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책꽂이

(19)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

바보처럼1 2007. 7. 24. 12:55
 
[CEO책꽃이]<19>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
73세 지금도 계속 도전 "바로 독서의 힘입니다"
일흔셋, 평균 수명이 늘었다지만 이 나이에 현업에서 활동하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런데 코리아나화장품의 유상옥 회장은 지금도 정열적으로 일한다. 여성적 이미지가 강한 화장품 업계에서 ‘화장하는 남자’로 세상에 알려져 있다.

◆쉰다섯 창업=유 회장은 12년 전 ‘나는 60에도 화장을 한다’(크리)는 책을 내놓았지만, 지금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화장을 하고 있다. 이는 일에 대한 그의 끝없는 관심과 늘 현장을 지키려는 의지가 결합돼 나타난 행동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55세에 창업해 코리아나를 한국의 대표적인 화장품 업체로 키운 것이다. 은퇴해 55세면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도전하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하는 나이다. 88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회사를 창업해 1990년대 초반 매출액 기준으로 업계 3위로 키웠으니 그의 경영 방식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지금 코리아나는 화장품 ‘명가’ 이미지를 굳히며 더욱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33년생인 유 회장의 사회 진출은 59년 의약품 생산업체인 동아제약을 통해서였다. 당시 직원 100명의 중소기업체였던 동아제약에서 그는 ‘사장처럼 일한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주경야독하며 입사 1년 만에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거머쥐고 회사에서 필요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중견 제약업체로 성공한 동아제약에서 그가 8년 만에 상무이사로 승진한 것은 뒷돈 거래 등의 관행을 없애며 원가 절감과 생산성 향상에 주력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동아제약에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입사 8년 만인 77년 당시 부실의 대명사였던 ‘라미화장품’의 대표 이사로 임명됐다. 라미화장품은 동아제약이 경영 다각화 차원에서 인수한 회사였지만 인수 후 2년 동안 만년 적자구조를 탈피하지 못했다. 제약업과는 전혀 다른 업종인 화장품 회사의 경영을 맡기자, 그는 서울 남산을 올라 지난 세월을 되돌아봤다. 거침없이 달려온 시절, 회사를 위해 몸을 불살랐던 청춘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제 그에게 떨어진 임무는 부실 회사와 함께 ‘운명을 같이하라’는 ‘계륵’이었다.

◆회사 어려워도 직원 기는 살려야=결국 부실업체를 건실한 기업으로 바꾸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그러려면 직원들의 사기진작이 우선이었다. 경리 담당자를 불러 직원들에게 작은 액수지만 보너스를 주게 했다. 유 회장은 “연말인데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안 주는 것은 경영자로서 할 수 없는 일이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보너스는 고사하고 월급이 줄어들어 자포자기 심정에 빠졌던 직원들은 새로 온 경영자의 태도에 마음을 열어주었다. ‘다시 한번 해보자’는 말이 회사에 퍼지며 노사가 의지를 다진 덕택에 회사는 4년 만에 흑자 기업으로 재탄생했다.

그 행복한 기분도 몇 년이 못 갔다. 87년 노사분규를 겪으면서 직원들의 임금을 파격적으로 인상하자 그룹 회장은 그를 동아제약의 박카스 병 생산 전담 업체인 동아유리 대표로 발령냈다. 54살의 나이에 좌천되자 그는 얼마간 고민하고는 창업을 결심했다.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한 화장품 분야에서 승부를 내보기로 했다. “산업은행의 자금융자와 가까운 친구의 도움을 받고, 1억원의 퇴직금을 보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코리아나는 최신 연구시설과 탁월한 연구인력을 투입해 200개 가까운 특허를 출원하며 화장품 업계의 신화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노사가 화합의 닻을 올려 건실한 기업으로 거듭났다. 이와 함께 예전에 ‘화장품 아줌마’로 알려졌던 ‘뷰티 플래너’를 포함해 4만명 가까운 사원 가족들이 ‘미(美)의 전도사’로 나서고 있다.

