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名人◀(41)장도장(粧刀匠) 박용기 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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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 명인 박용기 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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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연합뉴스) 남현호 기자 = `일편심(一片心)'
`은장도'(銀粧刀)라면 으레 소복차림의 여인이 가슴에서 칼을 꺼내 자결하는 사극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4월말 장도장 도암 박용기(76)옹을 만나기 위해 전남 광양시 광양읍 칠성리 광양장도전수관을 찾았다.
지어진 지 1년된 건물이라 세련미가 물씬 풍겨 5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장도(粧刀)를 만드는 곳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박옹의 외아들이자 장도 전수관 관장 박종군(44)씨가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전수관 안으로 들어가자 박씨는 아버지이자 스승으로 지난 78년 중요무형문화제 제60호로 지정된 장도 명인 박용기옹을 소개했다. 박옹은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정정해 보였다.
그는 "이왕 나를 만나러 왔으니까 한마디 하지. 세상에 칼은 많지만 정절과 의리, 충효의 정신이 담겨 있는 칼은 한국의 장도 밖에 없다"면서 기자의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주었다.
박옹이 장도와 인연을 맺은 것은 14세 때다.
평소 만들기를 좋아했던 박옹은 고인이 된 광양의 유명한 패도(佩刀) 장인인 장익성씨의 눈에 띄었다.
박옹은 소학교 졸업 후 상급 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장도장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그는 60여년의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전국의 골동품, 박물관을 쫓아 다니면서 장도 연구에 몰두했고 마침내 명인의 반열에 올랐다.
박옹이 평생을 바쳐온 장도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해 왔으며 여성의 정절과 결부돼 많은 일화를 갖고 있다.
몸에 지니는 칼집이 있는 작은 칼이 바로 장도다. 조상들의 정신과 멋, 솜씨가 한꺼번에 묻어나는 아름다운 공예품이다.
`충절과 정절'의 상징으로 수년천의 역사를 간직한 채 왕이나 왕비, 장군, 선비들로부터 사대부 아녀자, 서민들까지 폭넓은 사랑을 받아왔다.
장도에는 시대에 따라 변화돼 온 조상의 미적 감각과 함께 부(富)와 권력을 표시하는 신분적인 기능이 숨겨져 있다.
선비들이 편지봉투나 화선지를 자르고, 과일도 깎고 어린 손자의 팽이를 다듬어 주거나 연을 만들어 줄때 연살을 다듬기도 했으며 봄날 아녀자들이 나물을 캐는데도 사용했다.
박옹은 "지금까지 칼을 만든게 아니라 정신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장도를 제작해 왔다"면서 "장도에는 `바로 사는 도덕'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박옹은 자신이 만든 칼날에 항상 `일편심(一片心)'이라는 글귀를 새겨 넣고 있다.
박옹은 장도에 얽힌 이러저러한 사연을 전하며 기자를 전수관 전시실로 안내했다. 전시된 장도는 `칼'이라기 보다는 `보석' 처럼 보였다.
`오동상감 타원형첨자도', `금은장 매조문 갖은을자도', `대추나무 은장파초문 갖은사각도', `은장십장생 문첨자도', `낙죽매화문장도'.
장도의 명칭은 칼자루와 칼입의 표면을 장식한 재료와 형식 및 장식에 따라 붙여지며 꾸밈새로 쓰이는 장식에는 `갖은 장식'과 `맞배기'가 있다. 재료로는 은 또는 백동(白銅)을 사용한다.
장도 만들기는 수십개의 공정을 거쳐야 하는 잔손질이 많이 가는 작업으로 짧게는 3일 길게는 1년이 걸리는 작품도 있다.
칼자루와 칼집을 만드는 재료는 금, 은, 옥, 비취, 밀화, 수정, 금강석, 황동에서부터 상아나 물소뿔, 사슴뿔, 내나무, 오죽, 대추나무, 먹감나무, 회양목 등으로 다양하다.
