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그 날이 오면...........심 훈

바보처럼1 2006. 8. 6. 00:55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드리받아 울이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1930.3.1에 쓴 작품

그 날(광복의 날)이 오기만 하면 목숨은 스스로 초개같이 내버려도 좋다는 것이 이 시의 동기가 되어 있다. 이 작품은 일제 36년 간의 저항시 가운데 으뜸으로 치고 있다.

*주제는 조국 광복의 갈망

*영국의 비평가인C.M바우러(Bowra,1898~)는 그의 <시와 정치(Poetry and Politics)>에서 이 시를 세계 저항시의 한 본보기로 들었다." 일본의 한국통치는 가혹했으나, 민족의 시는 죽이지 못했다"고 했고,심훈의 강렬한 공상은 "감상적 착오"에 쾌적한 변형을 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고 지적햇다.

 

 

<밤>

 

밤, 깊은 밤 바람이 뒤설레며

문풍지가 운다.

방 텅 비인 방안에는

등잔불의 기름 조는 소리뿐......

 

쥐가 천장을 모조리 써는데

어둠은 아직도 창 밖을 지키고

내 마음은 무거운 근심에 짓눌려

깊이 모를 연못 속에서 자맥질한다.

 

아아, 기나긴 겨울 밤에

가늘게 떨며 흐느끼는

고달픈 영혼의 울음소리.....

별 없는 하늘 밑에 들어 줄 사람 없구나 !

 

 

<오오, 조선의 남아여 !>

--伯林마라톤에 우승한 孫, 南 양군에게

 

그대들의 첩보(捷報)를 전하는 호외 뒷등에

붓을 달리는 이 손은 형용 못할 감격에 떨린다!

이역의 하늘 아래서 그대들의 심장 속에 용솟음치던 피가

2천 3백만의 한 사람인 내 혈관 속을 달리기 때문이다.

 

"이겼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우리의 고막은

깊은 밤 전승의 방울소리에 터질 듯 찢어질 듯.

침울한 어둠 속에 짓눌렸던 고토(故土)의 하늘도

올림픽 거화(炬火)를 켜든 것처럼 화닥닥 밝으려 하는구나!

 

오늘 밤 그대들은 꿈속에서 조국의 전승을 전하고자

마라톤 험한 길을 달리다가 절명한 아테네의 병사를 만나 보리라.

그보다도 더 용감하였던 선조들의 정령(精靈)이 가호하였음에

두 용사 서로 껴안고 느껴 느껴 울었으리라.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 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

 

*1936.8.10. 새벽 신문 호외이면에 쓴 절필이다.

즉흥시인지라 다소 거칠은 느낌을 주지만, 억압에 짓눌린자의 피끓는 절규는 오히려 더욱더 생생하다..

이 시를 쓴 달포가 지난 뒤인 9월 16일에 심 훈은 한을 머금은 채 작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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