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자화상...............서 정주

바보처럼1 2006. 8. 4. 02:28

<자화상>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갚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 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하였느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니의 숫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8 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질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시건설(1939) 수록

미당의 초창기 시 세계를 가리켜 흔히 " 인생과 육성(肉聲)의 구가(謳歌)"라 평하고 있는 데,

이 작품 역시 그의 초기를 대표하는 시 가운데 한 편이다. 이 시에서 노래된 " 종"은 한국의 봉건 사상에서 볼 때 아주 천민에 속하여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하는 계층의 사람이다. 그러나 종교적 입장에서 볼 때 하나의 고행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당이 만년에 종교 세계의 작품을 즐겨 읊은 것은 예정된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도화 도화(桃花桃花)>

 

푸른 나무 그늘의 네 거름 길 위에서

내가 붉으스럼한 얼굴을 하고

앞을 볼 때는 앞을 볼 때는

 

내 나체의 예레미아서

비로봉상(毘蘆峯上)에 강간 사건들.

 

미친 하늘에서는

미친 오필리아의 노래소리 들리고

 

원수여.너를 찯아 가는 길의

쬐끄만 이 휴식.

 

나의 미열(微熱)을 가리우는 구름이 있어

새파라니 흘러 가다가

해와 함께 저물어서 네 집에 들리리라.

 

*인문평론(1940)에 수록

 

 

<서 풍 부>

 

서녘에서 불어 오는 바람 속에는

오갈피 상나무와

개가죽 방구와

나의 여자의 열 두 발 상무상무

 

노루야 암노루야 홰냥노루야

늬 발톱에 상채기와

퉁수 ㅅ소리와

서서 우는 눈먼 사람

자는 관세음.

 

서녘에서 불어 오는 바람 속에는

한바다의 정신ㅅ병과

징역 시간과

 

*문장(1940) 수록

영국의 시인 셀리의 '서풍부''가 낭만적인 서정만 노래했다면, 미당의 '서풍부'는 그 서정에 인간 구원을 향한 몸부림이 있다. "서녘"은 정토(淨土)가 있는 곳이다.

 

 

<민들레 꽃>

 

바보야 하이얀 민들레가 피었다.

네 눈썹을 적시우는 문둥병의 하늘 밑에

히히 바보야, 히히 우습다.

 

사람들은 모두 다 남사당패같이

허리띠에 피가 묻은 고의 안에서

들키면 큰일나는 숨들을 쉬고,

 

그 어디 보리밭에 자빠졌다가

눈도 코도 상사몽(想思夢)도 다 없어진 후

소주와 같이 소주와 같이

나도 또한 날아나서 공중에 푸를리라.

 

*인간의 원죄를 노래한 점에서는 그의 '문둥이'와 다를 바 없다.'문둥이'에서는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고 노래한 반면, 이 시에서는 " 히히 바보야,히히 우습다"고 한 점이 다르다.그러나."울음"과 "웃음"은 서로 통하고 있다.

 

 

<추일 미음(秋日微吟)>

 

울타릿가 감들은 떫은 물이 들었고

맨드라미 촉규(촉규)는 붉은 물이 들었다만

나는 이 가을날 무슨 물이 들었는고.

 

안해박은 뜰 안에 큰 주먹처럼 놓이고

타래박은 뜰 밖에 작은 부먹처럼 놓였다만

내 주먹은 어디다가 놓았으면 좋을꼬.

 

*이 시에서도 미당이 즐겨다룬 인간의 원초적문제, 그 생명 현상에 대한 짙은 집착을 찾아볼 수 있다.

 

 

 

<기다림>

 

내 기다림은 끝났다.

내 기다리던 마지막 사람이

이 대추굽이를 넘어간 뒤

인젠 내게는 기다릴 사람이 없으니.

 

지나간 소만의 때와 맑은 가을날들을

내 이승의 꿈 잎사귀, 보람의 열매였던

 

이 대추나무를

인제는 저승 쪽으로 들이밀거나.

내 기다림은 끝났다.

 

*미당은 '화사'나 '문둥이'에서 볼 수 있는 고행 사상의 세계를 넘어서서 '귀촉도'와 '국화 옆에서'등 일련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인간 정한의 극치를 노래했다. 그리고 신라 정신과 불교으 세계로 깊이 침잠하게 되는데, 이 작품은 서정한(抒情恨)의 세계에 대한 고별의 노래이다.

