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이발사의 봄..........장 서언

바보처럼1 2006. 8. 2. 00:06

<이발사의 봄>

 

봄의 요정들이

단발하러 옵니다.

 

자주공단 옷을 입은 고양이는 졸고 있는데

유리차으로 스며드는 프리즘의 채색은

면사(面紗)인 양 덮어 줍니다.

 

늙은 난로는 가맣게 묵은 담뱃불을 빨며

힘없이 쓰러졌읍니다.

 

어항 속에 금붕어는

용궁으로 고향으로

꿈을 따르고

 

젊은 이발사는 벌판에 서서

구름 같은 풀을 가위질할 때

 

소리 없는 너의 노래 끊이지 마라.

벽화 속에 졸고 있는 종달이여.

 

*동광(1930) 수록

모더니즘계열의 감각적인 시.

주제는 새로 단장하는 즐거운 봄

*이발사: 농부

*요정: 봄

 

 

<고화병(古花甁)>

 

고자기(古磁器)항아리

눈물처럼 꾸부러진 어깨에

두 팔이 없다.

 

파랗게 얼었다.

늙은 간호부처럼

고적한 항아리

 

우둔한 입술로

계절에 어그러진 풀을 담뿍 물고

그 속엔 한 오합(五合) 남는 물이

푸른 산골을 꿈꾸고 있다.

 

떨어진 화판(花瓣)과 함께 깔린

푸른 황혼의 그림자가 거북 하신 모양하고

창 넘어 터덜터덜 물러갈 때

 

다시 한번 내 뿜는

담담한 향기.

 

*카톨릭 청년(1934.2) 수록

평범한 하나의 꽃병에 이미지를 부여하여 살아 있는 한 생명체로서 승화시키고 있다.

*주제는 고화병이 풍기는 은은한 운치

 

 

<밤>

 

바람 불어 거스러진

삿대 지붕은

고요한 달밤에

박 하나 낳았다.

 

*소재는 달밤의 초가지붕 위의 박

*주제는 시각으로 느끼는 늦가을의 계절감.

 

 

<나 무 1>

 

가지에 피는 꽃이란 꽃들은

나무가 하는 사랑의 연습.

 

떨어질 꽃들 떨어지고

이제 푸르른 잎새마다 저렇듯이 퍼렇게 사랑이 물들었으나

나무는 깊숙히 침묵하기 마련이요.

 

불다 마는 것이 바람이라

시시(時時)로 부는 바람에 나무의 마음은 아하 안타까와

차라리 나무는 벼락을 쳐 달라 하오.

체념 속에 자라난 나무는

자꾸 퍼렇게 자라나기만 하고

 

참새 재작이는 고요한 아침이더니

오늘은 가는비 내리는 오후.

 

*나무는 오랜 시달림 속에서도 푸르게 자라고 있음을 순수한 감각과 탐미로 노래한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