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호야

저울 위의 파리

바보처럼1 2011. 9. 6.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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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인 의 유언

80세를 넘겨 산 한 부자 노인이 죽었다.
그는 재산도 많아 남부럽지 않게 살았었다.

건강도 죽기 전까지 좋았고, 봉사활동도 많이 해서
사회적으로 명망도 어느 정도 받으며 살았다.

자녀도 서넛이나 두었는데,
모두들 여유 있게 살고 사회적 신분도 좋았다.

그런데, 그는 대부분의 유산을 자신의 후처에게 주었다.
집에서 기르던 개에게도 상당한 액수의 재산을 남겼다.

자녀들에게는 별로 주지 않았다.
그러자, 자녀들이 이에 반발하였다.

다른 사람들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그렇게 유언한 노인을 비난하였다.

"늙은이가 망령이 들었지." "후처한테 쏙 빠졌던 거야."

"젊은 마누라 마술에 걸려든 거지."

"후처로 들어갈 때부터 꾸민 계략에 걸렸어."

특히, 기르던 개한테도 막대한 돈을 준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하였다.

자식들이 개만도 못하게 되었다'고
비아냥 거리기까지 하기도 하였다.

그 노인이 70세가 넘어서 아내가 죽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30대의 젊은 여자를 후처로 맞아들일 때에도
사람들은 말이 많았었다.

그때 그는 몸이 불편하지도 않았고,
옆에서 간호해 줄 만큼 병고로 시달리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입방아를 찧었었다.

"늙은이가 주책이지, 그 나이에 무슨 재취야."

"아마 기운이 넘쳐나는가 보지?"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젊은 여자를 맞아들여."

"막내딸보다도 더 젊어요, 글쎄."

"재취를 하더라도 분수가 있어야지."

그러면서, 모두들 젊은 여자가 틀림없이
재산을 노리고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지금 그것이 현실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정한 부녀처럼 서로 재미있게 살았다.
그렇게 그들은 10년을 넘게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80세가 넘어 죽은 그의 유서에는 자식들에게 주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

"너희들은 나와 가장 가까운 나의 자식들이다.
그래서 너희들은 지금까지 오래 동안
내게서 많은 혜택을 받으며 살았고,
현재도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물론 가장 많은 유산을 받을 자격이 있는 나의 혈육들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아라.

내가 괴로울 때 누가 진실로 위로해 주고,
내가 아플 때 누가 지켜보며 함께 아파했었는가?

울적할 때 마음을 풀어주고,
심심할 때면 함께 놀아준 게 누구였더냐?

너희들은 아느냐?
예쁜 꽃 한 송이가 얼마나 즐겁게 하는가를.
정겨운 노래 한 가락이 어떻게 가슴을 뛰게 하는지를.
정(情)은 외로울 때 그립고, 고마움은 어려울 때 느껴진다.

그러므로, 행복할 때의 친구보다
불행할 때의 이웃이 더욱 감사한 것이다.

병석의 노인에게는 가끔 찾는 친구보다 늘상 함께 지내는
이웃이 훨씬 더 고마운 것이다.

한창일 때의 친구들이 재롱을 피우는 귀여운 자식들이라면,
늙어서의 이웃은 내 어린 시절의 부모와 같은 분들이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서 너희들은 친구라 할 수 있고,
너희들의 젊은 계모와 검둥이는
내게는 부모와 같은 존재들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왜 친자식인 너희들에게 보다
나의 젊은 아내와 우리 개에게 대부분의 유산을
물려주었는지를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 노인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

"젊은 아내가 못된 계모로 살아도
내게는 가장 소중하고 고마운 분이다.

설령 유산을 노리고 들어왔다 하더라도
그가 내게 잘 하는 이상
내게는 그것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내 인생의 가장 괴롭고 힘없고
외로운 마지막 시기를 그래도 살맛이 나게 하고
위안을 받으며 살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힘없이 외로이 사는 노인에게는
어떻게 해주는 것이 가장 필요하며,
어떤 사람이 진실로 소중한 사람인가를
깊게 생각하길 바란다."<출처:동창 카페>
 

 

 

수묵 담채화 '여인' / 이청린 시인 화가


















 

















現:   우석대학교 사회교육원 동양화 전담교수
       韓國美術협회(東洋畵분과), 韓國文人협회(詩분과) 회원

 

 



파리가 저울에 앉는다면

저울 위에
파리 한 마리가 앉게 되면
가리키는 눈금은 변함이 없겠지만
그 무게는 거짓이 됩니다.