 

 

<선운사(禪雲寺) 동구(洞口)>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읍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읍니다.

 

*1,2연에서도 수도자의 자세인 시인은 "막걸릿집 여자"라는 고해의 중생을 통해 " 목이 쉬어" 진리 탐구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마른 여울목>

 

말라 붙은 여울 바닥에는 독자갈들이 드러나고

그 위에 늙은 무당이 또 포개어 앉아

바른 손바닥의 금을 펴어 보고 있었다.

 

이 여울을 끼고는

한 켠에서는 소년이 한 켠에서는 소녀가

두 눈에 초롱불을 밝혀가지고 눈을 처음 맞치고 있던 곳이다.

 

소년은 산에 올라 맨 높은 데 낭떠러지에 절을 지어

지성을 드리다 돌아가고

소녀는 할 수 없이 여러 군데 후살이가 되었다가 돌아간 뒤

 

그들의 피의 소원을 따라 그 피의 분꽃 같은 빛깔은 다 없어지고

맑은 빛낱이 구름에서 흘러 내려 이 앉은 자갈들위에 여울을 짓더니

그것도 할 일 없어선지 자취를 감춘 뒤

 

말라 붙은 여울 바닥에는 돌자갈들이 드러나고

그 위에 늙은 무당이 또 포개어 앉아

바른 손바닥의 금을 펴어 보고 있다.

 

*현대 문학(1959)수록

 

 

<화 사(花蛇)>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 내던 달변(達辯)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 뜯어라, 원통히 물어 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 ㅅ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드를까 보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빛.......

클에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 스며라, 배암 !

 

우리 순네는 스물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스며라, 배암 !

 

*시인 부락 2호(1936.12)수록

소재가 된 뱀을 원시적 생명력의 상징으로 보고 이에 대한 추구와 갈구를 노래한 미당 조기의 대표작 중 하나.

미당 제 1기의 시세계인 이른바 "화사집 시대" 는 보들레르의 영향이 그의 힘찬 원생주의와 조화되어 있다.

*주제는 원시적 생명력에 대한 추구.

 

*1연: 뱀의 운명

2연: 매혹적인 뱀

3연: 뱀의 숙명적인 독기와 정력의 발산 고조

4연: 뱀에 의한 충동

5연: 동경과 갈구로 뒤쫓음

6연: 뱀의 소유욕

7연: 뱀과 관능적 욕망

8연: 관능적 생명력의 고조 

 

 

<문 둥 이>

 

해와 하늘빛이

문두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시인 부락 창간호(1936.11)수록

"붉은 울음"은 이른바 "육성(肉聲)의 몸부림"에 해당한다.

*주제는 생몀의 원시 회귀의 모습.

 

 

<대 낮>

 

따서 먹으면 자는 듯이 죽는다는

붉은 꽃밭 사이 길이 있어

 

아편 먹은 듯 취해 나자빠진

능구렁이 같은 등어릿길로

임은 달아나며 나를 부르고......

 

강한 향기로 부르는 코피

두 손에 받으며 나는 쫓느니

 

밤처럼 고요한 끓는 대낮엔

우리 둘이는 왼몸이 닳아......

 

*시인 부락 창간호(1936)수록

미당이 해인사에서 쓴 작품.

시인 부락에 발표된 미당으 작품은 모두 5편이다..

1집: '문둥이' '대낮'

2집; '화사' '달밤' '방'

 

 

<부활>

 

내 너를 찾아왔다, 수나(수娜). 너 참 내 앞에 많이 있구나. 내가 혼자서 종로를 걸어가면 사방에서 네가 웃고 오는구나. 새벽 닭이 울 때마다 보고 싶었다. 내 부르는 소리 귓가에 들리느냐.수나,이게 몇 만 시간만이냐.

그 날 꽃상여 산 넘어서 간 다음, 내 눈동자 속에는 빈 하늘만 남더니, 매만져 볼 머리카락 하나 머리카락 하나 없더니, 비만 자꾸 오고...... 촛불밖에 부엉이 우는 돌문을 열고 가면 강물은 또 몇 천 린지, 한번 가선 소식 없던 그 어려운 주소에서 너 무슨 무지개로 내려왔느냐.

