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의 처음
박 지 웅
물이 꼭 잠기지 않는다
물독 받쳐놓고 자리에 든다
불 끄고 길에 누웠더니
물방울이 말을 하고 있다
제 이름 밝히는 데
오래 걸린다
저 멀고 깊은 생애 알아듣는 데
오래 걸린다
물이 머금고 있던 말,
저 더딘 발음에 물든다
한 자 또 한 자 움트는
한 모금 또 한 모금
입 밖으로 떨어지는
고요한 끝
눈부신 끝
불 끄고 누워
나는 물의 맨 처음이다
―신작시집 ‘너의 반은 꽃이다’(문학동네)에서
▲1969년 부산 출생
▲2004년 계간 ‘시와사상’으로 등단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 기사입력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