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박수관은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 7세 때 그의 운명이 바뀐다. 외씨버선신고 마을 어귀 당산나무 아래에서 장구 치는 한 아낙네의 뒷모습에 홀려버렸다. 그 후 최면에 걸린 듯 그는 시골 장 각설이 패거리, 상여꾼 뒤를 따라 그들이 내는 소리를 흉내 내며 흥얼거렸다. 그는 점점 한국 전통민요 가락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학교 갈 때도 그는 장구채 대용으로 막대기를 갖고 다녔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길가 바위에 올라가 막대기를 두드리면서 기억 속에 남은 우리소리의 가락을 더듬어 나갔다. ‘수관이가 돌았다’ 당시 마을에 나돌던 소문이었다. 주위 사람들의 만류는 물론, 3남매를 키우시던 어머니의 걱정과 한숨소리도 그에겐 쇠귀의 경 읽기였다. 그 이후 그는 바람소리, 새소리, 심지어 물소리한테까지도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독학에도 한계가 있었다. 더 깊은 우리소리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그러든 어느 날, 초등학교 6학년 때 부산진역 앞에서 거지행색의 ‘金路人’이란 동부소리 달인을 만난다. 그 사람의 명창 박수관의 오늘이 있게 한 스승이었다. 김로인은 매일 역 광장에 나와서 어린 그에게 소리의 기본기를 가르쳐주었다. 악보도 없으니 스승이 하는 소리를 귀로 잘 들은 뒤 따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도제식 수업이었다. 하지만 비록 나이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십 세 이전부터 우리소리에 홀려있던 터라 그는 어렵지 않게 스승의 가슴속에 비장되어 있던 민요를 건네받을 수 있었다.
노력에 노력을 경주한 결과 그는 김로인이 들려주는 동부민요 백발가, 전쟁가 등을 스승과 비슷하게 부를 수 있었다. 그는 김로인으로부터 수십 곡도 넘는 동부민요를 배웠다. 그가 배운 소리는 제도권 국악인들이 즐겨 부르는 귀에 익은 가락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민초들의 한이 서려있는 소리였다. 그는 정규 국악공부를 하지 않았다. 틀에 메일 경우 자기만의 소리세계를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자기만의 목소리에 맞는 음역, 음량, 음조를 터득하게 된 것이다. 스승이 그에게 당부한 말은 “자연에 가깝게 부르고, 목이 아닌 가슴으로 소리를 하라”는 가르침이었다. 입산수도 30년이 지난 1999년 그는 자기실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검증해보고 싶었다. 제대로 실력이 갖춰졌다면 우리소리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보자는 대발심을 한 것이다. 1999년 3월, 제1회 상주전국민요경창대회에서 명창부 대상인 문화관광부장관상을 수상했다. 1999년 5월, 전라도 진도에서 열린 제2회 남도민요 전국경창대회에 참가, 일반부 대상인 국무총리상을 거머쥔다. 경상도 출신의 소리꾼이 소리의 본향 전라도에서 따낸 대상이라 더욱 값어치가 있었다. 대미를 장식한 것은 그 해 10월, 서울에서 열린 제7회 서울전통공연예술 경연대회에서 종합대상 대통령상까지 받은 것이다. 한 해에 국내 최고 권위있는 국악대회에서 3개의 대상을 차지한 것은 국내 국악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우리소리의 사절’로 해외 무대를 누비기 시작한다.
2000년 5월, 미국 카네기 메인 홀 초청공연에선 미국인들로부터 열관적인 환호와 갈채를 받았으며, 11월 독일 하이델베르그 만하임 국제음악제 초청공연에서는 모르겐신문에 ‘천상천하의 음이 울리다’라는 타이틀로 대호평을 받았고, 이태리 로마 공연에서는 21세기 가장 위대한 성악가 중의 한 사람인 루치아노 파바로치의 스승이기도 한 이태리 최고의 성악가 쥬제페타데이로부터 ‘평생 이렇게 훌륭한 성악은 처음 들었다.’는 극찬을 받는다. 또한 2001년 10월 링컨센터에서는 UN(FAO) 세게 식량기구의 초청을 받아 세계 식량의 날 기념음악회에서 주연으로 열창, 2002년 워싱턴 케네디센터 콘서트홀에 초청되어 우리나라 국악으로서는 처음으로 2시간 박수관 동부민요발표회가 열렸는데 현지 언론의 극찬과 청중들이 열광하였다.
“소리는 삶의 원천이자 생명이다.”라고 말하는 그는 우리민족의 삶과 혼이 담긴 민요에 말로 쉼 없이 가꾸고 보존하여 다음 세대로 계승하고 발전시켜야하는 고귀한 민족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치이야 칭칭나네에 취해 흥겹게 춤을 추고, 궁초댕기, 상여소리의 슬픈가락에 숨을 죽이고, 장타령에서 박수와 아우성을 쏟아내며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드는 서양인들. 그들이 어찌하여 우리소리 가락에 감격하고 흥분하는 것일까? 우리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그는 지금도 우리 민초들의 설움과 신음, 그 속에 숨겨진 희망과 환희의 외침을 만국 공통어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동부민요로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소리가 세계의 소리가 되는 그 날까지’
'전통지킴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금과 들노래보존회 김봉길회장 (0) | 2006.06.02 |
---|---|
[스크랩] 천연 염색장 윤병운옹 (0) | 2006.06.02 |
[스크랩] 우주를 싸안는 춤사위 ~ 한혜경씨 (0) | 2006.06.02 |
[스크랩] 수천 번의 헛손질을 통해 한 동작을 완성하는 치열한 춤꾼 정재만 (0) | 2006.06.02 |
[스크랩] 전통무용의 대부 고 한성준선생 (0) | 2006.0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