종로 네거리에 뿌우여니 흩어져서 뭐라고 조잘대며 햇볕에 오는 애들. 그 중에도 열 아홉쯤 스무 살쯤 되는 애들---그들의 눈망울 속에, 핏대에,가슴 속에 들어 앉아 수나 ! 수나 ! 수나 !너 인제 모두 다 내 앞에 오는구나.

 

*'부활'은  조선일보(1939.7)수록

'바다'는 사해공론(1939.9)수록

미당의 시세계는 그 시집에 따라 다음5기로 나눌 수 있다.

*제 1기 <화사집>(1938)시대: 악마적이며 원색적인 시풍, 토속적 분위기를 바탕으로 인간의 원죄를 노래했다. 스스로를 죄인으로 규정하고, 그 운명적 업고를 문둥이나 뱀을 통해 울부짖었다.

*제 2기 <귀촉도>(1946)시대: 서정주 시선(1955)도 포함된다. 동양적인 사사으로 접근하여 재생을 노래한다. 민족적 정조와 그 선율을 읊었다. '국화 옆에서' 등 걸작이 많다.

*제 3기<신라초>(1960)시대: 불교 사상과 불교적 인연설에 관심을 보이던 미당은 불교국 신라에서 시의 소재를 골랐다. 선적(禪的)인 정서를 바탕으로 인간의 구원을 불교에서 찾았다. 대표작은 <꽃밭의 독백>이다.

*제 4기 <동천>(1968)시대: <신라초>시대보다 불교쪽으로 더욱 심화된 시기다. 그 시는 유현(幽玄)한 정적이 비술적(秘術的)경지를 드러내어 신비주의에 휩싸이게 된다." 동천" '선운사 동구' '영산홍' 등의 수작이 있다.

*제 5기 <질마재 신화(神話)>(1975)시대: <떠돌이의 시(1976)>도  여기에 속한다. 토속적이며 주술적인 원시적 샤머니즘이 노래된다. 시의 형태도 산문시나 정형시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신부'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미당에 대한 평가

---어떤 시인도 따를 수 없는 도저(到底)한 자리. (고은)

---항시 고차원의 예술적 심미안(박 재삼)

 

 

<바 다>

 

귀 기울여도 있는 것은 역시 바다와 나뿐,

밀려 왔다 밀려 가는 무수한 물결 위에 무수한 밤이 왕래하나

길은 항시 어디나 있고, 길은 결국 아무데도 없다.

 

아--- 반딧불만한 등불 하나도 없이 울음에 젖은 얼굴을 온전한 어둠 속에 숨기어 가지고....너는

무언의 해심(해심)에 홀로 타오르는

한낱 꽃 같은 심장으로 침몰하라.

 

아---스스로이 푸르른 정열에 넘쳐

둥그런 하늘을 이고 웅얼거리는 바다, 바다의 깊이 위에

네 구멍 뚫린 피리를 불고..... 청년아,

 

애비를 잊어버려

에미를 잊어버려

형제와 친척과 동무를 잊어버려

마지막 네 계집을 잊어버려

 

아라스카로 가라, 아니 아라비아로 가라, 아니 아메리카로 가라

아니 아프라카로 가라, 아니 침몰하라,

침몰하라, 침몰하라.

 

오--- 어지러운 심장으 무게 위에 풀잎처럼 흩날리는 머리칼을 달고

이리도 괴로운 나는 어찌 끝끝내 바다에 그득해야 하는가.

 

눈 떠라. 사랑하는 눈을 떠라 청년아.

산 바다의 어느 동서남북으로도

밤과 피에 젖은 국토가 있다.

 

아라스카로 가라 !

아라비아로 가라 !

아메리카로 가라 !

아프리카로 가라 !

 

 

<푸르른 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원하자.

 

 

<귀 촉 도(歸觸道)>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친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파촉) 삼 만리.

 

신이나 삼아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머리털 엮어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춘추>(1943.10)수록

1연;임의 죽음

2연: 임께 정성을 다 못한 뉘우침

3연: 그리움

*제 2연의 서술 순서는 다음과 같다.

