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지킴이

[스크랩] 구음의 명인 진주교방굿거리보유자 - 김수악 명인

바보처럼1 2006. 6. 2. 23:49

첨부이미지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 보유자이신 김수악선생(1925년 12월 10일 출생. 진주시 평거동 주공2APT 207-207호)은 김수악제 구음(口音)을 창제하고 진주검무로 인간문화재에 지정됐다. 선생의 아버지 김종옥은 거창군내에서 한량율객으로 통할 정도로 거문고와 피리에 능했다.

숙부 김종기도 진주권번 선생으로 창에 능하고, 관악기를 자유자재로 주무른 천하명인이었다. 김수악선생은 춤보다 먼저 유성준(1874~1949년)과 이선유(1972~ ?년) 두 명창에게 소리공부를 하였다.

경남 거창군 안의면 서하리에서 태어난 김수악선생은 일곱 딸 중 셋째로 태어나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여섯 살 때부터 소리목을 틔우기 시작하고, 양금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외삼촌인 유성준이 경남 하동 쌍계사 앞에 자리를 잡고 임방울을 비롯한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질녀인 김수악선생에게 유난히 신경을 썼다고 한다.

유성준의 문하에서 2년간을 소리 공부를 한 후 아홉 살에는 진주권번으로 들어가 권번의 음악선생으로 있던 작은아버지 김종기에게서 가야금과 소리를 배우고, 춤선생인 김옥민에게서 춤의 기본 동작을 익힌 다음 진주에 와있던 김녹주(1896~1923)에게서 소리와 함께 굿거리춤과 덧뵈기 허튼춤 등을 배웠다. 이것이 기본이 되어 지금까지 구음으로 반주를 하는 김수악선생을 일컬어 ‘김수악의 구음이면 헛간에 도리깨도 춤을 춘다.’고 할 정도다.

우리의 전통예술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가무악이 한데 어우러진 형태이다. 그리고 이 가무악의 어우러짐은 오늘날의 공연예술의 목표가 되기도 했다. 현재 이 가무악 일체의 최고의 예인을 꼽으려하면 단연 첫 손가락이 김수악선생일 것이다.
김수악선생은 아홉 살에 진주 권번(券番)에 입적하여 판소리는 유성준, 정정렬, 이선유, 김준섭 등의 쟁쟁한 명인들에게 다섯 바탕을 모두 떼었고 기악은 김종기, 강태홍, 이순근, 박상근 등으로부터 가야금과 아쟁을 배웠다. 춤은 김옥민을 통하여 발걸음을 뗀 후, 한성준에게 승무를, 김해의 김녹주에게 소고무를 물려받았다. 그리고 구한말 관기출신인 최완자에게 굿거리춤, 입춤, 검무를 배웠으니 아마 고금의 국악사를 통해 김수악선생처럼 다방면의 예능을 학습하는데 있어서 완벽한 스승을 모신 이도 없을 것이다. 현재 김수악선생은 진주검무로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보유자를, 그리고 교방굿거리춤으로 경남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춤이 두 종이나 지정된 것은 그만큼 김수악선생의 춤 실력을 인정하는 것도 되겠으나 진주검무보다 먼저 교방굿거리춤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되었다면 보다 나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한다. 같은 무형문화재라도 군무인 진주검무나 승전무보다는 승무, 살풀이춤, 태평무 등 독무가 무용을 하는 춤꾼들로서는 더 매료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며 사회적으로도 독무가 선호되기 때문이다. 그런 접으로 볼 때 독무로 교방굿거리춤이 지정되었을지라도 실속이 적은 지방문화재라는 점 때문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다한들 어디 구음(口音)만 할 것인가. 구음이란 악기를 가르칠 때 악보를 알기 쉽게 가르치기 위하여 선율을 입으로 내는 것인데 구음 자체만으로 더할 나위 없는 곡이 된다. 이 구음이 특히 위력을 발휘하는 곳이 춤판인데, 춤판에서 구음에 맞춰 춤을 추는 춤꾼들은 모두 김수악선생을 제일로 친다. 원래는 전두영이라는 전라도 사람에게 배웠다고 하는데 이제는 김수악선생의 소리가 되었다. 국창이라 불리던 만정 김소희명창까지도 ‘구음만큼은 김수악이 강산의 제일이라’ 칭찬을 할 정도였으니 그 소리가 어디 인간의 소리이겠는가. 오죽하면 김수악선생이 춤을 출 때 구음을 하면 ‘김수악의 구음이면 헛간에 도리깨도 춤을 춘다.’고 했을까. 강금실 법무장관도 특히 우리 전통춤을 좋아해, 김수악 선생으로부터 살풀이를 전수받았는데 ‘판사고 변호사고 다 때려치우고, 나하고 같이 춤이나 추자.’고 권유받을 정도로 재능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교방굿거리춤은 진주 교방의 관기들에 의해 추어졌던 진주 검무와 함께 최완자 선생으로부터 김수악 선생에게로 전해져 경남 무형문화재 제 21호로 지정이 되었다. 이 춤은 교방춤의 춤사위가 가장 잘 나타난 춤이다. 교방굿거리는 권번춤의 한 형태인 입춤으로 우리 춤의 기본 성격이 농후하며, 권번에서 춤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모든 춤의 기초로 사용하였다. 특히 진주의 교방굿거리춤은 타 지역의 춤과는 달리 마지막 부분에 소고를 들고 추어 흥을 더해주는데, 이는 김수악이 진주 권번의 명기인 최완자에게서 배운 굿거리에, 김해 권번의 명기인 김녹주에게서 배운 소고놀이를 절묘하게 합쳐 만들어 낸 춤이다.

이제 80세의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을 가르치기를 남에게 미루지 않고 직접 구음을 하면서 장구를 치는 김수악선생. 선생이 갖고 있는 모든 예능이 제자들에게 올바로 전승이 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하나의 완벽한 기예보다는 허구적인 공명에 눈을 돌리는 이 시대의 많은 젊은 춤꾼들에게 선생의 일생은 그야말로 예술인의 인생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리는 좋은 지표가 될 것이라 믿는다.

출처 : 하늘을 보세요. 그 곳에 꿈이 ~
글쓴이 : 늪바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