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재단 박영숙(73) 이사장은 언제나 현역이다. 그에게 쉴 수 있는 때나 배움을 멈추는 때는 없다. 그는 한국여성재단뿐 아니라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고, 각계 인사들과 함께 희망포럼·미래포럼에도 참여하며 여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금이야 ‘여성단체의 재정을 도울 수 있는 기금·지원금 마련’이라는 여성재단의 뜻에 동참하는 후원업체가 많이 늘었지만, 1999년 12월 재단을 시작할 때만 해도 어려움이 컸다. 불우이웃을 돕는 사람은 많지만 공익활동을 위해 기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실무자로 참여했다가 이사장을 맡게 된 것도 “돈 모으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 선뜻 이사장을 맡겠다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과 기업들이 수익의 1%, 0.1%를 기부하게 하거나 자신의 재능을 나누게끔 유도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우리 사회에 공익 활동을 위한 기부문화가 확산되지 않는 것이 아쉽다. 특히 여성을 위해 주머니를 열게 하는 것은 훨씬 힘든 일이다. 몇 만원짜리 소액기부보다는 고액기부에만 관심을 갖는 언론도 서운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그는 “나 죽을 때쯤이면 나눔문화가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50여년 동안 그가 시민운동에 헌신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었을까. 그는 “당황스럽게도 원동력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고 말한다. 그의 고향 평양에서는 여성차별이 별로 없었다. 집안에서도 딸이라고 차별하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절박한 마음으로 여성운동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쿨’하게 시작했다. 그는 “고지식함과 성실함이 꾸준히 한길을 걷게 한 힘일 것”이라고 말한다. “책임이 맡겨지거나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첫사랑 하듯이 열심히 한다”는 것. 일단 시작한 일을 열심히 하다보니 일이 확대되고, 어찌어찌 떠밀려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고 겸손해 한다. 온실 속에서 자란 그가 찬바람을 맞은 것은 민중신학자 고 안병무 박사와 결혼하면서부터다. “남편은 민주화 운동으로 감옥에도 갔고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 사람 덕에 민주화 운동에도 참여했고 사명의식을 터득하게 됐어요. 사회적 약자에 대해 생각하면서 넓은 의미의 시민운동을 하게 된 거죠. 정치활동도 그 영향을 받았습니다.” 박영숙 이사장에게 공부는 평생을 두고 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62세 때 영국 케임브리지대로 유학을 떠났다. 안 박사는 1993년 그가 정당 활동을 끝냈을 때 “환경 일은 알고 해야 한다”며 체계적으로 공부할 것을 권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유학을 갔죠. 그곳에서 독서의 환희를 느꼈어요. 정말 아무 생각하지 않고 책만 읽었어요.” 그가 늘 가까이 두는 것은 환경에 관한 책들이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그가 성경처럼 대하는 책이다. 환경오염의 재앙을 최초로 폭로한 이 책은 환경운동의 고전으로 꼽힌다. 1972년 로마클럽에서 내놓은 인류 위기에 대한 보고서 ‘성장의 한계’,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피해를 집요하게 되짚은 ‘히로시마’(나스 마사모토, 니시무라 시게오)도 흥미롭게 읽었다. ‘녹색경제학’(이정전)은 손에서 놓지 않고 단숨에 읽어내린 책이다. “환경과 경제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 책이에요. 이 책을 읽고 이 교수의 ‘녹색정책’이란 강의에 특별 청강생으로 하루도 안 빠지고 들어갔을 정도에요.” 불꽃같이 살다간 사람들의 삶을 그린 책에도 관심이 많다. 여성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평화 운동가 페트라 켈리의 삶은 그를 사로잡았다. 나치에 저항하다가 처형당한 평범한 대학생 남매의 삶을 그린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잉에 숄)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책 읽을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신간에는 늘 관심을 갖는다”고 털어놓는다. 신문에서 소개하는 신간은 꼬박꼬박 챙겨 읽고 마음에 드는 기사는 오려 두었다가 책을 사는 데 활용한다. 출퇴근길 지하철, 여행길 기차는 독서에 마침맞은 곳이다. 영국 유학 이후 영어권 나라나 일본을 방문할 때면 서점부터 찾는다. 그렇게 사모은 책이 1000권이 넘는다. 그 책들을 다 읽지는 못하지만 대충 훑어본 후 필요할 때마다 꺼내 읽는다. 2년 전 일본 서점에서 산 ‘오가타 사다코의 삶’은 아직까지 뇌리에 남아 있다. 오가타 사다코는 63세부터 10년간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으로 일했던 여성이다. 보통 사람들은 탁상행정으로 끝내던 일이었는데 그는 현장을 찾아다니며 직접 난민구호에 나섰다. “책 표지에 ‘70세에 꽃을 피운 삶’이란 글귀가 적혀 있더군요. 일본 정부에서 훈장을 주려 했을 때 그가 제의를 거절하며 한 말이 있습니다. ‘훈장은 생을 마칠 때나 받는 것이다’라고요. 그의 삶은 내게 깊은 깨달음을 줬습니다.” 그는 이제 인생을 정리하는 책들에 관심이 간다.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친구가 선물해준 ‘우리는 어떻게 죽는가’(셔윈 B 누랜드)도 곧 읽을 참이다.
글 이보연, 사진 이종렬 기자 byable@segye.com
그는 누구인가
![]() 박영숙 이사장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아니지만, 시민사회를 이끄는 지도자다. 그는 한국여성재단,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이사장으로 일하며 정부가 해내지 못하는 부분에 힘을 더하고 있다. 그의 관심은 여성에서 시작해 환경으로, 사회 전체로 확장됐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한국YWCA에서 일하며 여성운동에 뛰어들었다.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 인간환경회의 자료를 보면서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됐다. 1988∼93년 13대 국회의원으로 일하며 환경 문제를 사회에 인식시키는 데 앞장섰다. 그는 90년 환경기자클럽이 뽑은 제1회 ‘올해의 환경인상’을 수상한 기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박 이사장은 최근 미래포럼 이사장, 희망포럼 공동의장을 맡으며 여성 대표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래포럼은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 여성 지도력 향상 등을 추진하기 위해 여성·경제계가 모여 만들었다. 희망포럼은 빈부격차 해소, 일자리 창출, 국가 발전 등을 추구하기 위해 각계 인사들이 출범시킨 단체다. |
2005.03.28 (월) 15: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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