8 신이나 삼아 줄 걸/4 슬픈 사연의/ 5 올올이 아로새긴/ 7 육날 메투리/ 2 은장도 푸른 날로/ 3 이냥 베어서/ 1 부질없는 이 머리털/ 6 엮어 드릴 걸.

 

 

<견우의 노래>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살과

물살 몰아 갔다 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돌아서는 갈 수 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

 

직녀여, 여기 번쩍이는 모래밭에

돋아나는 풀싹을 나는 세이고.....

 

허이연     허이연 구름 속에서

그대는 베틀에 북을 놀리게.

 

눈썹 같은 반달이 충천에 걸리는

칠월  칠석이 돌아오기까지는

 

검은 암소를 나는 먹이고

직녀여 그내는 비단을 짷세.

 

*신문학(1946.6)수록

사랑의 성취를 위해서는 많은 기다림과 괴로움이 있어야 하고, 진리의 터득을 위해서도 또 많은 기다림과 시련이 있어야 한다.

미당의 대표작인 <국화 옆에서>를 연상시켜 주는 작품이다.

*주제는 진리 터득을 위한 참을성.

 

 

<밀 어(밀어)>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남아.

 

굳이 잠긴 잿빛의 문을 열고 나와서

하늘가에 머무는 꽃봉오릴 보아라.

 

한없는 누에실의 올과 날로 짜 늘인

채일을 두른 듯, 아늑한 하늘가에

뺨 부비며 열려 있는 꽃봉오릴 보아라.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남아.

 

저,

가슴같이 따뜻한 삼월의 하늘가에

인제 바로 숨쉬는 꽃봉오릴 보아라.

 

*백민(白民)(1947.2) 수록

광복의 감격과 기쁨을 노래한 시

1-2-3연에서 점층법을 쓰고 있고, "아"의 각운을 지니고 있다.

*굳이 잠긴 잿빛의 문: 일제의 압박

*꽃봉오리: 조국 광복의 기쁨과 빛나는 앞날의 희망.

 

 

<목 화>

 

누님

눈물겨웁습니다.

 

이 우물 물같이 고이는 푸름 속에

다수굿이 젖어 있는 붉고 흰 목화꽃은

누님

누님이 피우셨지요 ?

 

퉁기면 울릴 듯한 가을의 푸르름엔

바윗돌도 모두 바스라져 내리는데......

 

저, 마약과 같은 봄을 지내어서

저, 무지한 여름을 지내어서

질갱이 풀 거슴길을 오르내리며

허리 굽흐리고 피우셨지요 ?

 

*시집<귀촉도(1946)>수록

목화꽃을 보며 그것을 키우느라고 고생한 누님 생각을 노래한 시.

"목화"를 단순히 목화로 생각지 말과 좀더 상징적이고 차원 높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추 천 사(추遷詞)>

 

향단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이 다수굿이 흔들리는 수양버들 나무와

벼개모에 뇌이듯한 풀꽃데미로부터,

자잘한 나비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산호(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다오.

채색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다오 !

 

서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다오.

향단아.

 

*제 3시집 <서정주 시선>(1955)수록

*주제는 여인의 청춘 환희

1연에서 "바다"와 "배"가 3연에서 "하늘"과 "구름"으로 바뀐 것은 지상적인 사랑에서 천상적인 사랑으로 승화한 것을 뜻한다.

"그네"는 지상적인 괴로움과 운명을 벗어나려는 상징의 그네이다.

*추천: 그네

*서: 여기서는 극락 세계를 가리킴

 

 

<국화 옆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경향신문(1947.11.9)수록

작자의 감정이 고조되어 정점을 이룬 대목은 3연 4행

*주제는 인고를 통해 결정(결정)된 중년 여성의 원숙미.

*이 시는 불교의 윤회설에 바탕을 두었다.

1연: 음향과 국화와의 인연.

2연: 색채와 국화와의 인연.

4연: 무서리와 국화와,또한 작자와 국화와의 인연.

*소쩍새: 번뇌와  비탄을 뜻함

*먹구름: 불안과 고통을 뜻함

*무서리: 시련과 인내를 뜻함.

 

 

<신 록(신록)>

 

어이할꺼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남 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 !

