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아침 이미지.........박 남 수

바보처럼1 2006. 8. 7. 22:44

<아침 이미지>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아침이면

어둠은 온갖 물상(物象)을 돌려 주지만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한다.

무거운 어깨를 털고

물상들은 몸을 움직이어

노동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즐거운 지상(地上)의 잔치에

금(金)으로 타는 태양의 즐건운 울림.

아침이면, 세상은 개벽(開闢)을 한다.

 

*시집<새의 암장(暗葬)(1970) 수록

어둠의 이미지를 모던하게 형상화하였다.

*제재는 아침

주로 쓰인 수사법은 활유법.

시상이 응결된 낱말은 개벽

*주제는 이침의 찬가.

*기: 1~2행/ 승: 3~8행 /전: 9~10행 /결: 11~12행.

 

 

<종 달 새>

 

보리밭에 서렸던

아지랭이 영신(靈神)들이 지금은

하늘에서 얼굴만 내어 밀고

군종(群鍾)이 울리는 음악의 잔치가 되어

고운 갈매의 하늘을

      포롱

   포롱

포롱

날고 있다.

흐르고 있다.

포롱

   포롱

      포롱

시냇물 위에 날리는 잔바람에

하늘이 떨어져

파안(破顔)의 즐거운 파문(波紋)

 

*종달새를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생동감을 주고 있다.

"고운 갈매의 하늘"이란 청신한 표현과 "파안으 즐거운 파문"이라는 해학미 넘치는 표현이 멋지다.

*아지랭이의 영신: 종달새

 

 

<초 롱 불>

 

별 하나 보이지 않는 밤하늘 밑에

행길도 집도 아주 감초였다.

 

풀 짚는 소리 따라 초롱불은 어디로 가는가.

 

산턱 원두막일 상한 곳을 지나

무너진 옛 성터일 쯤한 곳을 돌아

 

흔들리는 초론불은 꺼진 듯 보이지 않는다.

 

조용히 조용히 흔들리던 초롱불..... .

*문장 10호(1939.11) 수록

<문장> 추천 작품의 하나.

영상미 넘치는 작품이다.

 

 

<오 수(午睡)>

 

화면에 문지른 짙푸른 빛깔에 묻혀 깔 막는 산가(山家), 바닷속의 숨가쁜 더위가 오수에 졸고 있다. 따가운 볕밭은 반사하는 태양의 거울.

 

나뭇가지에 걸린 바람의 손은 나뭇잎을 흔들었다.

 흔들리는 푸름에서 깨어난 매미가 지지지잉 울었다. 어디선가 수잠을  깬 암매미도 맴 매애앰 하을  하고 있었다.

 

___익어 가는 충만의 시간은 낮잠과 같은 것이었다.

 

*시집<초롱불(1939)> 수록

내부세계의 정신적 충만을 낮잠에 비유하여, 감각적이며 회화적으로 표현한 시이다.

*주제는 휴식을 통한 내적 성숙에의 예지.

 

 

<마 을>

 

외로운 마을이

나른나른 오수에 졸고

 

넓은 하늘에 소리개 바람개비처럼 도는 날.....

 

뜰 안 암탉이

제 그림자 쫓고

눈알 대록대록 겁을 삼킨다.

 

 

<심  야(深夜)>

 

보름달이 구름을 뚫고 솟으면......

 

가무스레한 어둠에 잠겼던 마을이 몸을 뒤척이며

   흘러 흐른다.

 

하이얀 바꽃이 덮힌 초가집 굴뚝에 연기 밤하늘을

   보오얀힌 오르고

 

뜰안에 얼른얼른 사람이 흥성거린다.

 

어린애 첫 울음이 고즈넉한 마을을 깨울 때

바로 뒷방선 개 짖는 소리 요란하다.

 

새악시를 못 가진 나는 휘파람을 불며 논두렁을 넘어 버렸단다.

 

*문잔9호(1939.10)에 추천을 받은 작품 가운데 한 편.그러나 박 남수는 그 이전에 작품을 발표한 일이 있었다. 1938.12월호<시건설>에 '시계', '비극' 두 편의 시를 발표하였다.