한 양동이 청정수에
한 점의 오물이 떨어지면
그 물은 폐수가 됩니다.

무심한 마음에 미워하는 마음이 얹히면
분노가 되고,
가지고 싶은 마음이 얹히면
탐욕이 됩니다.

<천룡스님 / 법주사 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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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구역


서울시청은 행정구역 상 중구에 들어간다.

여의도에 있는 63빌딩은 영등포구에 들어간다.

그리고 청와대는 종로구에 들어간다.

그렇다면 서울역은 어디로 들어갈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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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구로 들어가지!

 

 

60세 이상의 여자에게 필요한 다섯 가지

1. 딸

2. 재력

3. 건강

4. 친구

5. 취미


60세 이상의 남자에게 필요한 다섯 가지

1. 마누라

2. 아내

3. 처

4. 집사람

5. 와이프

 

 

같은 천국 다름 만남


노무현 대통령이 천국에서 최진실이와 즐겁게 지내고 있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뒤늦게 와 부러워 하자 여운계를 소개 시켜 주었다.


나이 많은 여자를 소개시켜 줘 은근히 부아가 차 투덜대며,


김대통령: "어이, 무혀이! 나도 최진실이와 좀 만나자!"


노대통령: (손사래를 치며) "아니, 선배님! 소속이 다르잖아요? 우리는 자살과지만 선배님들은 자연사과 아입니까?

 

 

 

 이상적인 남편이란 미확인된 소문일 뿐이다.
-브리기테 바르도트
 
 
To afford cup of coffee at ease!
Scrapped in places, Edited or Written Partially
by 0000, Sincerely, Private, 6.18, 2011 
   
     
< Hohoya Plus >

 

한 잎 두 잎 낙엽 쌓이는 소리...어느 여인의 담론 

 

식욕, 성욕, 수면욕은 인간의 기본적인 삼대욕구이다. 그 중에서 성욕만큼 인간을 혼돈하게 하고 빠져들게 하는 것도 없는 거 같다. 그러면서도 성에 대해 자유스럽게 이야기 하는 것은 아직까지 이 사회에서 그리 관용적이지는 못한 것같다. 성욕은 무엇인가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입에 떠올리거나 함부로 말해서는 안되는 영역 안에 있다. 하지만 가장 지대한 관심사이기도 할 것이다. 성에 대해 관심이 시작되는 사춘기에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성행위의 표현이나 남녀의 사랑에 대한 소설을 남몰래 읽으며 나도 어서 빨리 어른이 되어서 사랑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비가 오는 날 우산 속에서 키스를 하다가 우산을 떨어뜨리고 비를 흠뻑 맞으며 오래오래 포옹하는 영화의 장면은 내 머리 속에 사랑에 대한 온갖 환상을 심어주며 각인되었고 그 이후 나도 그러한 사랑의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지만 어떤 남자도 나에게 그런 키스나 포옹은 해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자가 남자를 붙들고 먼저 키스를 청할 수는 없었으니 나는 분위기도 모르는 남자들을 속으로 욕하며 그저 머릿속으로 온갖 사랑의 장면을 상상하며 벙어리 냉가슴 앓는 수 밖에 없었다.

사랑과 섹스가 얼만큼 함수관계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남자는 사랑 없이도 섹스가 가능하며 희열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고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와의 섹스에서만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어디에선가 본 일이 있다. 물론 여자가 육체를 통해 진정한 오르가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오랜 시일이 흐르고 남자의 몸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것을 또 경험으로써 깨달았다.

