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名人◀ (14) 허벅장 신창현옹
(제주=연합뉴스) 김호천 기자 = '굴일 허잰허민 저승길도 갔다와야 헌다''옹기를 만드는 작업은 저승까지 다녀와야 할 정도로 힘들다'는 이 제주도 사투리는 유약을 칠하지 않은 옹기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짐작케 한다.
제주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14호 허벅장 기능보유자 신창현(申昌鉉.67)옹. 1939년 서귀포시 대정읍 신평리에서 도공의 맥을 이어온 집안에서 태어난 신 옹은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 삼촌 등이 옹기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허벅은 옛날 물이 귀했던 제주에서 부녀자들이 식수를 운반할 때 사용하던 제주의 대표적 옹기다.
눈썰미가 좋고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는 초등교육을 마친 15살 때부터 옹기 제작의 권위자였던 삼촌을 스승으로 모시고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삼촌은 벙어리이자 귀머거리였지만 신 옹의 조그만 잘못도 용서하지 않았다. 보수도 받지 않고 밥만 얻어 먹으면서 엄하게 교육을 받은 끝에 신 옹은 3년여 만에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신 옹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형님이 모두 옹기 만드는 일을 했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학교가는 것 보다 흙을 가지고 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며 "지금 생각해 보면 마을에서 최고로 실력이 좋았던 삼촌에게서 일을 배운 것이 행운"이라고 말했다.
재능을 인정받아 일감이 늘어나면서 벌이가 좋아지자 신 옹은 20살이 되던 해에 결혼을 하고 더욱 옹기 만드는 일에 매진했다.
당시 그의 마을 뿐만 아니라 주변 마을에서도 80% 이상의 가구가 옹기 굽는 일을 하고 있을 정도로 제주지역의 옹기산업은 번성했다.
그는 "당시 마을 주민들은 굴일(옹기 만드는 일)이 아니면 밥 먹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1년 내내 불을 때고 등짐을 지거나 수레에 실어서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옹기를 팔았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그러나 1960년대 말 다른 지방에서 유약을 바른 화려한 옹기가 제주로 들어오고, 뒤이어 값싸고 가볍고 깨지지도 않는 플라스틱과 알루미늄 그릇들이 대량으로 보급되자 제주의 옹기 산업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또한 한때 '대학나무'로 불렸던 감귤나무가 보급되면서 주민들은 너도 나도 앞 다투어 감귤 생산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신 옹도 시대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었다. 신 옹을 비롯한 옹기 장인들이 옹기 만드는 일을 포기함에 따라 유약을 바르지 않은 천연도기인 제주 옹기의 맥은 마침내 끊기고 말았다.
그렇게 3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제주대학교박물관에서 일했던 강창언(48)씨가 자신의 전 재산을 투자해 대정읍 영락리에 제주도예촌을 설립하고 옛 가마를 복원했다. 신 옹도 그곳에서 다시 옹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쉬었던 그의 손과 물레를 차는 발은 처음엔 조금 서툰 듯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옛날처럼 마음먹은 대로 움직였다.
신 옹은 현재 제주 옹기의 대표 품목인 허벅은 물론 망데기, 장태, 단지, 항아리 등 120여종의 옹기를 모두 만들어 내고 있다.
하마터면 영원히 사라질뻔했던 신 옹의 기능은 지난 2000년 제주도에 의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빛을 발하게 된다.
신 옹은 "강창언씨가 여러차례 찾아와 옹기를 다시 만들자고 부탁을 할 때는 이렇게 옹기가 다시 빛을 볼지는 몰랐다"며 "옛날과 비교해 지금도 모양새는 같아 보이지만 기술이 더 좋아져 옹기의 때깔이 더욱 좋아졌고 질도 매우 높아졌다"고 강조했다.
제주의 옹기는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특이한 기법으로 만들어진다.
일반적인 옹기나 자기들이 길게 말아진 흙을 코일처럼 쌓은 뒤 손으로 빚어내는 반면 제주의 옹기는 넓게 만든 흙판을 두드려 펴는 판상기법으로 제작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기법은 최근 국내 특허(제10-0566075호)를 받기도 했다.
특히 일반적인 가마는 흙과 내화벽돌로 축조되지만 제주의 옹기 가마는 돌로 만드는데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신 옹은 처음 강창언씨가 제주의 전통 옹기를 되살리자고 도움을 요청했을 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옹기 보다 더 좋고 값싼 그릇들이 너무나 많아 옹기를 팔아서는 먹고 살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신 옹은 이제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면서 제주 옹기를 세계적인 명품으로 만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문헌상으로 볼 때 최소 6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제주 옹기가 신 옹의 손에 의해 제주와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천연도기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웰빙시대를 맞아 플라스틱의 환경호르몬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유약을 바르지 않은 제주 옹기의 진가는 전국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제주 옹기가 이처럼 `친환경 그릇'으로 각광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신 옹에게도 한가지 고민이 있다.
현재 제주도예촌 촌장인 강씨가 그의 기술을 전수받고 있지만 뒤를 이을 젊은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신 옹은 "옹기 만드는 작업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제주도예촌에 들어와 잠시 맛만 보고 힘들다며 떠나는 젊은이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khc@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6/10/23 16:4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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