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인◀ (8)처용탈 명장 김현우씨
(울산=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삼국유사 처용설화의 주인공인 처용(處容)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이 같은 물음의 해답을 찾기 위해 인생을 건 장인이 있다.
처용탈 명장인 김현우(金玄佑.52)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
김씨는 울산시 중구 우정동의 한 평이 약간 넘는 조그마한 작업실 '처용탈방'에서 지난 89년부터 18년째 처용탈을 만들며 `관용의 상징'인 처용의 얼굴찾기에 매달리고 있다.
처용탈은 879년 신라 헌강왕 때부터 전통 궁중무인 처용무를 출 때 사용하던 탈이다. 신라인들은 국가나 민간 행사때 역신을 물리치기 위해 처용무를 추어왔으며, 이 춤은 일제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조각도를 들고 통나무와 씨름하고 있던 김씨는 기자를 만나 "처용무는 일제시대인 1930년 우리나라 마지막 임금 순종 탄생 50주년 행사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면서 처용탈 제작에 매달리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김씨는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처용의 얼굴도 조선시대 악학궤범에 전해지는 모습은 거의 사라지고 왜색풍으로 변했다"며 "일제 이후 50여년 간 사라져 버린 처용의 `진짜 얼굴'을 찾는 것이 나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김씨에 따르면 처용탈에 새겨진 처용의 얼굴은 눈이 크고 너그러운 본래의 모습에서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눈이 날카롭게 찢어진 일본식으로 변했다는 것.
김씨가 처용의 진짜 얼굴을 복원하겠다며 처용탈 제작에 뛰어든 것은 지난 89년이다.
당시 울산의 한 목재소 사무직원으로 일하던 김씨는 시인을 꿈꾸며 밤낮으로 시를 탐닉하던 중 김춘수 시인의 '처용단장'이란 시를 읽고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이 시를 통해 처용이 누군지, 처용설화의 발원지가 울산임을 처음 알고 난 뒤 처용이 바로 내가 평생을 찾았고 찾아야할 화두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 때부터 1천200여년 전 처용설화에 등장했던 처용을 어떤 방법으로 만날까 고민했습니다"
이후 처용과 관련된 서적들을 사 모으고 연구하며 처용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나가던 김씨는 처용탈을 만들어 처용의 진짜얼굴을 복원하기로 하고 목재소에서 함께 일하던 목공들을 찾아 다니며 전문적으로 목공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시인이 되려고 한 제가 목공예를 하게 될 줄을 몰랐어요. 10년 정도 처용탈 연구에 매달렸을까. 통나무가 점점 처용의 얼굴로 변하더군요"
김씨는 각고의 노력끝에 지난 95년 악학궤범에 나타난 그림과 비슷한 45㎝ 길이의 처용탈 한 개를 완성했다. 처용탈을 만드는 데 꼬박 10년이 걸린 셈이다.
"처음엔 처용탈을 만드는 명인을 찾아 전국을 찾아 다녔어요. 그런데 일제 이후 명맥이 끊겼다는 소리를 듣고는 혼자 만들기로 결심했죠"
지금까지 문헌상 알려진 처용의 얼굴은 '조선시대의 악전(樂典)' 악학궤범에 실린 그림 한 장이 유일하다. 악학궤범에 그려진 처용의 모습은 오방색 관모를 쓰고 길고 온화한 눈에 붉은 뺨, 긴 턱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처용탈을 만든 경험이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는 한 명도 없어 처음에는 악학궤범에 나온 처용의 얼굴그림 한 장 달랑 가져다 놓고 만들기 시작했다"는 김씨는 "밤낮으로 일을 하느라 손에 수백번도 넘게 물집이 잡혀 탈 만들기를 포기하고 조각도를 던져버리고 싶은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과거를 회고했다.
김씨는 "오랜 작업 끝에 온화한 눈과 길쭉한 턱, 오방색(五方色) 사모를 쓰고 복숭아 장식을 한 처용탈을 처음 만들었을 때 첫 아이가 탄생했을 때보다 더 감격적이었다"며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처용탈은 크기나 탈의 재질에 따라 다르지만 나무로 처용탈 한 개를 만들려면 1개월은 족히 걸린다.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처용탈은 개당 30만원에서 150만원 정도의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
김씨는 "목재로 만든 큰 탈은 주로 공연용이거나 개인 소장, 기업체의 외부인사 선물용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김씨가 목재로 만든 처용탈은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인 처용무를 출 때 사용되고 있다.
울산시도 지난 67년부터 매년 처용문화제를 열어 처용문화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김씨는 "올해 3월 처용탈 제작자로서 인간문화재 지정 신청을 했는데 고증 문제로 진척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전문가들이 처용탈 고증 등 처용 연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처용탈을 만들어 계승하겠다는 후배들도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고증 작업을 거쳐 인간문화재가 되면 정기적인 지원금이 나오는 등 대우가 좋아지기 때문에 처용탈 연구에 더욱 정진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씨는 "현재 미완성 상태인 처용의 얼굴은 계속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며 "관용의 표상인 처용의 눈매를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일에 남은 평생을 바치겠다"고 강조했다.
leeyoo@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6/09/11 19:1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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