그의 흔들리지 않는 뚝심과 나이를 초월하는 진취적인 사고 방식은 10대 시절의 한학 공부와 신문보급소 운영, 20대 이후 독서와 글쓰기에 힘입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 동안 논어와 맹자 등 사서삼경을 공부하며 남을 배려하는 법을 배웠지요.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논어의 첫 구절은 언제나 가슴에 담고 삽니다.” 상고 3학년 시절에는 6남매의 장남으로 신문보급소를 운영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직장인이 된 뒤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서삼경은 물론 한국의 대표적 기업체를 일군 정주영 현대 회장과 이병철 삼성 회장에 관한 책은 죄다 섭렵했다. 그가 읽은 두 경제계 거목에 관한 책으로는 ‘이병철 vs 정주영’(한국경제신문사) ‘이병철 경영대전’(바다출판사) ‘다시 이병철에게 배워라’(서울문화사) ‘이 땅에 태어나서’(솔)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제삼기획) ‘대한민국 기업인 정주영’(영림카디널) 등이 있다.

소설도 자주 읽는다. 2살 많아 비슷한 시절을 보낸 소설가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현대문학)과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웅진닷컴)를 재미있게 보았고, 소설가 유현종의 ‘연개소문’(행림출판)과 최명희의 ‘혼불’(한길사), 최인호의 ‘상도’(여백미디어)는 가족과 직원에게 권하는 작품이다.

◆기록하는 리더=2004년부터 시작한 사내 독서통신 교육과 임원 독서토론회 개설은 애독가인 그로서는 늦은 편이었다. “매주 금요일 임원들은 독서토론을 하고 사원들은 한 달에 한 편의 감상문을 제출하고 있는데, 리더십 고양과 사내 토론문화 정착, 커뮤니케이션 능력 향상에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독서는 사원의 자기계발은 물론 기업체의 지식 경영화 활성에도 지대한 공헌을 합니다.”

유 회장은 책을 읽은 뒤에는 느낌과 교훈을 기록한다. 이 노력에 힘입어 코리아나를 경영한 이후 3종의 책도 저술했다. ‘나는 60에도 화장을 한다’(크리)를 비롯해 1933년생으로 55세에 창업한 이야기를 담은 ‘33에 나서 55세에 서다’(삶과꿈)와 화장품 업체의 노하우를 풀어낸 ‘화장하는 CEO’(행림출판)가 그것이다.

그의 성공은 남에게서 행복을 구하기보다는 남에게 행복을 주는 태도에서 비롯됐다. 평사원 시절에는 회사의 대표처럼 일하겠다는 다짐을 했고, 경영자가 됐을 때는 기업의 이익을 사원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철학을 몸소 실천한 것이 이를 말해 준다. “사람이 기업을 키우고 기업 속에서 사람이 자랍니다.”

유 회장은 이렇게 평사원에서 출발해 전문경영인을 거쳤다가 창업해 ‘오너 경영인’이 됐다. “인생에 늦은 때는 없습니다.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남에게 베푸는 생활을 하면 기회는 옵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준비하고 기다리는 사람에게 오는 법이지요.”

55세에 사업을 시작한 그의 말은 신뢰가 간다.

그는 누구인가

1933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유상옥(73) 코리아나화장품 회장은 은행원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희망과 달리 59년 동아제약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1년 만에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땄다. 이후 77년부터 10년 동안 라미화장품의 경영을 맡은 경험을 살려 88년 코리아나를 창업했다. 창업 5년 만에 매출액 기준 업계 3위로 회사를 키웠다. 그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을 사랑하며 아픔은 인생을 살찌운다고 생각한다.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도 남달라 서울 강남 신사동에 화장품과 장신구 등을 전시한 복합문화공간인 ‘스페이스 씨(space c)’를 열어 운영하고 있다.

글 박종현, 사진 이제원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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