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
아릿한 잠에서 깨어보니 손끝에 무언가가 감겨져 있었다 간밤에 누가 다녀갔을까 갸우뚱갸우뚱, 손가락에 감겨 있는 것을 풀어내었다
육백오십여년 되었다는 은행나무 보러 가는 차 안에서 첫눈을 만났다 목적지에 닿은 뒤로도 그치지 않는 눈 은행 둥치에 안겨, 등으로 눈발을 받아내다가 겨울나무에도 온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첫눈 그친 저녁, 한 여자가 하얀 얼굴로 늦은 걸음을 해왔다 내년에도 제가 봉숭아물 들여 드릴게요, 발자국에 고이는 물처럼 조용조용 차오르는 눈물 봉숭아물 빠지지 않은 손으로 닦아주었다
―신작시집 ‘가뜬한 잠’(창비 펴냄)에서 ▲1971년 전북 정읍 출생, 원광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거미’ |
2007.04.06 (금) 21: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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