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책꽂이

(15)동양기전 조병호 회장

바보처럼1 2007. 7. 24. 12:47
[CEO책꽂이]⑮동양기전조병호 회장
"책 속에서 투명경영의 길을 찾지요”
서점이 담배가게처럼 흔했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있다. 철저한 성과 배분 경영을 지향하는 동양기전의 조병호(59)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에게 책은 인생의 나침반과 같다.

사원들에게 고루 이익을 나눠주는 투명경영을 생각한 조 회장이 1991년 초반 도입한 게 독서경영이었다. 서울과 인천, 경남 창원, 전북 익산 등 전국 각지의 사업부에 독서대학을 설치했다. 사내에 2주에 1권씩 책을 읽고 독후감을 발표하는 4년 과정의 독서대학을 설치하자 179명이 수료하는 등 높은 참여도를 기록했다.

그는 독서토론은 물론 문화예술 활동, 역사탐방, 해설강의 등의 프로그램을 마련해 직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냈다. 독서전문가를 사내에 상주토록 하기 위해 사업장별로 국문학을 전공한 유능한 인재를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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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사원이 책을 읽게 하자는 조 회장의 방침에 사원들이 무조건 따른 것은 아니었다. 경영 일선에 관여하지 않는 일반 사원들까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사실에 불만을 드러낸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독서경영은 감성경영으로 확대 발전돼 점점 더 직원들의 공감을 사게 됐다. 10년 가까이 ‘동양기전 문학제’를 개최하며 사원들뿐 아니라 사원 가족들이 글솜씨를 뽐낼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독서경영이 뿌리내리는 데는 조 회장의 공이 컸다. 인문학이나 문학과는 거리가 있는 기계공학도였지만 그에게 독서는 생활이었다. “책을 읽지 않고도 자신만의 철학과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다면 성인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 같은 일반인은 식사하듯 독서해야 합니다. 때가 되면 식사하고, 속이 비면 먹을 것을 먹어야 몸이 성하고 체력이 뒷받침됩니다. 머리와 가슴도 시시때때로 채워줘야 건강해지고 나름의 철학도 갖게 됩니다.” 그는 일주일이면 적어도 3권의 책을 읽으며, 해외 출장 때도 현지 서점은 방문 우선순위에 든다.

조 회장은 여느 CEO와 다른 ‘독서 스펙트럼’를 보인다. 다른 CEO들이 인문학 책보다는 경쟁경영서와 미래진단서 등에 관심을 갖는 경향과 다른 독서 궤적을 보여 왔다.

서울 양천 사무실의 자료실에 비치된 책들이 그의 철학을 설명해준다. 대하소설인 ‘태백산맥’(조정래)과 ‘토지’(박경리), ‘아버지’(김정현), ‘신화의 힘’(조셉 캠벨 외) ‘그림 읽어주는 여자’(한젬마) 등 인문·문학적 취향이 드러나는 책들이 종류마다 가득하다. 즉각적인 결과물을 바라는 풍토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조 회장의 철학은 가슴에 와닿는다. “철학과 문학이 들어가야 독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잡지를 보고 혁신을 논하는 것은 독서가 아니지요.” 그는 소설가인 이문열, 이청준, 황석영의 작품은 모든 작품을 본다는 심정으로 읽어왔다.

책을 섭렵한 직원들이 독서의 효과를 드러내 보일 때처럼 기쁜 때도 없다. 오죽했으면 임금협상 자리에서 회사가 권한 책 ‘당신들의 천국’(이청준)을 읽은 노조 간부가 경영진을 설득하면서 이 책의 구절을 인용했을 때에도 좋아했겠는가.

독서경영은 사내 직원들의 문화적 소양을 높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동양기전 입사 지원자에게 책을 대량으로 구입해 배포한다. 2004년도 입사 전형에서는 1차 면접 대상자 500명에게 폴 케네디의 저서 ‘21세기 준비’를 나눠 주기도 했다. “입사 시험에 떨어져도 최소한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책 한 권은 읽게 되는 것 아니냐”며 웃는다.

