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책꽂이

(26) 이메이션 코리아 이장우 사장

바보처럼1 2007. 7. 24. 13:09
 
[CEO책꽂이]<26> 이메이션 코리아이장우 사장
"문화가 있는 기업은 쉽게 붕괴되지 않아”
“1만 권의 책을 읽었지만 여전히 내 몸은 서럽기만 하다.”

이메이션코리아 이장우(49) 사장의 독서론을 듣자면 괴테의 이 말이 생각난다. 이 사장은 1년에 200여권의 책을 읽는 독서가다. 대부분 경영인처럼 경영·마케팅분야에만 치우치지도 않는다. 예술, 건축, 공연, 서양·건축사 등 그의 관심은 전방위로 뻗친다.

이메이션은 1996년 쓰리엠(3M)에서 플로피 디스켓, CD, USB 메모리 등 데이터 저장장치 사업군을 떼어내 분사한 기업이다. 세계 60곳에 현지법인을 둔 다국적 기업이다. 이메이션코리아는 직원 27명의 작은 기업이지만 국내 저장장치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알찬 기업이다. 아시아·태평양지역 이메이션 법인 중 성장률이 가장 높을 정도로 경영 성과도 뛰어나다. 이 사장은 이메이션코리아 초대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해 1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공부가 성장의 원동력

이 사장은 독서를 통해 자신을 계발한다. “책을 자꾸 읽다 보면 이전에 읽은 것과 겹치는 부분이 많이 생기잖아요. 내용을 알고 있으면 금방 읽을 수 있습니다.” 남이 공들여 쓴 책을 읽으며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만큼 현명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건축학의 관점에서 본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건립, 리움미술관, 발레 ‘돈키호테’ 등 예기치 않았던 주제가 툭툭 튀어나온다. “사람이 다 경험하고 살 수는 없잖아요.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고 예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는 것이죠.”

그렇다고 그가 가만히 앉아서 책만 읽는 것도 아니다. 그는 읽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역사가 참 재미있어 역사책을 많이 읽어요. 책이 좋아도 가기 전에는 이해가 잘 안 되고 가슴에 와닿지 않는 부분이 있죠.”

그의 독서법은 독특하다. 여행을 하다가 커피를 발견하면 커피에 관한 책을 읽는다. 책을 읽다가 새로운 부분이 나오면 또 그것에 관한 책을 찾아 읽는 식이다. 그는 이를 ‘하이퍼텍스트(hypertext) 독서법’이라고 한다. “책 말미에는 참고도서가 나오거나 다른 소개 자료가 있잖아요. 그런 것을 찾아 읽으면서 지식을 확장합니다.” 한 분야를 정해서 10권을 읽고, 더 이해가 필요하다 싶으면 50권, 100권을 읽는다.

이 사장은 워낙 다독을 하다 보니 ‘괴짜 경제학’(스티븐 레빗 외), ‘보랏빛 소가 온다2’(세스 고딘), ‘이노베이터’(김영세) 같은 근간을 비롯해 ‘핵심에 집중하라’(크리스 주크 외), ‘유쾌한 이노베이션’(톰 켈리 외)처럼 경영자들이 꾸준히 권하는 책을 두루 추천한다. 무용가 트와일러 터프가 쓴 창조와 혁신에 관한 책인 ‘창조적 습관’도 그가 권하는 책이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신화는 없다’는 고생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해 그를 울렸다. “나보다 더 고생한 사람이 있구나 싶었어요. 그의 삶이 너무도 현실감 있게 다가오더군요.”

그가 독서와 공부에 매달리게 된 것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대학교 3학년 때 군 제대하고 복학하면서부터예요.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공부로 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상황이 됐죠. ‘죽기로 마음을 먹으면 산다’는 상황이 만들어진 거죠.”

대학 시절 죽자 살자 전공인 영어 공부에 매달렸다. 밤낮없이 하다 보니 나중에는 재미가 붙었다. 이후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등을 하나씩 섭렵했다. 외국어를 잘 하면 관련 국가 자료를 원어로 볼 수도 있고 글로벌 마케팅에서도 유리하다. 게다가 여행길에서도 많은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으니 이만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공부가 어디에 있겠는가.

직장생활도 화려하게 시작하진 않았다. 82년 두산쓰리엠에 입사, 영업사원으로 시골장터를 다니며 수세미 파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는 “내 성공의 원동력은 공부”라고 말한다. “젊은이들에게 ‘어려워도 공부는 필사적으로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결국 많이 본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독서는 경영혁신의 지름길

이 사장은 독서를 경영에도 활용한다. 직원들이 분야에 관계없이 책을 구입한 뒤 회사에 비용을 청구하면 즉시 돈을 내준다. 어느 해인가는 도서 구입비용이 2500만원에 달했을 정도다. 또 한해 세차례 그가 고른 책을 회사 책상 위에 펼쳐놓고 직원들이 마음대로 고를 수 있도록 하는 ‘북 랠리’ 시간도 갖는다.

그렇다고 직원들에게 책과 관련한 과제를 내지는 않는다. “회사는 책을 사주기만 하지 다른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사장의 지론이다. 이메이션에는 의례적인 서평 제출 같은 것이 없다. 독서 권장은 하되, 부담은 주지 않는다.

그가 독서경영을 도입한 것은 98년부터다. 97년 외환위기에서 이메이션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3M으로부터 갓 분사해 홀로서기를 해나가던 이메이션에 최악의 위기가 다가왔다. 이런 때 보통은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지름길’을 찾게 마련인데 이 사장은 독서경영을 도입했다. 그에게는 문화가 있는 기업은 쉽게 붕괴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제가 직원으로 있을 때 회사에서 책 읽는 것만은 제한을 두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분사 후 사장이 되었는데 뜻을 채 펴기도 전에 경제 위기가 온 거죠. 분위기가 안 좋은 때일수록 책과 관련한 문화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경영과 독서를 접목하면서 이메이션의 수익 구조는 눈에 띄게 개선됐다. 그는 “책만큼 저렴하게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고 되묻는다. 직원 한명에게 MBA 교육을 시키려면 수천만원의 비용이 들지만 독서는 몇만원이면 되지 않냐는 것. 그에게 독서는 업무지식을 극대화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글 이보연, 사진 이제원 기자

byable@segye.com

그는 누구인가

지금은 한 기업의 대표지만 시작은 영업사원이었다. 이장우 사장은 1982년 한국쓰리엠에 입사했다. 관리부서를 원했지만 판매부서로 발령이 났다. 뜻하지 않게 하게 된 일이었는데 곧 영업의 묘미에 빠져 들었다. 96년 이메이션이 쓰리엠에서 분사하면서 CEO가 됐다. 하지만 현실은 냉엄했다. “잘 되는 사업분야를 분사하는 기업이 어디 있나요. 이메이션이 지금껏 살아남은 것이 대단하지요.” 그의 경영철학은 간단하다. 기업은 이익을 많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장에게 공부는 끝이 없다.

그는 이메이션코리아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연세대 경영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경희대 경영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3년부터는 성균관대에서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수없이 많은 책을 읽고 나니 자신의 책을 쓰고 싶어졌다.

‘미래경영 미래CEO’ ‘마케팅 잘하는 사람, 잘하는 회사’ ‘당신도 경영자가 될 수 있다’ 등 3권의 책을 내놓았다. 성공을 위한 팁 하나. 메모하고 정리하는 습관은 그의 성공을 뒷받침했다. 지금은 전화기 겸용 PDA를 쓰고 있어 쓸모가 많이 줄기는 했지만, 94년부터 쓰기 시작한 프랭클린 다이어리는 유용한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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