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名人◀ (13)나침반 문화재 김종대옹
(고창=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350년이 된 돌멩이가 있다. 울퉁불퉁 패인 구멍마다 뿌옇게 먼지 때가 꼈다.70대의 한 노인이 조심스럽게 이 돌멩이를 집어 굳은살 박힌 손바닥 위에 올려놓더니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본다. 350년 동안 동서남북 네갈래 방향을 짚어온 전통 나침반인 `윤도'(輪圖)를 만드는데 사용되온 자철석(磁鐵石)이다.
전북 고창 성내면에 사는 중요무형문화재 제 110호인 김종대(74) 옹. 그는 45년 동안 이 돌로 자력을 입힌 바늘을 대추나무에 꽂아 우리나라 전통 나침반인 윤도를 만들어 왔다.
들녘 마다 가을걷이가 한창인 10월 중순, 성내면 산림리에 위치한 `윤도 전시관'을 찾아가 그를 만났다.
잔디가 깔린 마당 뒤로 500평 규모의 2층짜리 건물에 윤도 전시장과 작업장이 마련돼 있다.
지난 96년 국내에서 유일한 윤도장(輪圖匠)으로 지정된 김 옹이 2003년 사비와 지원금 등 2억5천만원을 들여 번듯하게 지은 전시관이다.
그러나 외진 시골 논밭 한가운데 전시관을 세운 탓에 찾아오는 관람객은 커녕 인적도 드물다.
푸른색 한복 차림의 김 옹은 기자에게 "이곳에서 윤도가 350년 동안 대를 이어 나왔지. `돌멩이'가 여기 있는데 다른 어디를 가겠소"라며 입을 열었다.
윤도는 대추나무를 납작한 원형으로 잘라 한가운데 자침(磁針)을 꽂고 나이테 모양으로 원을 그려 한자를 새겨 넣은 전통 나침반이다. 중국에서 개발됐으며 한반도에는 신라시대 말께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북 고창에서는 350여년 전부터 전(全)씨 일가가 윤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낙산마을 야산에 있는 거북바위에 올라 자침을 가늠하면 4방향이 정확히 들어맞는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전씨 일가가 지침을 만들 때 쓰던 천연 자철석을 한(韓)씨와 서(徐)씨 일가 등을 거쳐 김 옹의 조부인 고(故) 김권삼씨가 물려받았다고 한다. 김 옹도 '돌멩이'라고 불리는 이 자철석을 맏아들이자 윤도장 이수자인 희수(45)씨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이 거무튀튀한 돌멩이가 나침반에 자력을 주는 영원한 힘이라오. 돌멩이가 준 자력으로 바늘이 방향을 찾지. 한번 받은 자력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오."
김 옹은 26살 때 처음 윤도를 만졌다. 큰아버지인 고(故) 김정의씨가 "손놀림이 꼼꼼하고 눈썰미가 있다"며 아들 대신 조카에게 기술을 물려줘 김 옹이 3대(代)째 가업을 잇게 됐다.
윤도일을 배우기 위해선 우선 손보다 머리를 써야했다. 큰아버지는 나무를 깎는 일보다 대학(大學)과 주역(周易) 등을 완독하는 일을 먼저 시켰다.
윤도는 십이지(十二支)와 팔괘(八卦)로 방향을 표시하기 때문이다. 동서남북(東西南北)은 각각 진(震).태(兌).이(離).감(坎)에 해당한다.
동심원 개수가 많은 윤도일수록 새겨넣을 글자가 많아진다. 동심원 1개를 1층이라고 부르는데 24층으로 만들 경우 음양오행(陰陽五行), 24절후(節候) 등 5천여자가 깨알같이 들어간다.
"오래 된 나무에 나이테가 많은 것처럼 윤도도 마찬가지지. 24층, 36층짜리일수록 세상 만사를 담고 있지. 뱅뱅돌이 윤도가 곧 뱅뱅도는 인생인 셈이야."
새끼손톱보다 작은 크기로 여러획의 한자를 새기려면 결이 고르고 단단한 대추나무를 써야 한다.
글자를 새긴 나무판 한가운데 자철석에 붙여 자력을 입힌 바늘을 올려 놓으면 윤도가 완성된다. 10층짜리를 만드는 데 사흘, 24층짜리는 석달이 걸린다.
윤도는 삼국시대부터 지관(地官)이 묏자리나 집터를 정할 때 썼다. 부채 끝에 소형 윤도를 매단 '선추'는 과거 시험을 보러 길을 떠난 선비들이 애용했다.
접이식 윤도에 거울을 붙인 '명경철', 나무로 조각한 거북이 등에 윤도를 박은 '거북 패철' 등으로 일상 생활에서 다양하게 활용되던 윤도는 해방 이후 군대식 나침반이 보급되면서 급속히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김 옹은 윤도를 떠나지 못했다. 지역 농협에서 11년 동안 근무하면서 틈틈이 윤도일을 했지만 타지역으로 전근 발령을 받자 아예 사표를 내고 본격적으로 윤도일에 뛰어들었다.
손품이 많이 드는 윤도는 많아야 1년에 50여개를 만드는게 고작이어서 5남매를 키우기 위해 부인이 농사일로 생계를 꾸려 나가야 했다.
수요가 줄어들고 눈도 침침해져 요즘은 한해 10여개를 내놓는 게 전부다. 기술을 배우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어 이수자가 아들 셋을 포함해 다섯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윤도가 사라져선 안된다"며 45년 동안 외길을 걸어온 김 옹의 고집은 지난 96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명맥을 이어가게 됐다.
전주와 익산 등에서 5차례에 걸쳐 윤도 개인전을 연 데 이어 10월 하순에는 문화재기능재단 주최로 미국 뉴욕에서 열흘 동안 열리는 중요무형문화재 공동 전시회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김 옹은 "기력이 떨어져 이제 직접 윤도를 만드는 일은 큰아들에게 맡겼다"면서 "나야 사람들한테 윤도라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는 일에 주력하면 되지"라고 말했다.
그는 뉴욕 전시회에 기대감을 표시한 뒤 "최초로 해외에 나가게 될 우리 전통 윤도 5점을 고르겠다"며 작업장을 뒤지다가 문득 '350년 묵은' 자철석인 `돌멩이'를 책상 서랍에서 꺼냈다.
김 옹은 달걀만한 크기의 돌멩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바라보더니 한참 동안 내려놓을 줄 몰랐다.
'전시회 때 자철석은 가져 가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옹은 "이 돌멩이가 윤도에 영원한 자력을 주는 돌이라오. 뜨거운 데도 차가운 데도 피해서 뒀다가 아들한테 물려줘야 하지 않겠소"라면서 조심스럽게 이 돌멩이를 다시 상자에 담는다.
수백년 동안 대대로 전통 나침반의 명맥을 이어온 진회색의 곰보투성이 돌멩이가 그 순간 가을 햇살에 반짝 빛을 냈다. 안경너머로 돌멩이를 바라보던 김 옹의 두 눈동자와 꼭 같은 색이었다.
newglass@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6/10/16 11:3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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