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 발>.................유 치환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무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닲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단 줄을 안 그는.
*조선 문단(1936.1)수록
높고 곧은 이념을 상징하며,낭만적 향수와 애수를 느끼게 하는 생명의 깃발을 노래했다.
*주제는 이념을 위한 낭만적 향수.
<행 복>
____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그리움>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그리움>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찌기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더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드메 꽃같이 숨었느냐.
*청마에게는 '그리움'이란 제목의 시가 두편 있다.
아래 시는 시원5호(1935.12)세 수록된 것.
이 두 편의 '그리움'은 모두 널리 애송되고 있다.
청마는 초기부터 시에 인간을 향한 마음의 지향이 담겨져 있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아래 '그리움'에서 청마가 찾고 있는 것은 이제 이승에서는 만날 길 없는 한 생명의 그림자인 것이다.
<의주(義州)ㅅ 길>
장안을 나서서 북쪽 가는 천 리 길
아카시아 꽃수술에 꿀벌 엉기는
이 길을 떠나면 다시 오지 안하리니
속눈썹 감실감실 사랑한 너야
이대로 고이 나는 너를 하직하노리
누가 묻거들랑 울지 말고 모른다 하소.
천리 길 너 생각에 하염없이 걷노라면
하늘도 따사로이, 뒷 등도 따사로이
가며가며 쉬어쉬어 울 곳도 많아라.
*조광2권 5호(1936.5)수록
*주제는 그리움의 정
청마의 말 "나는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
내가 인정하는 신이란..... 이 시공(時空)과 거기 따라 존재하는 만유를 있게 하는 의지 그것인 것이다."
<일 월(日月)>
나의 가는 곳
어디나 백일(白日)이 없을소냐.
머언 미개적 유풍(遺風)을 그대로
성신(星辰)과 더불어 잠자고
비와 바람을 더불어 근심하고
나의 생명과
생명에 속한 것을 열애(熱愛)하되
삼가 애련(愛憐)에 빠지지 않음은
----그 는 치욕임일레라.
나의 원수와
원수에게 아첨하는 자에겐
가장 옳은 증오를 예비하였나이.
마지막 우러른 태양이
두 동공(瞳孔)에 해바라기처럼 박힌 채로
내 어느 불의에 짐승처럼 무찔리기로
오오, 나의 세상의 거룩한 일월에
또한 무슨 회한인들 남길소냐.
*문장3호(1939.4)수록
일제 말기의 암흑기에 처하여 살면서도 그에 굴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를 보여 준 남성적인 시이다.
첫 부분에서는 이상적인 생명을 원시적인 것에서 구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주제는 원초적 생명 의지에의 지향.
<춘 신(春信)>
꽃등인 양 창 앞에 한 그루 피어오른
살구꽃 연분홍 그늘 가지 새로
작은 멧새 하나 찾아와 무심히 놀다 가나니.
적막한 겨우내 들녘 끝 어디에서
작은 깃 얽고 다리 오그리고 지내다가
이 보오얀 봄길을 찾아 문안하여 나왔느뇨.
앉았다 떠난 아름다운 그 자리 가지에 여운 남아
뉘도 모를 한 때를 아ㅏ쉽게도 한들거리나니
꽃가지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진 끝없이 작은 길이여.
*시집 생명의 서(1947)수록
관념의 의지로 되어 있는 청마의 시세계와는 다르게 섬세한 감각과 언어로 표현된 작품.
특히 3연의 섬세한 감각은 일품이다.
*주제는 이른 봄의 정감(情感)
<청령가(청령가)>
---정향(丁香)에게
고추잠자리 고추잠자리
무슨 보람이 이뤄져 너의 되었음이랴
노을 구름 비껴 뜬 석양 하늘에
잔잔히 눈부신 마노(瑪瑙)빛 나래는
어느 인류의 쌓인 탑이
아리아리 이에 더 설우랴
덧없는 목숨이래
소망일랑 아예 갖지 않으며
요지경같이 요지경같이
높게 낮게 불타는 나의
---노래여
뉘우침이여
*"청령"은 "잠자리"이고, 이시의 대상이 된 "정향"은 익히 알려지 대로 여류 시조 시인 이영도
청마는 자신의 불타는 정열을 고추잠자리에서 찾아보면서, "뉘우침" 속에 또 어쩔 수 없이 사랑으로 가슴 아파하고 있다.
<시인에게>
영원을 나는 믿지 않는다.
그것은 정수리 위에 도사려
내가 목숨을 목숨함에는
솔개에게 모자보다 무연(無緣)한 것.
