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체념.......김 달진

바보처럼1 2006. 8. 4. 01:09

<체 념>

 

봄 안개 자욱히 내린

밤거리 가등(街燈)은 서러워 서러워

깊은 설움을 눈물처럼 머금었다.

 

마음을 앓는 너의 아스라한 눈동자는

빛나는 웃음보다 아름다와라.

 

몰려가고 오는 사람 구름처럼 흐르고

청춘도 노래도 바람처럼 흐르고

 

오로지 먼 하늘가로 귀 기울이는 응시(凝視)

혼자 정열의 등불을 다룰 뿐

 

내 너 그림자 앞에 서노니 먼 사람아

우리는 진정 비수(悲愁)에 사는 운명

다채로운 행복을 삼가하오.

 

 

견디기보다 큰 괴로움이면

멀리 깊은 산 구름 속에 들어가

 

몰래 피었다 떨어진 꽃잎을 주워

싸늘한 입술을 맞추어 보자.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두고 허무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심정을 노래한 시이다.

시인의 감상(감상)과 체념이 현실을 저주하고 있다.

*너의 아스라한 눈동자: 가로등인 동시에 애인의 눈동자.

*싸늘한 입술: 체념.

 

 

<단 장(斷章)>

 

1

아무 마음 없이

나 홀로 여기까지 걸어 왔구나.

숲 속 좁은 산길 위에

엷은 저녁 햇방울이 떨어져 있다.

 

2

몇 날을 두고

아침 산보길에서 만나는 여인이기에

그 이름이 알고 싶었다.

 

3

기다려 기다려도 비는 오지 않고

쨍쨍 쪼이는 한낮 창 앞에

멀리 어디서 포소리 들려 오더니

거너 산에서 흰 연기 구름처럼 떠 오른다.

 

4

밝은 달빛이 가득 차 넘치는 넓은 이 마당

별처럼 반짝이는 이 숱한 벌레 소리 속에 서면

해 질 녁까지 그처럼 씨끄러이 놀던 애들의

꿈 속에 벌어지는 화려한 놀이판.

 

5

아침 산 그늘이

모시 적삼에 스미는 썰렁한 기운,

아 이제 대지에는

그 숱한 나뭇잎이 알고 모르고 꽃잎처럼 내리겠구나.

 

*김 달진의 초기시의 작품경향은 가시적(可視的)인 것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캐어내고자 하는 성질의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종교적으로 무척 심화된 경지를 보여 주고 있다.

 

 

<황 혼>

 

고창(古蒼)한 작은 정원에 황혼이 내려

무심히 어루만지는 가슴이 끝끝내 여위다.

 

고림(枯林)속의 오후 그림자처럼 허렁한 의욕이매

근심발은 회색 공기보다 가벼이 조밀(稠密)하다.

 

저 밑뿌리 고달픈 머리칼은 어지러이 길고

고독을 안은 애연(愛戀)의 한숨은 혼자 날카로와...

 

처마 끝에 거미 한 마리 어둔 찬비에 젖는데

아 어디어디 빨간 장미꽃 한 송이 없느냐 !

 

*시인부락(1936) 수록

불교적 명상에 의해 형성된 시.

" 빨간 장미꽃"은 영원한 진리를 가리킨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임의 모습>

 

어디고 반드시 계시리라 믿기에

어렴풋 꿈 속에 그리던 모습

어둔 밤 촛불인 듯 내 앞에 앉으신 양

아 이제 뵈는 모습 바로 그 모습이네.

 

아 내 마음 어떻게 두어야 하리까?

너무도 작고 더러운 존재오라

영혼의 속속들이 눈부시는 빛 앞에

화살 맞은 비둘기인 양 나래만 파닥일 뿐.

 

사랑이 되고 안 되고사

오로지 임에 매이었고

마주 앉아 말 주고 받은 인연

오백 생(생) 깊음이 느껴 자랑스럽네.

 

푸른 나뭇잎 나뭇잎 사이로

말간 가을 하늘 우러러 보면

어디서 오는 가느란 바람이기에

꽃잎처럼 흔들리는 임의 모습.

들 밖 어둔 길을 밤 늦어 돌아오면

 

허렁허렁 술기운 반은 취하고

먼 남쪽 하늘 가 흐르는 별 아래

산 너머 물 건너 몇 백 리인고.

 

가다가 문득 문득

가슴 하나 월컥 안기는 그리움

해바라기 숨길처럼 확확 달아

가을 석양 들길에 멀리 선다.

 

애달픈 이 사모를

혼자 고이 지닌 채 이 생을 마치오리까?

임아, 진정 아닌 척 그대로 가야 하리까?

살아 한 번 그 가슴에 하소할 길 없어---.

 

창 밖에 궂은 밤비 소리 들으면

풀숲에 숨어 있는 한 마리 벌레가 되어

울지도 못하는 외로운 가슴

암초롬 이슬밭에 얼어 새우랴.

 

어렴풋 잠결에 꾀꼬리 소리

놀란 듯 허겁지겁 창을 여나니

꿈에 뵈던 임의 소식 아니언만

알뜰히 살뜰히 아쉬움이라.

 

동무와 떠들다 문득 입 다물고

잔 들어 흥겨웁다 문득 멀리 앉아 봄은

어디서 오는 또렷한 모습이기

눈썹 끝에 아롱다롱 한숨발에 어리는고.

 

*현대문학(1967)수록

이 시에서의 "임"은 석거모니이다.원래 김 달진은 범동양적이며 불교적인 색채의 작품을 발표해 왔는데, 이 시에서도 종교적 대상인 "임"에 대한 열렬한 사모의 정을 노래하고 있다.

밤낮으로 사모해 마지 않는 "임"에 대한 사랑은 그 모습만이라도 한 번 보기를 희구하고있다. 그 간절한 염워이 단편적으로 묶여져 제 10연에 이르고 있다.

그 극진한 정을 제10연의 " 눈썹 끝에 아롱아롱 한숨발이 어리는고"라는 구절에서 극치에 이른다. 즉 젖은 눈썹 끝에 매달린 눈물 방울에서 임으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종교적 대상인 석가모니에 대한 면면한 예찬은 균여 대사의 <보현 십원가>를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다분히 인간적인 고뇌를ㄹ 순수 국어로 형상화한점에서 종교적 이데올로기성을 극복하고 있다.

*소재는 석가모니,

*주제는 제목 그대로 그리운 임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