문화예요. 육체와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예술과도 지향점이 맞닿아 있어요. 차를 즐겨마시는 민족이 흥한다는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닐 겁니다.” 30년 가까이 우리 차문화 연구와 복원에 앞장서 온 박동춘(54)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그는 이제 차에 대한 열정이 시들해질 만한데도 여전히 뜨겁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 초의선사의 다풍을 그대로 잇고 있는 그는 우리 선차(禪茶)에 관한 한 독보적 존재다.
그가 말하는 우리 차의 특징은 중국, 일본과는 달리 자연미에 있다. 자연을 닮아 담박하고 소쇄해 시원하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점이 이들 나라와 다르다는 것이다. 일본은 꾸밈이 많고 차의 본고장인 중국은 다양하나 무거운편이다. 맛 또한 구수하고 은은한 우리 차가 ‘풋내’나는 일본식 녹차와는 비교가 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은 동북아 3국 중 차문화가 가장 대중화되고 다도에서 보듯 절차·규격이 잘 갖춰져 있다.
차를 이야기하면 불교와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참선을 중시한 선종은 수행의 한 방편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겉치레를 뺀 수수한 선차의 다풍은 신라에 유입된 이후 우리의 심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면 요즘 차문화는 왜 번잡하고 화려해졌을까.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과 함께 일제 강점기가 우리 차문화를 퇴보시켰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통 차문화가 쇠퇴한 틈을 타 일본과 중국식이 뒤섞여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다법은 차 중심이 아닌 예법 중심으로 주객이 전도됐다고 박 소장은 잘라 말한다.
“산업화를 거쳐 차문화 운동의 선두주자인 1세대 차인들이 한국 차문화의 정체성을 고민할 틈도 없이 차를 하나의 시민문화 운동으로 전개한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로 인해 차문화의 형식이 강조되다 보니 다양한 다례법이 양산됐고 고증되지 않은 다례가 판을 치고 있어요. 일본의 다도를 흉내나 냈을 뿐 우리의 것을 찾지 못했지요.”
차를 제조하는 제다법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풍토상 찻잎이 얇은데도 9번 찌고 9번 말린다는 ‘구포구증’식이 맞지 않아요. 초벌을 한 후 말리는게 적당하죠. 또 마실 때도 미지근한 물에 찻잎을 넣어 마시는 게 아니라 열탕에다 넣어 마셔야 합니다. 차가 냉한 성질이 많아 이를 중화시키려면 뜨거운 물에 넣어 마셔야 제격이지요.”
성균관대학원에서 유학을 전공한 그가 선차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79년. 이화여대 박물관 나선화 실장의 천거로 초의선사의 법통을 이어받은 당시 전남 해남군 대흥사 주지 응송 스님(1893∼1990)과 만나면서다. 스님이 공을 들여 번역한 불경과 다서 등의 원고와 자료를 정리하고 한문투의 문장을 한글로 윤문하는 일을 도왔다.
그곳에서 4년간 생활하면서 차를 접하고 그 매력에 빠져든 그는 초의선사의 다풍을 그대로 전수받게 됐다. 이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전공도 아예 전통 차로 바뀌었다.
전남 해남·순천 등지에서 한국 전통차(야생차)를 직접 조사하고 채취했는가 하면 한반도 차의 기원과 역사, 한·중·일 3국 차의 비교연구 등에 매달려 왔다. 한국 차의 전형을 찾기 위해 몇 해 동안 중국 선종 전래지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마침내 구산선문과 관련된 지역을 둘러보던 중 장시지역 사찰들의 제다법과 끽다풍이 열탕을 바탕으로 한 초의선사의 다풍과 비슷한 것을 알아내기도 했다.
절에 남아 있기를 바라던 스님의 권유를 뿌리치고 1984년 결혼과 함께 과천에다 신접살림을 차리고 정착했다. 하지만 결혼 뒤에도 스님이 서울에 오면 박 소장의 집에 머물렀고 봄철에는 대흥사에서 차를 함께 만드는 등 입적할 때까지 연을 이어갔다.
“스님께서는 선차 문화와 관련된 철학, 사상 등을 많이 가르쳐 주었어요. 틈틈이 절에서 이어져 오던 차 만드는 법을 시범 보이며 지도했죠. 노령에도 고열의 가마에다 찻잎 덖기를 반복하며 정성을 쏟아 부었어요. 다선일미(茶禪一味)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어요. 차 만드는 과정이 수행이고 차탕에 부처가 있는 거죠. 내가 만든 차를 직접 맛보며 조언도 아끼지 않으셨죠.”
그간 흘려온 땀의 결실일까. 그가 만든 차를 마셔본 사람들은 그 맛에 혀를 내두른다. 매년 야생차밭에서 조금씩 채취해 만드는 차는 생산량이 너무 적어 그와 인연이 있거나 차 문화를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게 고작이다. 이 차를 받아 마셔봤던 지인들은 박 소장의 이름을 붙여 ‘동춘차’라 부르며 차맛을 못 잊어 한다.
차는 최근 그 효능을 인정받아 인류의 10대 건강식품에 포함됐고 웰빙 바람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박 소장이 지적하는 좋은 차는 먼저 보기에 맑고 투명해야 한다. 잘 덖은 차는 풋내가 없고 마셨을 때 정갈하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구수하면서도 뒤끝이 상쾌한 느낌이 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차 연구에 매달려온 박 소장은 그동안의 전통 제다법과 연구를 전수할 목적으로 2003년부터 매년 연구생 5명을 뽑아 5년 과정으로 가르치고 있다. 이들은 차에 관한 고문헌을 원전으로 공부하며 제대로 된 차맛과 향을 구분하는 법을 익힌다. 찻잎 따는 봄이면 직접 현지에서 제다법 등 실습을 한다.
충북 진천이 고향인 박 소장은 한학자였던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한시와 고문 등을 좋아했다. 학창 시절에는 한학자 청명 임창순 선생(1914∼1999) 문하에서 4년간 수학하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20여년째 과천에서 한문서당을 열어오고 있다. 차문화연구소를 운영하며 들어가는 비용은 이 서당 수입으로 메웠으나 몇년전 동춘차 후원회가 결성돼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한다.
아직은 재원 마련이 어려워 전통 차 보급에는 여력이 없다는 박 소장은 연구·복원에만 주력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 우리 차문화를 발굴, 수집해 더 늦기 전에 표준화가 시급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 전통 차가 일본 차에 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판인데 조상들은 못난 후손들을 얼마나 원망하겠어요.” 우리 차의 명맥이 끊이지 않도록 연구에 전념하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 아니겠냐고 반문하며 밝게 웃는다.
글·사진 전성룡 기자 sych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