이 날 짐짓
나를 붙들어 놓지 않는 것은
살아 있으므로 살아야 되는 무가내한 설정에
비바람에 보둠긴 나무.
햇빛에 잎새 같은 열망.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그 짧은 인생의 사무치는 뜨거움에
차라리 나는 가두 경세가(經世家).
마침내 부유(부유)의 목숨대로
보라빛 한 모금 다비(茶毘)되어
영원의 희멀건 상판을 기어 사라질 날이
얼마나 시원한 소진(消盡)이랴.
그러기에 시인이여
오늘 아픈 인생과는 아예 무관한 너는
예술과 더불어 곰곰히 영원하라.
<비력(非力)의 시>
우환(憂患)은 사자 신중(身中)의 벌레.
자학의 잔은 담즙(膽汁)같이 쓰도다.
진실로 백일(白日)이 무슨 의미러뇨.
나는 비력(非力)하여 앉은뱅이.
일력(日曆)은 헛되이 모가지에 오욕(汚辱)의 연륜만 끼치고
남은 것은 오직 짐승 같은 비로(悲怒)이거늘
말하라, 그대 어떻게 오늘날을 안여(晏如)하느뇨.
*조선일보(1938)수록
일제의 억압 밑에서도 아무 힘을 못 쓰고 있는 시인 자신, 더 나아가서 조국의 모습을 한탄하고 있다.
<광야에서>
흥안령 가까운 북변(북변)의
이 망막한 벌판 끝에 와서
즉어도 뉘우치지 않으려는 마음 위에
오늘은 이레째 암수(암수0의 비 내리고
내 망난이에 본받아
화톳장을 뒤치고
담배를 눌러 꺼도
마음은 속으로 끝없이 울이노니
아아 이는 다시 나를 과실(과실)함이러뇨.
이미 온갖을 저버리고
사람도 나도 접어 주지 않으려는 이 자학(자학)의 길에
내 열 번 패망의 인생을 버려도 좋으련만
아아 이 회오(회오)의 앓임을 어디메 호읍(호읍)할 곳 없어
말없이 자리를 일어 나와 문을 열고 서면
정거장도 2 백 리 밖
암담한 진창에 갇힌 철벽 같은 절망의 광야 !
*끝없는 만주의 광야에서서 청마는 생명을 초월한 도도한 자세를 견지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죽어도 뉘우치지 않는 마음"은 강한 의지적 표현이라기 보다 뉘우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생명의 서>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 ㅎ게 돌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동아일보(1938.10.19)수록
허무사상을 바탕에 깔고, 생명의 본연에 대한 추구를 시도하고 있는, 청마으 시세계를 대변해 주고 있는 시. 생명과의 대결 의식이 나타나 있다.
*주제는 원초적 생명의 추구
1연: 인생의 의의에 관한 회의감
2연: 작자가 처해 있는 극한 상황
3연: 작자의 불굴의 의지.
*알라: 이슬람교의 신.
*영겁의 허적: 죽음
*원시의 본연의 자태: 순수한 생명
<바 위>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례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 년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삼천리(1941.4)수록
허무를 향한 불굴의 의지를 노래하였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겉으로 나타내지 않고,자아의 구원을 완성하겠다는 처절한 의지의 시이다.
*주제는 허무에의 의지.
<설 일(雪日)>
하늘도 땅도 가림할 수 없어
보오얀히 적설(적설)하는 날은
한 오솔길이 그대로
먼 천상(천상)의 언덕배기로 잇따라 있어
그 길을 찾아 가면
그 날 통곡하고 떠난 나의 청춘이
돌아가신 어머님과 둘이 살고 있어
밖에서 찾으면
미닫이 가만히 밀리더니
빙그레 웃으며 내다보는 흰 얼굴 !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문득 머리 속에 떠오른 하나의 이미지를 작품화한 시이다..
*주제는 애달픔과 그리움
<꽃>
가을이 접어드니 어디선지
아이들은 꽃씨를 받아 와 모으기를 하였다.
봉숭아 금선화 맨드래미 나팔꽃
밤에 복습도 다 마치고
제가기 잠잘 채비를 하고 자리에 들어가서도
또들 꽃씨를 두고 이야기---
우리 집에도 꽃 심을 마당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어느 덧 밤도 깊어
엄마가 이불을 고쳐 덮어 줄 때에는
이 가난한 어린 꽃들은 제가기
고운 꽃밭을 안고 곤히 잠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가나한 선비의 가정 풍경을 그린 시이다.
아무런 기교도 없이 써 내려가는 소박흐러움---이것이 청마의 시세게이다.