 

 

<소품 3제>

---겨울이 가면 봄도 멀지 않으리

 

1

삭풍의 칼이

짜르면,

살이 묻어나는 다사한 온난(溫暖)

온난 끝에

엉그는 부시럼이

터지고,

연연(軟緣)의 눈이 열리면

세상은 꽃.

 

2

눈이 내리는

고갈의 벌을 지키며,

 

고독한 소는 귀를 세우고

수학보다는 확실한 방법으로

풀리는 생성을 믿으면서

강 밑에 흐르는

가만한 것에

몸이 녹는 즐거움을

삭임질

한다.

 

3

그늘에 피는

진달래가 붉어서

물드는 색깔의 잔치날이면

채일의 덤불은,포릉

포르릉 날리는 새의 시발점.

 

 

<신의 쓰레기>

 

천상의 갈매에서

부어 내리는

순금의 별은

다시 하늘로 회수하지 않는

신의 쓰레기

 

아침이면

비둘기가 하늘에

굴리면서

기억의 모이를

쫓고 있다.

다사한 신의 몸김을

몸에 녹히면서,

 

신의 몸김을

몸에 녹히면서

하루만큼씩 밀려서 버려지는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시인들도 종이 위에 버리면서

오늘도 다시

하늘로 귀소(歸巢)하는 비둘기.

 

 

<손>

 

물상이 떨어지는 순간

휘뚝, 손은 기울며

허공에서 기댈 데가 없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손은 소유하고

또 놓쳐 왔을까.

 

잠깐씩 가져 보는

허무의 체적(體績)

 

그래서 손을 노하면

주먹이 된다.

주먹이 풀리면

손바닥을 맞부비는

따가운 기원이 된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손은

빈 짓만 되풀어 왔을까.

 

손이

이윽고 확신한 것은

역시 잡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뿐이었다.

 

*매주 주지적인 시로서 짙은 허무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주제는 허무 의식

 

 

< 새>

 

1

하늘에 깔아 논

바람의 여울 터에서나

속삭이듯 서걱이는

나무의 그늘에서나, 새가 노래한다.

그것이 노래인 줄도 모르면서

 

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두 놈이 부리를

서로의 죽지에 파묻고

다스한 체온을 나누어 가진다.

 

2

새는 울어

뜻을 만들지 않고,

지어서 교태로

사랑을 가식(假飾)하지 않는다.

 

3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純粹)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신태양(1959.3)수록

문명의 비정스러움에 우는 자연의 파괴를 노래했다.

마지막 연에서 새는 포수이 총부리에 희생되기도 하지만 새의 순수는 어쩌지 못한다고 노래하였다.

*주제는 순수를 향한 지향과 그 추구.

 

 

<종 소 리>

 

나는 떠난다. 청동(靑銅)의 표면에서

일제히 날아가는 振幅의 새가 되어

광막한 하나의 울음이 되어

하나의 소리가 되어.

 

忍從은 끝이 났는가.

청동의 벽에

'역사'를 가두어 놓은

칠흑의 감방에서.

 

나는 바람을 타고

들에서는 푸름이 된다.

꽃에서는 웃음이 되고

천상에서는 악기가 된다.

 

먹구름이 깔리면

하늘의 꼭지에서 터지는

雷聲이 되어

가루가루 가루의 음향이 된다.

 

*"나"나 "새" 모두 소리를 뜻한다.

*청동의 표면: 청동으로 된 종의 거죽

*진폭의 새: 소리의 음파

*인종: 참고 복종함.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방공호 위에

어쩌다 핀

채송화 꽃씨를 받으신다.

 

호 안에는

아예 들어오시질 않고

말이 숫제 적어지신

할머니는 그저 노여우시다.

 

___진작 죽었더라면

이런 꼴

저런 꼴

다 보지 않았으련만......

 

글쎄 할머니,

그걸 어쩌란 말씀이셔요.

숫제 말이 적어지신

할머니의 노여움을

풀 수는 없다.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인제 지구가 깨어져 없어진대도

할머니는 역시 살아 계시는 동안은

그 작은 꽃씨를 털으시리라.

 

*문예(1953.11)수록

전쟁시의 제목으로서도 퍽 아이러니칼하게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이다.

*주제는 폐허에서 떨치고 일어난 불사조의 의지.

*4연의 '그것': 전쟁이 낳은 참혹한 현실

끝연: 전쟁이 아무리 참혹하더라도 절망할 것은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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