 

천지엔 이미 꽃잎이 지고

새로운 녹음이 다시 돋아나

또 한번 날 에워싸는데

 

못 견디게 서러운 몸짓을 하며

붉은 꽃잎은 떨어져 내려

펄펄펄 펄펄펄 떨어져 내려

 

신라 가시내의 숨결과 같은

신라 가시내의 머리털 같은

 

풀밭에 바람 속에 떨어져 내려

올해도 내 앞에 흩날이는데

부르르 떨며 흩날리는데......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할

기찬 사랑을 혼자서 가졌어라.

 

*시집<서 정주 시선(1955)수록.

 

 

<춘 향  유 문(春香遺文)>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 있던

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 길 땅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예요 ?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부을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예요.

 

*제 3 시집 <서 정주 시선 >수록

윤회 사상을 바탕에 깔고 있는 이 시의 주제는 끝 연에 집약되었다.

"그 구름이 소나기되어 퍼부을 때"는 생사를 초월한 사랑의 결합을 나타낸다.

*주제는 불변과 불멸의 애정

*제 4연은 대조법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는 불변의 사랑을 상징한다.

*유문: 유서

*도솔천: 극락의 네째 하늘

*검은 물- 구름- 소나기: 춘향의 변신

 

 

<꽃밭의 독백>

---사소(娑蘇)단장---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山돼지, 매(鷹)로 잡은 山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開闢)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치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 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思潮창간호(1958.6) 수록

생명의 신비를 꽃에 비겨, 신앙적인 의지로써 거기 도달하려는 시인의 몸부림을 노래하였다.

*주제는 求道의 염원.

*사소는 박 혁거세이 어머니.

*1~4행: 모든 사물의 한계성

*5~6행: 세속적 쾌락에 흥미를 잃었다.

7~11행: 원시 생명을 추구하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12~14행: 구도의 길이 어려워도 꼭 찾고야 말겠다.

 

 

<무등(無等)을 보며>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가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렵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여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누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히 끼일 일인 것이다.

 

*현대 공론(1954.8)수록

6.25동란 이후 경제적으로 가난하던 때 쓴 작품.

육체적 가난을 이기고 극복하는 시인의 정신적 긍지가 잘나타난 시.

생에 대한 고귀한 가치관이 죽음의 세계에까지 통찰되었다.

*주제는 본질적 가치에 대한 등지와 신념.

 

 

<上理 果園>

 

꽃밭은 그 향기만으로 볼진대 한강수나 낙동강 상류와도 같은 융륭(隆륭)한 흐름이다. 그러나 그 낱낱의 얼굴들로 볼진대 우리 조카딸년들이나, 그 조카딸년들의 친구들의 웃음판과도 같은 굉장히 즐거운 웃음판이다.

세상에 이렇게도 타고난 기쁨을 찬란히 터뜨리는 몸뚱아리들이 또 어디 있는가. 더구나 서양에서 건너온 배나무의 어떤 것들은,머리나 가슴패기뿐만이 아니라 배와 허리와 다리 발꿈치에서까지도 이쁜 꽃송이들을 달았다. 멧새, 참새, 때까치, 꾀꼬리,꾀꼬리 새끼들이 조석으로 이 많은 기쁨을 대신 읊조리고, 수십 만 마리의 꿀벌들이 왼종일 북치고 소고치고 마짓굿 울리는 소리를 하고, 그래도 모자르는 놈은 더러 그 속에 묻혀 자기고 하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이것들을 사랑하려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묻혀서 누워 있는 못물과 같이 저 아래 저것들을 비취고 누워서, 때로 가냘프게도 떨어져 내리는 저 어린 것들의 꽃잎사귀들을 우리 몸위에 받아라도 볼 것인가. 아니면 머언 산들과 나란히 마주 서서 이것들의 아침의 유두분면(油頭粉面)과 한낮의 춤과 황혼으 어둠 속에 이것들이 찾아들어 돌아오는---아스라한 침잠이나 지킬 것인가.

 

하여간 이 하나도 서러울 것이 없는 것들 옆에서, 또 이것들을 서러워하는 미물(微物) 하나도 없는 곳에서, 우리는 섣불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설음같은 걸 가르치지 말 일이다.저것들을 축복하는 때까치의 어느 것, 비비새의 어느 것, 벌 나비의 어느 것,또는 저것들의 꽃봉오리와 꽃송아리의 어느 것에 대체 우리가 항용 나직이 서로 주고 받는 슬픔이란 것이 깃들이어 있단 말인가.

