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지킴이

[스크랩] 明嘉 강선영 불멸의 춤 - 춤과 함께 한 70년

바보처럼1 2006. 6. 2. 23:51

불멸의 춤! 그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으려나? 무대를 보지 않고서는 그 말뜻조차 감당이 되지 않는다. 250여명이나 되는 인원이 한 무대에 서고, 그것도 3대가 한 자리에 올라 춤을 추었다. 한성준 - 강선영으로 이어지는 춤을 현재 무용계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굳힌 제자들과 그 밑 제자들까지 무대에서 춤을 추었으니 결국 4대의 춤판을 한 곳에서 본 것이다. 이러한 전무후무한 대단한 공연이 2005년 4월 22일 오후 4시, 7시 30분 두 차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라 무용사의 한 페이지를 새롭게 장식을 했다.

70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던가? 그런데 그 강산이 일곱 번이나 변하는 동안 오롯이 춤을 추기 위해서, 그리고 그 춤을 보존하고 전승시키기 위해서 평생을 춤판에서 보냈다고 한다면 세상에 어떤 수식어로도 그 깊음을 감히 표현을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명가(明嘉) 강선영 선생의 불멸의 춤은 그렇게 무대에 올랐다. 1940년 부민관에서 첫 무대를 연 뒤 수많은 국내, 외 공연으로 쌓아 올린 탑이다. 170여 개국을 순회하면서 1천회가 넘는 공연으로 국위를 선양했는가 하면 그 동안 한국무용협회 이사장과 한국예총회장을 지내면서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평을 듣는다. 그런가하면 제14대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왕성한 의정활동으로 여장부다운 기개를 보여주었다. 명무(名舞) 한성준 선생으로부터 전해 받은 40여 가지의 춤을 어떻게 해서든지 제자들에게 대물림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그 동안 남모르게 흘려온 땀이 얼마인지 아무도 알 수는 없지만 1988년 12월 1일 태평무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로 인정이 되고 그 첫 기, 예능보유자로 지정이 되면서 강선영 선생은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인다고 할 정도니 노심초사 춤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 한다고 하면 세상에 어느 누가 따를 수 있으랴.

명가 강선영 선생의 제자 사랑은 남다르다. 그저 맹목적인 사랑이 아닌 누구나가 자기 영역을 갖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사고를 가르친다. 그래서인가 강선영 선생의 제자들은 모두가 자기 영역에서 뛰어난 기량을 갖고 활동을 하고 있다. 자신이 스승에게서 받은 사랑이 남다르기에 인가 제자들에게 쏟는 정성이 각별함은 이미 잘 알려진 바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춤꾼들이 강선영 선생의 제자라고 명함을 내미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가 있다. 맏제자인 이현자(태평무 준보유자)를 비롯하여 이명자(태평무전수조교. 대진대 교수), 양성옥(태평무 전수조교. 한국종합예술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조흥동(경기도립무용단 단장,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김근희(대진대 교수), 고선아(태평무보존회 총무), 김미란(태평무전수관 무용단 단장), 임학선(성균관대 교수), 김덕수(한울림 대표), 손병우(예원대학교 교수) 등 수 없이 많은 제자들이 춤 길을 걸으면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어쩌면 선생 자신의 마지막 무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제자들에게 무엇인가를 남겨 주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모든 것을 준비했다고 한다. 이번 공연을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70년이란 긴 세월을 오직 선생의 유지를 받들고 따른 강선영 선생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고 했다. 그것은 평소 스승이신 한성준 선생께서 ‘옛 춤을 찾아 보존하고 새로운 춤을 창조해야 한다’는 뜻에 따라 오직 춤으로 70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기실 어릴 적 한성준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타고난 부지런한과 총기, 그리고 춤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인하여 선생에게 인정을 받는 직계제자가 되어 <조선음악무용연구소>에서 제자들을 가르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미 나이 17세에 <조선성악연구회>에서 박진 선생이 연출하고 조선조 말 5대 명창인 이동백, 김창룡 명창 등이 함께 한 「삼국지」에서 첫 무용안무를 맡았을 정도다. 그러고 나서 수많은 무용극의 안무를 맡으면서 뛰어난 안무자로서의 기량을 보여주었다. 1943년 한성준 선생의 공연에서 처음으로 태평무를 춘지 63년. 이제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스승이신 한성준 선생에게 바치기 위해 마련한 무대다. 불멸의 춤은 결국 스승이신 한성준 선생에게는 헌무(獻舞)가 되고, 제자들에게는 내리 사랑을 보여준 그러한 무대였다.

