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점에서 정보통신업계의 ‘책 마니아’로 소문난 삼성SDS의 김인 사장은 두드러져 보인다. 김 사장은 한 달이면 족히 5권 이상 책을 읽으며 독서의 기쁨을 만끽한다. 5월 마지막날 서울 역삼동 삼성SDS 24층 집무실에서 만난 김 사장은 “제한된 경험과 한정된 시간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류에게 책은 삶의 지혜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매우 정확하게 알려준다”며 독서 예찬론을 편다. 책 읽는 CEO, 그는 책에서의 느낌과 경험을 사장시키지 않는다. 2003년 1월 삼성SDS 사장으로 발령 난 첫날 찾은 곳이 교보문고 서울 강남점이었다. 신라호텔에서 부사장으로 근무했지만 정보통신업계의 CEO가 갖는 책임감을 자각하고 관련 책들을 직접 구매했다. 그 중의 하나가 IBM의 전 회장이었던 루 거스너의 자서전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북앳북스)였다. “거스너 회장은 160억달러 적자로 존폐 위기에 처해 죽어가는 코끼리처럼 둔한 IBM을 철저한 경영혁신으로 10년 만에 80억달러 흑자 기업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경영자와 직원들의 경쟁력 혁신과 기업문화 개혁이 몸집 둔한 기업체를 춤출 수 있게 한 것이지요.” 은행원 출신으로 정보통신산업에는 문외한이었지만 IBM을 성공적으로 회생시킨 거스너 전 회장의 노하우가 삼성SDS의 기업 경영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김 사장은 밝혔다. 거스너의 책과 함께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게 잭 웰치의 저서들이었다. ‘잭 웰치 끝없는 도전과 용기’(청림출판)와 ‘잭 웰치 위대한 승리’(〃)는 일이 막힐 때마다 찾는 책이다. 김 사장은 이들 자서전에서 조직의 가치 혁신을 이룬 CEO의 지도력을 배웠다. 톰 피터스와 짐 콜린스, 피터 드러커, 다치바나 다카시 등의 저서도 경영과 삶에 도움이 되는 책들이었다. 모든 책이 빛이라고 하면 읽는 사람이 발견하는 정도에 따라 책의 광도는 달라진다. 독자에 따라서 책이 빛나는 태양일 수도, 암흑일 수도 있다. 적어도 그에게 책은 빛나는 태양으로 보인다. 독서에서 얻은 지식을 경영에 적극 활용하는 김 사장은 남들이 알아주는 글 쓰는 CEO다. 그가 매주 월요일 7000여명의 직원에게 보내는 이메일 ‘월요 편지’를 이제 업계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다. 부임 이래 단 한 주도 거른 적 없이 지금까지 120회 넘게 직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지난 5월 30일에는 ‘가족’이라는 제목의 편지를 띄웠다. 가정의 달인 5월이 가고 직원들이 가족처럼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쓴 편지였다. 또 편지를 통해 전날 읽은 책 ‘가족’(새로운사람들)의 감동을 공유하고 싶어서였다. 책은 ‘엄마를 암으로 먼저 보낸 한 소녀의 가슴 아린 가족 이야기’를 부제로 단 사진 에세이였다. 그는 월요 편지에서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해 “같이 숨쉬지 않아도 마음에 늘 함께 있다면 그 사람 또한 소중한 가족일 수 있으며, 결국 가족은 마음의 둥우리에 함께 사는 사람들”이라고 가족의 의미를 전했다. 그가 보내는 편지에는 회사 소식은 물론 책 이야기, 이웃 나라 사정, 출장 중 경험한 일, 직원들의 건강 걱정 등 다양한 주제가 담겨 있다. CEO가 진솔하면서도 의미 있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자 직원들도 좋아한다. 편지를 보낸 지 몇 분도 안돼 답장하는 직원이 생길 만큼 월요 편지는 삼성SDS의 기업문화로 정착했다. 사장으로 부임해 처음 편지를 보낼 때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효과를 보고 있다. “부임 당시 7000명이 넘는 직원이 국내외 400곳 가까운 곳에 흩어져 근무한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근무지가 흩어져 있어 각 사안에 대한 직원들의 공감대 확보가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직문화 형성과 커뮤니케이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편지를 보내게 됐습니다.” “인간이란 쉬운 싸움에서 이기는 것보다 힘든 싸움에서 패배하면서 성장한다”는 말을 금언처럼 간직한 그가 특히 관심을 두는 책은 탐험서다. 아홉 탐험가 이야기를 담은 ‘탐험의 역사’(가람기획)는 역자를 달리해서 여러 번 국내에서 출간됐지만 매번 찾는 책이다. “부나 명예보다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탐험가들의 성공과 실패의 기록은 경제인들에게 좋은 자극을 줍니다.” 최근 읽은 ‘블루오션 전략’(교보문고)을 통해서 ‘기회는 만들고 잡는 자의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20명의 직원을 모아 사내에 ‘블루오션 전략 연구회’를 가동시킨 것도 시장 창출 기회를 만들려는 목표에서였다. 그는 머리가 아프면 서점에 가서 살펴보다 눈에 띄는 책을 사서 읽는다. 시간 날 때마다 서점을 찾는 이 CEO를 보면서 “약간의 돈이 생기면 책을 사고, 그렇게 하고 남은 돈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샀다”는 말을 남긴 중세 인문학자 에라스무스가 겹쳐졌다. 김 사장은 직원들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가족에게 책을 선물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아이들이 독서 습관을 들이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며 그 종류를 가리지 말고 가족 구성원이 함께 책을 읽으라고 직원들에게 말한다. 그에게 책은 반찬과 같다. “여러 반찬 중 마음에 드는 반찬을 먹는 것처럼 책에도 부담감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입맛만 다시는 책도 있을 수 있고 소화 불량에 걸리는 책도 있을 수 있으며, 확실히 소화해 행복감을 줄 책도 있습니다.” 1만원하는 책으로 보통 짧게는 1년에 한번, 길게는 평생에 한번 내는 저자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큰 이득이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자서전이나 회고록만 하더라도 자신의 일생을 정리하는 사람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썼겠습니까. 책은 우리 기대 이상의 것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2005년 6월 ‘독서 가족’ 삼성SDS는 다독가인 김 사장의 지식 공유 철학과 함께 뛰고 있다.
글 박종현, 사진 황정아 기자 bali@segye.com |
2005.06.06 (월) 16: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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