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 오너에서 ‘전문경영인’으로

바보처럼1 2008. 6. 6. 19:29

[비즈피플]김석준 쌍용건설 회장… 오너에서 ‘전문경영인’으로

2007 03/20   뉴스메이커 716호

워크아웃 성공적 졸업 후 ‘백의종군’ 1년 만에 등기이사로 화려한 복귀

드라마틱한 인물.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이 최근 쌍용건설 등기이사로 내정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경향신문>
재계에선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을 이렇게 부른다. 그는 쌍용그룹 창업자인 고 김성곤 회장의 차남이다. 불과 30세에 쌍용건설 사장 자리에 올랐다. 1995년에는 형인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이 정치에 입문하면서 그룹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 그 자리까지 이어받았다. 불혹의 나이를 갓 넘긴 42세 때다. 그러나 그의 쌍용그룹 회장직은 오래가지 않았다.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그룹이 공중분해된 것. 쌍용자동차의 부실을 감당해내지 못한 것이 주원인이다.

그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김 회장은 최근 단행된 사면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다. 그는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실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물론 그가 사면 전에 활동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갈 쌍용건설을 회생시켜 달라는 채권단의 요구에 따라 그룹 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직후인 1998년 쌍용건설 CEO(최고경영자)로 복귀한 것. 이후 그는 자신을 낮췄다. 직원들에게 자신을 회장으로 부르지 말라고 당부했고, 본인 소유의 모든 재산과 지분을 회사 정상화를 위해 내놓았다. 쌍용건설은 그에게는 친정과 같은 기업이다. 그는 29세의 나이에 쌍용건설 경영에 몸담았고, 최대주주이기도 했다. 김 회장이 이 회사에 애착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 현재 그의 재산은 쌍용건설 지분 1.45%가 전부다.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기업이 망해도 3대는 간다’는 여느 재벌 오너와는 자못 다른 모습이다.

소탈한 성격에 두터운 해외인맥

쌍용건설은 지난 1998년 11월 쌍용그룹이 쌍용자동차를 대우자동차에 매각하면서 떠안은 부채와 IMF 외환위기 당시 발생한 미수금 등으로 현금유동성이 악화되면서 1999년 3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5년 8개월이 지난 2004년 10월, 쌍용건설은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2400명이던 직원을 700명으로 4분의 3 감원하고 50%에 달하는 급여삭감, 자산매각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거쳐 이뤄낸 작품이다. 이 과정 중 구심점 역할을 한 이가 바로 김 회장이다. 이런 노력으로 쌍용건설은 지난해에 매출 1조3500억 원, 순익 527억 원을 올렸다.

쌍용그룹의 분해로 한 번의 큰 실패를 겪은 기업인이지만 현재의 김 회장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부활 또는 재기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이러한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우선 그는 놀라운 친화력과 함께 소탈함을 갖춘 CEO로 통한다. 쌍용건설의 한 관계자는 “쌍용그룹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부터 소탈한 성격은 정평이 나 있었다”고 전했다. 재벌답지 않은 재벌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추석이나 명절에도 사생활보다는 해외 건설 현장을 찾아 고향에 가지 못한 직원들과 함께했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회사(쌍용건설)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오너에 대한 거부감이 많았을 텐데도 직원들이 (김 회장을) 무척 따랐다”고 전했다.

또 김 회장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솔선수범’이다. 그는 워크아웃 기간 중 출퇴근 시간에 어깨띠를 두르고 지하철역에 나가 분양 전단지를 나눠주기까지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회사 회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서울 내수동의 ‘경희궁의 아침’ 을 분양할 당시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까지 날아가 교민들을 대상으로 판촉 활동을 펼쳐 200여 가구를 분양했다. 국내 최초의 단지 전체 리모델링 사례인 서울 방배동 궁전아파트 216가구의 리모델링 수주를 위해서 주민들을 직접 만나 일을 맡겨 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런 행동이 임직원들에게 자신감과 할 수 있다는 의욕을 불어넣었음은 물론이다.

그의 강점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인맥’이다.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인도 등 아시아 정·재계에서 그의 폭 넓은 인맥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싱가포르의 관광명소인 센토사 섬에 들어서는 최고급 주거시설인 오션프런트 아파트(Oceanfront Condominium)를 수주한 것도 싱가포르 최대 기업 홍릉그룹 오너와의 친분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회장은 홍릉그룹 오너를 ‘브라더(brother)’라고 부를 정도로 둘은 막역한 사이이다.

자카르타의 ‘플라자 인도네시아 확장공사(Plaza Indonesia Extension)’를 수주한 것도 김 회장에 대한 발주처의 절대적 믿음과 신뢰가 바탕이 됐다는 후문이다. 일본 건설사는 인근 일본 대사관의 지원까지 받으면서 총력전을 펼쳤으나 김 회장에게 무릎을 꿇었다.
쌍용건설 김석준 회장(오른쪽 네번째)이 싱가포르 오션프론트 아파트 컨설 현장에서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쌍용건설 제공>

‘종업원 지주회사’ CEO 추대 주목

회사에 대한 애착도 남달랐다. 그는 2005년 공적자금 투입 기업 오너에 대한 검찰조사가 진행되자 개인적인 비리나 혐의가 전혀 없음에도 재판 중인 자신의 신분 때문에 회사와 직원들에게 누가 될 수 있다며 2006년 3월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임직원들이 그를 놔주지 않았다. 결국 김 회장은 대표이사를 그만둔 후에도 계속 회장 직함을 갖고 국내외 수주와 영업 활동을 계속했다.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 둘 수가 없었던 것.

김 회장은 3월 16일 개최될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로 재선임될 예정이다. 대표이사직을 내놓고 백의종군한 지 1년 만에 화려하게 복귀하는 셈이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당초 김 회장은 종업원 지주회사로 재탄생하려는 회사에 걸림돌이 될까봐 이사 선임을 거절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국내 건설 경기가 악화됨에 따라 해외사업에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회사 입장에서 김 회장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김 회장이 등기 임원 명단에서 빠질 경우 해외 수주에서 막대한 차질이 예상되었다.

김 회장은 결국 직원들의 요청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해외수주시 임원현황이 들어가는데 1년 간은 등기임원이 아니어서 김 회장의 이름이 빠진다”면서 “그래서 김 회장이 본의 아니게 브로커로 전락해 버린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역량을 다하려면 등기이사로 복귀해야 한다는 얘기다.

쌍용건설은 곧 매각될 예정이다.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등 채권금융기관 보유지분이 50.07%다. 채권단은 공적자금 회수를 극대화한다는 목표에 따라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는 M&A(기업인수·합병) 방식으로 주식 매각을 추진할 계획이다.

쌍용건설 매각의 최대 변수는 우리사주조합이 행사할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 우리사주조합이 우선매수청구권을 성공적으로 행사한다면, 현재 우리사주조합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 18.35%와 임원 보유 지분 1.71%, 우선매수청구권 지분 24.72%를 합해 44.78%의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여기에 쌍용양회가 보유한 우호지분 6.13%를 합하면 50.91%까지 지분율이 높아져 국내 기업에선 보기 드물게 종업원이 경영권을 인수하는 독특한 사례가 된다. 이렇게 될 경우 임직원으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김 회장이 CEO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만약 쌍용건설이 종업원 지주회사로 변신하고, 오너였던 김 회장이 쌍용건설의 CEO로 추대된다면 한국 기업사에 새로운 획이 그어지게 된다.

<조완제 기자 jwj@kyun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