이번 공연은 모두 3부로 나뉘어서 무대에 올랐다. 1부는 「천추예전(千秋藝專)」으로 스승이신 한성준 선생에게서 전수 받은 작품들이다. 조흥동이 출연한 신선무를 비롯하여, 한말 구군의 훈련모습을 보고 연상해 만들었다는 훈령무(송종준, 세종대학교 무용과), 양성옥과 태평무보존회원들이 함께 한 장고춤, 조흥동, 고선아, 원정숙, 김미란이 출연한 한량무와 김근희와 대진대학교 무용학과 학생들이 출연 한 검무로 이어졌다. 이어서 수건춤, 혹은 입춤으로 불려지는 즉흥무를 태평무보존회원들이 추었으며 1부 끝 순서인 승무를 맏제자인 이현자와 태평무보존회원들이 무대를 장식했다.

2부는 「목란의 꿈, 불굴의 나날로 피어 낸 舞法, 藝法」이라는 부제를 달고 첫 순서로 살풀이를 무대에 올렸다. 명가 강선영 선생과 제자들인 이명자, 고선아, 이화숙, 임성옥, 유정숙, 양승미, 최영숙 등이 무대를 꾸몄다. 2부는 그 동안 강성영 선생이 안무를 맡았던 뭊당춤, 초혼, 원효대사, 황진이 등으로 이어졌는데 박진희가 왕무당을 맡았고 상명대학교 무용학과 학생들이 함께 출연을 했다. 초혼은 국내 최초로 국립영화제작소에 의해서 영화화가 되어 일본 도쿄아세아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춤이다. 모윤숙 작, 최창권 작곡, 강선영 안무 주연인 이 작품을 양승미, 최영숙과 손병우, 그리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학생들과 태평무전수관 문화학교 생들이 함께 무대를 꾸며 나갔다. 우너효대사 조흥동, 요삭공주 이명자, 연꽃 서정옥 등이 출연을 한 원효대사는 1976년 국립무용단에 의해 초연이 된 작품이다. 그리고 2부의 끝은 황진이 역에 이화숙, 지족선사 역에 손병우가 맡아 춤을 춘 황진이로 막을 내렸다.

3부 「明嘉 강선영 불멸의 춤」은 태평무였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이 되어 그 동안 꾸준한 전승과 많은 이수자들을 배출 해 낸 태평무를 강선영선생과 태평무보존회의 큰 제자들이 함께 무대에 올려 마지막을 장식하였다. 대단원의 막은 그렇게 내려지고 객석에서는 70년을 한 길로 춤을 추어 온 불멸의 춤꾼을 향해 아낌없는 기립박수로 환호를 보냈다. 그 숱한 인고의 세월 속에서도 굴하지 않은 오직 선생의 춤을 지키고 자신의 춤을 일구어 온 명가 강선영 선생. 이제 그 무대를 뒤로하고 한 줄기 회한의 눈물을 보이는 것은 결코 지난 세월이 그리워서가 아니다. 그것은 앞으로 수 없는 세월을 지켜갈 춤꾼들에게 보내는 선생의 극진한 사랑이다.

하주성 주간
desk@traditionart.com
출처 : 하늘을 보세요. 그 곳에 꿈이 ~
글쓴이 : 늪바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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