독서경영 현장의 능숙한 CEO 조 회장은 해외 출장 때마다 국내의 엷은 독서풍토가 못내 아쉬웠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독서량에서 구별됩니다. 좋은 기업과 안 좋은 기업의 차이도 비슷한 요인에 따라 결정될 거예요. 주먹구구식 경영보다 독서 등 사원의 복지 수준을 높이는 회사가 장기적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분명한 사실 아닙니까.”

그가 요즘 관심을 갖는 책은 중국 관련 책들이다. 엄밀히 말하면 중국 책들이다. 중국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조 회장은 최근 출장 때마다 현지어로 된 소설, 철학, 경제 관련 책들을 구해 읽고 있다. 중국 원서를 읽기 전에는 한국어로 된 책들을 읽기도 했다. “‘나는 학생이다’(왕멍)를 읽었는데 참 와 닿았습니다. 저도 이제부터 학생임을 선언하려고 합니다.” 올 하반기에는 중국 현지 공장에도 독서경영을 도입할 작정이다.

물론 경제경영 관련 책들도 자주 찾는다. 최근에는 ‘블루오션 전략’(김위찬 외)과 ‘What’s Next 2015’(글로벌비즈니스네트워크)를 읽었다. ‘블루오션 전략’을 읽으면서 ‘너 죽고 나 살자’식의 치열한 경쟁만이 존재하는 ‘레드 오션’를 탈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 수년전 읽었던 ‘렉서스와 올리브나무’(토머스 프리드먼)는 지금 읽어도 명저로 생각한다. 내용에 너무 감동해서 상하 2권으로 된 책 40권을 즉각 사서 주변에 선물했다.

책 덕분에 좋은 일도 많이 경험했다. 조 회장은 수년 전 일본 업체 ‘데이진세이키’와 기술제휴를 하다가 벽에 부닥친 적이 있었다. “계약 상대역으로 나온 데이진세이키의 사업본부장과 일본어로 먼저 간행된 ‘축소지향의 일본인’(이어령)을 놓고 3시간 정도 독서토론을 했습니다. 첫 미팅에서 부정적인 대답을 주었던 그가 독서토론 후 계약에 적극 나서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가장이 책을 좋아하자 가족들도 책을 좋아하게 됐다. 아파트 자치위원회에서 일하는 부인은 주말마다 신문의 서평란을 참고해 책을 사고, 아들은 중국 출장 중인 아버지에게 전화해 현지에서 책 관련 프로그램을 보게 했다.

그러나 그가 책과 관련해 못 이룬 것이 있다. 몇 해 전 최인호 등 서울고 출신 동문들이 ‘독서포럼’을 결성한 것을 보고 모교인 경기고 동창생들에게 독서포럼을 제안했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이다.

논리만 남고 감동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조 회장의 이야기는 갈아만든 과일주스처럼 달콤하다. 그에게 책은 인생이다. “책을 읽지 않으면 목에 가시가 돋친다고 한 안중근 의사 정도는 아닐지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저에게는 금단현상이 생깁니다.”

글 박종현, 사진 김창길 기자 bali@segye.com

그는 누구인가

전북 부안 출신인 조병호 동양기전 회장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1969년 대우중공업의 전신인 한국기계에 입사해 9년 뒤 기술개발부장 시절 퇴사했다. 동양기전은 그가 대우중공업에서의 경험을 살려 1978년 창업한 자동차부품 회사다. 그는 기업체가 창업자의 사유물일 수 없으므로 대대로 물려줘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각종 단체에서 주는 책과 관련된 웬만한 상은 휩쓸었다. ‘93 책의 해 대통령상’을 비롯해 1996년 한국문인협회가 준 ‘가장 문학적인 상’도 받았다. 1997년에는 독서문화상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1기업 1문화 운동’을 펼치는 독서운동단체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와 공동으로 독서를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진행하고 있다. 술 한 잔, 노래 한 곡 하는 회식보다 독서로 시간을 보내자는 생각을 사원들과 공유하고 있다.

박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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