내가 최초로 유리벽 안의 내 처녀성을 깨뜨렸을 때, 나는 모든 여자들이 아마 그러하듯이 아픔 밖에는 느끼지 못했다. 그 아픔은 너무나 오랜 시간 내 몸에 남아있어서 나는 걷은 것도 부자연스럽도록 고통스러웠다. 어떤 여자는 그런 경험을 한 뒤에 거리에 나서면 사람들이 자신만 보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는데, 나는 부끄러움보다는 어떤 뿌듯함에 온몸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한 세계로의 몰입을 위해 알을 깨는 아프락사스처럼 나는 새로운 세상의 신비함에 날개를 단 것만 같았다. 물론 그 날개는 그 이후 찬란하게 하늘을 날기보다는 고통스런 지상에 머물러야 했지만. 그 이후의 섹스는 아픔보다는 무감각이었고 나는 책에서 읽은 대로 무언가 새로움 속에 빠져 보려고 했지만 늘 눈을 감고 남자가 하는 대로 있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던가 눈을 감은 내 귓가에 어떤 소리가 들렸다. 물론 이 표현은 그때의 내 감각을 추상적 활자에 담아야 하기에 좀 무리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 같았다. 낙엽이 내 귓가에 한 잎, 두 잎 떨어지면서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나는 더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었는데 한 순간 그 낙엽이 바람에 모두 날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눈을 떴고, 그날 이후부터 사랑의 행위를 하면서 조금씩 연극을 하기 시작했다. 별로 기쁨도 없으면서 소설이나 영화처럼 거짓 신음소리와 표정을 연출하면서 남자를 속였다.

남자들의 성은 20대에 최고점에 이르다가 30대에 와서는 조금 시들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여자들은 성에 대해 바야흐로 눈을 뜨는 시기가 30대라서 그 30대의 절정에 오른 성을 남편에게 만족할 수가 없어서 부부간에 갈등의 씨앗이 된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여자가 무조건 다 30대라고 해서 성에 대해 절정의 시기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 같다. 예를 들어 성에 대해 아무 경험이 없는 여자는 30대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섹스에 대한 기쁨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여자가 스물 대여섯 살에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면 10년 정도의 성생활을 가진다는 전제 하에서 그 말은 맞을 거 같다. 성은 어느 나이가 되면 저절로 찾아오는 기쁨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면서 서로의 몸에 대해 알고 길들여졌을 때, 비로소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 있어서도 연애할 때나, 결혼 초의 성생활과는 다른 기쁨을 요즘에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에게 섹스는 아픔도 아니고 눈을 감고 가만 있는 것도 아니며 거짓말로 신음소리를 내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며 내가 적극적으로 성에 몰입해서 상대와 최대한의 기쁨을 나눠가지는 것이 되었다.

지금은 내가 섹스에 빠지면 귓가에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내 몸 안에 서서히 파도의 하얀 물결이 밀려오다가 모래사장에 헉헉거리고 기진하며 쓰러졌다가 다시 시도하는 파도의 몸부림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시린 바닷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어느 순간 바다가 내 온몸을 덮치는 느낌. 나는 내 귓가에서 숨을 토하는 바닷바람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이다가 눈을 뜬다. 바로 그 순간 내가 느끼는 것은 내가 이 시간과 공간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며, 내가 온몸으로 느낀다는 것이며, 내게 느낌을 분명하게 갖게 해주는 육체에 신비함을 느낀다.

결코 관념적이고 추상적이지 않은 이 확실히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육체만큼 삶에 대해 절절한 언어가 어디 있을까? 섹스는 결코 설명이 불가능 하며 어떤 언어로도 인간을 이해시킬 수는 없는 인간의 가장 진실한 언어이다. 그리고 그 언어는 서로 사랑하는 남녀 사이를 가장 완벽하게 일치시킬 수 있는 이 세상 최초의 언어이며 마지막 언어일 것이다.

섹스의 뒤끝은 조금의 허탈함, 가슴 저림을 남기지만 위가 비면 밥을 찾듯이, 졸리면 잠을 청하듯이 아주 자연스레 찾아오는 내 일상의 아주 작고도 당연한 삶의 행위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가끔 내 귓가에서 낙엽소리와 바닷바람 소리 듣기를 즐긴다.

사각거리며 한 잎 두 잎 쌓이는 낙엽소리......
철석이며 기진하고 헉헉거리는 파도와 쏴아~하고 밀려드는 바닷바람 소리......

나는 남녀 사이의 그 애절하게 그리워하는 정신적인 사랑을 갈구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러한 정신적 사랑도 육체의 사랑을 위한 하나의 전주곡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육체의 사랑을 우위에 두는 것이 아니며 진정한 사랑은 남녀의 간절한 그리움이 결국 육체를 통하여 서로에게 기쁨을 주고 확인되어야 한다는 게 나의 작은 소견이다. <Web surfing / 작자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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