 

이것들의 초밤에의 완전 귀소(歸巢)가 끝난 뒤, 어둠이 우리와 우리 어린것들과 산과 냇물을 까마득히 덮을 때가 되거든, 우리는 차라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제일 가까운 곳의 별을 가리켜 보일일이요, 제일 오랜 종소리를 들릴 일이다.

 

*현대 공론(1954.11)수록

미당이 자살미수 사건을 일으킨 뒤에 얻어낸 범신론적 낙천주의와 자연을 혈연적으로 대하는 사랑을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주제는 빛과 향기로 충만되는 찬란한 기쁨

*1단락: 과수원에 꽃이 만발하게 핀 정경

2단락: 과수원에 어린 찬란한 기쁨의 세계

*3단락: 인간의 한계성

*4단락: 멀리 해야만 할 설움.

*5단락: 인간의 구원.

*이 작품에 관한 평

___한국시 사상 가장 탁월하게 이룩된 산문시.(천 이두)

*융륭: 물의 양이 많고 높게 가득히 흐르는 모양.

*유두분면: 기름 바른 머리와 분바른 얼굴. 부녀자의 화장한 모양.

 

 

<광 화 문>

 

북악과 삼각이 형과 그 누이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가다가

큰형의 어깨 뒤에 얼굴을 들고 있는

누이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가다가

어느 새인지 광화문 아파에 다다랐다.

 

광화문은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

한국 사람은 흔히 그 머리로부터 외 몸에 흘러 내리는 빛을

마침내 버선코에서라도 떠받들어야 할 마련이지만

왼 하늘에 넘쳐 흐르는 푸른 광명을

광화문---저같이 으젓이 그 날개죽지 위에 싣고 있는 자도 드물다..

 

상하 양층의 지붕 위에

그득히 그득히 고이는 하늘.

위층과 지붕 사이에는 넓다란 다락이 있어

아래층엣 것은 그리로 왼통 넘나들 마련이다.

 

옥같이 고우신이

그 다락에 하늘 모아

사시라 함이렸다.

 

고개 숙여 성 옆을 더듬어 가면

시정(市井)의 분 내음새로 오히려 태고 같고

문득 치켜든 머리 위에서는

낮달도 파르르 떨며 흐른다.

 

*현대 문학 8호(1955.8)수록

민족혼을 추구하기 위하여 지세와 종교 및 민족 정기가 혼연 일체를 이루고 있다.

한국적인 광명 사상이 밑바탕이 되어 있으며, 한국미의 특징인 線의 아름다움이 노래되고 있다.

*주제는 한국적 광명 사상의 고양.

 

 

<동 천(冬天)>

 

내 마음 속 우리 임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현대 문학 137호(1966.5)수록

절대적 가치와 신앙의 대상을 눈썹에다 비기어,거기 대한 그윽한 애정과 종교적인 경건감을 노래하였다.

*시상의 전개

임-초승달-만월(완전성).

*임: 절대적 대상

*눈썹: 초승달. 미완성의 상태

*동지 섣달: 불모의 현실

*새: 인간(시인)

 

 

<신 부>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 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읍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다니는 거라고,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돌아보고 나가 버렸읍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읍니다.

 

그리고 나서 40 년인가 50 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 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 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읍니다.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 때서야 매운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읍니다. 초록 재와 다홍재로 내려앉아 버렸읍니다.

 

시집 <질마재 신화(1975)>수록

신화적 매력을 도입한 시

토속적인 심미 의식이 주조가 되어 있다.

*주제는 영적 세계의 表像

*초록 재와 다홍 재: 신부의 영적 존재의 매력을 가리키는 말.

 

 

<영 산 홍>

 

영산홍 꽃잎에는

산이 어리고

 

산자락에 낮잠 든

슬픈 소실댁(小室宅)

 

소실댁 툇마루에 

놓인 놋요강

 

산 너머 바다는

보름살이 때

 

소금발이 쓰려서

우는 갈매기

 

*문학7호(1966.11)수록

*미당은 <내 시와 정신에 영향을 주신 이들>이란 글에서 다음 분들을 꼽고 있다.

주 요한, 김 영랑, 이 태백, 니체, 석가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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