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념>
봄 안개 자욱히 내린
밤거리 가등(街燈)은 서러워 서러워
깊은 설움을 눈물처럼 머금었다.
마음을 앓는 너의 아스라한 눈동자는
빛나는 웃음보다 아름다와라.
몰려가고 오는 사람 구름처럼 흐르고
청춘도 노래도 바람처럼 흐르고
오로지 먼 하늘가로 귀 기울이는 응시(凝視)
혼자 정열의 등불을 다룰 뿐
내 너 그림자 앞에 서노니 먼 사람아
우리는 진정 비수(悲愁)에 사는 운명
다채로운 행복을 삼가하오.
견디기보다 큰 괴로움이면
멀리 깊은 산 구름 속에 들어가
몰래 피었다 떨어진 꽃잎을 주워
싸늘한 입술을 맞추어 보자.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두고 허무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심정을 노래한 시이다.
시인의 감상(감상)과 체념이 현실을 저주하고 있다.
*너의 아스라한 눈동자: 가로등인 동시에 애인의 눈동자.
*싸늘한 입술: 체념.
<단 장(斷章)>
1
아무 마음 없이
나 홀로 여기까지 걸어 왔구나.
숲 속 좁은 산길 위에
엷은 저녁 햇방울이 떨어져 있다.
2
몇 날을 두고
아침 산보길에서 만나는 여인이기에
그 이름이 알고 싶었다.
3
기다려 기다려도 비는 오지 않고
쨍쨍 쪼이는 한낮 창 앞에
멀리 어디서 포소리 들려 오더니
거너 산에서 흰 연기 구름처럼 떠 오른다.
4
밝은 달빛이 가득 차 넘치는 넓은 이 마당
별처럼 반짝이는 이 숱한 벌레 소리 속에 서면
해 질 녁까지 그처럼 씨끄러이 놀던 애들의
꿈 속에 벌어지는 화려한 놀이판.
5
아침 산 그늘이
모시 적삼에 스미는 썰렁한 기운,
아 이제 대지에는
그 숱한 나뭇잎이 알고 모르고 꽃잎처럼 내리겠구나.
*김 달진의 초기시의 작품경향은 가시적(可視的)인 것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캐어내고자 하는 성질의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종교적으로 무척 심화된 경지를 보여 주고 있다.
<황 혼>
고창(古蒼)한 작은 정원에 황혼이 내려
무심히 어루만지는 가슴이 끝끝내 여위다.
고림(枯林)속의 오후 그림자처럼 허렁한 의욕이매
근심발은 회색 공기보다 가벼이 조밀(稠密)하다.
저 밑뿌리 고달픈 머리칼은 어지러이 길고
고독을 안은 애연(愛戀)의 한숨은 혼자 날카로와...
처마 끝에 거미 한 마리 어둔 찬비에 젖는데
아 어디어디 빨간 장미꽃 한 송이 없느냐 !
*시인부락(1936) 수록
불교적 명상에 의해 형성된 시.
" 빨간 장미꽃"은 영원한 진리를 가리킨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임의 모습>
어디고 반드시 계시리라 믿기에
어렴풋 꿈 속에 그리던 모습
어둔 밤 촛불인 듯 내 앞에 앉으신 양
아 이제 뵈는 모습 바로 그 모습이네.
아 내 마음 어떻게 두어야 하리까?
너무도 작고 더러운 존재오라
영혼의 속속들이 눈부시는 빛 앞에
화살 맞은 비둘기인 양 나래만 파닥일 뿐.
사랑이 되고 안 되고사
오로지 임에 매이었고
마주 앉아 말 주고 받은 인연
오백 생(생) 깊음이 느껴 자랑스럽네.
푸른 나뭇잎 나뭇잎 사이로
말간 가을 하늘 우러러 보면
어디서 오는 가느란 바람이기에
꽃잎처럼 흔들리는 임의 모습.
들 밖 어둔 길을 밤 늦어 돌아오면
허렁허렁 술기운 반은 취하고
먼 남쪽 하늘 가 흐르는 별 아래
산 너머 물 건너 몇 백 리인고.
가다가 문득 문득
가슴 하나 월컥 안기는 그리움
해바라기 숨길처럼 확확 달아
가을 석양 들길에 멀리 선다.
애달픈 이 사모를
혼자 고이 지닌 채 이 생을 마치오리까?
임아, 진정 아닌 척 그대로 가야 하리까?
살아 한 번 그 가슴에 하소할 길 없어---.
창 밖에 궂은 밤비 소리 들으면
풀숲에 숨어 있는 한 마리 벌레가 되어
울지도 못하는 외로운 가슴
암초롬 이슬밭에 얼어 새우랴.
어렴풋 잠결에 꾀꼬리 소리
놀란 듯 허겁지겁 창을 여나니
꿈에 뵈던 임의 소식 아니언만
알뜰히 살뜰히 아쉬움이라.
동무와 떠들다 문득 입 다물고
잔 들어 흥겨웁다 문득 멀리 앉아 봄은
어디서 오는 또렷한 모습이기
눈썹 끝에 아롱다롱 한숨발에 어리는고.
*현대문학(1967)수록
이 시에서의 "임"은 석거모니이다.원래 김 달진은 범동양적이며 불교적인 색채의 작품을 발표해 왔는데, 이 시에서도 종교적 대상인 "임"에 대한 열렬한 사모의 정을 노래하고 있다.
밤낮으로 사모해 마지 않는 "임"에 대한 사랑은 그 모습만이라도 한 번 보기를 희구하고있다. 그 간절한 염워이 단편적으로 묶여져 제 10연에 이르고 있다.
그 극진한 정을 제10연의 " 눈썹 끝에 아롱아롱 한숨발이 어리는고"라는 구절에서 극치에 이른다. 즉 젖은 눈썹 끝에 매달린 눈물 방울에서 임으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종교적 대상인 석가모니에 대한 면면한 예찬은 균여 대사의 <보현 십원가>를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다분히 인간적인 고뇌를ㄹ 순수 국어로 형상화한점에서 종교적 이데올로기성을 극복하고 있다.
*소재는 석가모니,
*주제는 제목 그대로 그리운 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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