<울 릉 도>
동쪽 먼 심해선(深海線)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금수로 굽이쳐 내리연
장백의 멧부리 방울 튀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
창망한 물굽이에
금시에 지워질 듯 근심스레 떠 있기에
동해 쪽빛 바람에
항시 사념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지나 새나 뭍으로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출렁이는 풍랑 따라
밀리어 오는 듯도 하건만,
멀리 조국의 시직의
어지러운 소식이 들려올 적마다
어린 마음 미칠 수 없음이
아아, 이렇게도 간절함이여 !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들꽃과 같이>
---장전(長箭)에서
악몽이었던 듯
어젯밤 전투가 걷혀간 자리에
쓰러져 남은 적으 젊은 시체 하나
호젓하기 차라리 한 떨기 들꽃 같아
외곬으로 외곬으로 짐승처럼 너를 쫓아
드디어 이 문으로 몰아다 넣은 것.
그 악착스런 삶의 폭충이 스쳐 간 이제
이렇게 누운 자리가 얼마나 안식(安息)하랴.
이제는 귀도 열렸으리.
영혼의 귀 열렸기에
묘막(渺漠)히 영원으로 울림하는
동해의 푸른 굽잇물소리도 은은히 들리리.
*6.25동란 당시 종군 작가로 활약하며 쓴 시이다.
청마는 전쟁터에서 적으 주검을 한 떨기 들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1연 4행은 시인의 경건한 심정이 나타나 있다.
*이 문: 죽음의 문.
*삶의 폭풍: 전쟁.
*묘막히: 아득히
<식 목 제>
보라,오늘
보랏빛 장백 산맥이 남으로 남으로 갈래 뻗은
아시아 동쪽 작은 반도의 산 이란 산 메란 메엔
그 골짜기에 깃들여 사는 온 백성들이
양춘의 따뜻한 햇볕을 받고 올라가,
옛 이스라엘 족속들이 나라를 찾아 광야에 호소하듯
오랜 인욕에 헐벗긴, 어머님인 조국을 애석해 하여
마음으로 나무를 심어 아끼기에 강산이 허옇나니.
이 땅 아들딸의 눈물과 한숨이
속속들이 ㅣ스며든 애달픈 산천이기에
한 줌 흙, 한 포기 풀일망정
어찌 제 피나 살인 양 아끼지 않으랴.
이렇게 한 포기 나무를 국토에 꽂음으로
지난날 무릅쓴 절치(切齒)를 다시 맹세하고
엎드려 심는 포기 포기에 단성이 어리었나니.
뜻있는 나무여.
지난날엔 그 불측한 능멸과
자신의 분노에 차라리 자라지 못했거니,
오늘은 이 호호한 반도의 대기 속에
백성의 지성한 축원을 받들어,
일월성신과 더불어 울창하여
아, 우렁찬 대국(大國)의 동량이 되라.
*이 시에서의 나무는 겨레의 젊은이를 뜻한다.
1연: 서경.
2연: 조국애.
3연: 축원
소재는 백의 민족과 나무
주제는 조국 번영에의 정성어린 축원
"오랜 인요" "지난날 무릅쓴 절치" 는 일제 36년의 박해를 뜻한다.
*인욕: 옥됨을 참음
*절치: 분하여 이를 갈다.
*단성: 뜨거운 정성
*능멸: 업신여겨 깔보다.
*호호한: 넓고 넓은.
*동량: 기둥과 들보.
<산 2>
음우(陰雨)를 안은 무거운 절망의 암운(暗雲)이
너를 깊이 휘덮어 묻었건만은
발은 굳게 대지에 놓았고
이마는 구름 밖에 한결 같은 창궁(蒼穹)을 우르렀으니
산이여
너는 끝내 의혹하지 않을지니라.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고독은 욕되지 않으다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
겨울의 숲으로 오니
그렇게 요조(窈窕)ㅎ던 빛깔도
설레이던 몸짓들도
깡그리 거두어 간 기술사(奇術師)의 모자.
앙상한 공허만이
먼 한천(寒天)끝까지 잇닿아 있어
차라리
마음 고독한 자의 거닐기에 좋아라.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엔
나의 뜨거운 노래는
여기 언 땅에 깊이 묻으리.
아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마침 비굴한 목숨은
눈을 에이고, 땅바닥 옥에
무쇠 연자를 돌릴지라도
나의 노래는
비도(非道)를 치레하기에 앗기지는 않으리라.
들어 보라.
이 거짓의 거리에서 숨결쳐 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한 울림을.
모두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동아일보(1960.3.13) 수록
이른바 3.15 부정 선거 직전에 쓴 시.
앙가지망의 시이며 저항의 시 이다.
*주제는 사회 정의의 고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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