금, 은, 백동 등의 재료를 녹인 다음 망치로 두들겨서 납작하게 만든다. 달구어진 쇠를 수없이 망치로 내려쳐 날카로운 칼을 만든다. 이 때 쇠를 너무 달구어도, 조금 덜 달구어도 안된다.
달군 쇠를 불에서 꺼내 망치질을 시작할 때까지 걸리는 잠깐 동안의 시간도 일정해야 한다. 이렇게 장식품이 다듬어지면 여기에 문양한 국화, 여치, 메뚜기 등 전통적인 무늬를 접착시킨다.
장도 모양새는 원통형, 팔각형, 타원형, 네모형, 을자형 등이 있다.
복잡한 조각도 조각의 깊이를 이중, 삼중으로 하고 때로는 투각(透刻)을 해서 결코 번잡스러워 보이지 않게 만든다.
이런 나무 장도를 오래 써서 질이 나면 그 색상이나 광택이 어떤 보석과도 견줄 수 없는 아름다은 멋을 지니게 된다.
때로는 장도에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가미해 평소에는 펜의 기능을 하고 필요시에는 칼 기능을 하는 은장펜 장도와 칼과 붓을 겸한 붓 장도도 만들어 내고 있다.
박옹은 "장도 제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전체적인 섬세함과 칼자루와 칼집의 비율 그리고 마지막 칼날의 강함과 부드러움의 조화다"고 말했다.
그는 "85년 광주 전시회때 한 처녀가 물려받은 것이라며 품속에서 은장도를 꺼내 감정을 의뢰했을 때 나의 작품이었음을 알고 아직도 조선시대 여인 같은 여성이 있구나 싶어 무척 흐뭇했다"고 전했다.
이어 들른 3평 남짓한 박옹의 작업장에는 온갖 장비와 도구로 가득했지만 박옹의 성격 만큼이나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장도 제작 시연을 해 보인 그의 진지한 눈빛과 손길을 보면 장인이란 무엇인지 알수 있게 했다.
장도 전수관 관장인 아들 종군씨가 대를 잇고 있다. 피는 속일 수 없는가 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어깨너머로 장도 만드는 모습을 지켜 본 종군씨는 미대에 들어가 대학 4학년때부터 장도장의 명맥을 잇기로 하고 아버지와 함께 본격적으로 작업에 참여했다.
종군씨는 "아버지는 망치질을 가르친 것이 아니었다. 선인들의 정신 자세를 가르쳤고 진정한 장인의 모습을 몸소 보여 주셨다"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에 다니는 종군씨의 아들 남중군도 전수장학생이 돼 할아버지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쑥숙 자라고 있다.
남중군은 지난해 전국과학전람회 학생작품지도 논문 연구대회에서 `은장도를 만들때 조상들은 왜 삭힌 오줌을 사용했을까'라는 제목으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박옹은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려면 꾸준히 한우물을 파는 정신이 중요하다. 고집과 인내를 가지고 온 정신의 혼을 쏟아 포기하지 않고 한길을 가다보면 결국 물을 볼 수 있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해야 하고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새로운 것만, 돈이 되는 것만을 좇고 있다. 전통 공예를 배울려고 하는 사람이 없다. 이제 스승과 제자 관계가 아니라 노사 관계가 돼 버렸다"고 요즘 세태를 꼬집었다.
박옹은 지난해 정부와 광양시의 도움으로 평생 숙원이던 전수관을 열었다.
전시관을 겸한 전수관은 전시관 2개소와 작업실, 아트숍, 세미나실, 체험학습실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1전시관에는 세계 각국의이름난 도검 80여점이, 제2전시관에는 박옹의 작품과 선조들의 유물 190여점이 각각 전시돼 있다.
옛날 조상들은 혼례필수품으로 은장도, 빗, 거울을 꼽았다고 한다. 은장도를 준다는 것은 집안의 얼을 준다는 것이다.
혼사 때 다이아반지 같은 고급 예물 대신 은장도 하나쯤 챙겨보내면 어떨까 싶다.
hyunho@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7/05/01 06: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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