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길처럼............박 목월

바보처럼1 2006. 8. 22. 00:26

<길 처 럼>

 

머언 산 굽이굽이 돌아갔기로

산 굽이마다 굽이마다

절로 슬픔은 일어.......

 

뵈일 듯 말 듯한 산길

 

산울림 멀리 울려 나가다

산울림 홀로 돌아 나가다.

 

......어쩐지 어쩐지 울음이 돌고

 

생각처럼 그리움처럼......

 

길은 실낱 같다.

 

*문장8호(1939.9) 수록

추천 작품의 하나이다. 추천자 정 지용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__북에는 소월이 있었거니, 남에 박 목월이가 날 만하다. 소월의 툭툭 불거지는 삭주 구성조는 지금 읽어도 좋더니, 목월이 못지 않아 아기지기 섬세한 맛이 민요풍에서 시에 발하기까지 목월의 고심이 크다. 소월이 천재적이여 독창적이었던 것이 신경-감각묘사까지 미치기에는 너무나 "민요"에 시종하고 말았더니, 목월이 민요적 데상 연습에서 시까지의 콤포지션에는 요(謠)가 머뭇거리고 있다. 謠的 수사를 충분히 정리하고 나면 목월의 시가 바로 한국시다.

 

 

<연 륜(年輪)>

 

슬픔의 씨를 뿌려 놓고 가버린 가시내는 영영 오지를 않고.....

한 해 한 해 해가 저물어 질(質) 고운 나무에는 가느른 가느른 핏빝 연륜이 감기었다.....

(가시내사 가시내사)

 

목이 가는 소년은 늘 말이 없이 새까아만 눈만 초롱초롱 크고......

귀에 쟁쟁쟁 울리듯 차마 못 잊는 웃녘 사투리 연류은 더욱 새빨개졌다.

(가시내사 가시내사)

 

이제 소년은 자랐다.

굽이굽이 흐르는 은하수에 슬픔도 세월도 흘렀건만

먼 수풀 질 고운 나무에는 상기 가느른 가느른 핏빛 연륜이 감긴다.......

(가시내사 가시내사)

 

 

<나 그 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을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은 마을 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상아탑 5호(1946.4) 수록.

조지훈의 '완화삼(玩花衫)'에 화답한 시.

소재는 나그네

주제는 한국적인 체념과 달관의 경지

*서정과 서경이 융합된 시

이미지 전개는 "밀-술-놀"이다. 

 

 

<청 노 루>

 

머언 산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오리목

속잎 피는 열 두 구비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총록집(1946)수록

자하산의 청운사를 배경으로 노니는 청노루---그 청아한 풍경을 관조로써 표현하였다.

주제는 아름다운 생명의 고향

*작품상으로 '나그네'보다 더 예술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윤 사 월>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상아탑6호(1946.5)수록

한국적인 애상과 정적미를 노래한 민요풍의 시.

*작자의 말--" 애절한 윤사월의 계절감과, 그것과 조화되지 않는 또 하나의 심정으로 윤사월을 노래했다."

 

 

<모란 여정(餘情)>

 

모란꽃 이우는 하얀 해으름

 

강을 건너는 청모시 옷고름

 

선도산(선도산)

수정(수정) 그늘

어려 보라빛

 

모란꽃 해으름 청모시 옷고름

 

*시집 산도화 수록

소재는 강을 건너는 여인

끝 시행은 인상의 단적인 조화를 보여 주고 있다.

*이우는: 시드는

*해으름: 해거름, 황혼무렵

 

 

<산 도 화>

 

산은

구강산(九江山)

보라빛 석산(石山)

 

산도화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산 도 화 2>

 

石山에는

보라빛 은은한 기운이 돌고

 

조용한

진종일

 

그런 날에

산도화

 

산마을에

물소리

 

짖어귀는 새소리 묏새소리

산록(山麓)을 내려가면 잦아지는데

 

삼월을 건너 가는

햇살아씨.

 

 

<산 도 화 3>

 

靑石에 어리는

찬 물소리

 

반은 눈이 녹은

산마을의 새소리

 

靑田 산수도에

삼월 한나절

 

산도화

두어 송이

 

늠름한

品을

 

 

산이 환하게

티어 뵈는데

 

 

한 머리 아롱진

韻詩 한 구.

 

 

<불 국 사>

 

흰 달빛

자하문

 

달 안개

물소리

 

대웅전

큰 보살

 

바람소리

솔소리

 

범영루(泛影樓)

뜬 그림자

 

흐는히

젖는데

 

흰 달빛

자하문

 

바람소리

솔소리

 

*이 시에는 토씨가 한 자도 사용되고 있지 않아 긴축미를 나타내고 있고, 또 대부분이 명사로 처리되고 있다.


"흰 달빛"의 새벽달 그림자를 배경으로 하여, "큰 보살"의 자비행과 " 물소리 바람소리"의 자연 음색 동화가 이루어져 있다. 이런 물아 일체의 경지 속에서 " 뜬 그림자" 같은 인생 허무의 세계가 들여 있는 것이다.

 

 

<보 살>

 

눈물 어린 자리마다

스르르 풀리면

 

산빛은 제대로

밝아 오는데

 

달빛에 목선(木船) 가듯

조으는 보살

 

꽃 그늘 환한 물

조으는 보살

 

*4연 8행 48자의 구성이면서 조금도 빈틈없이 잘 짜여진 작품이다.

*스르르 풀리는(1연): 자연적 해탈의 경지.

*밝아 오는데(2연): 영원한 윤회의 밝음.

*달빛에 목선 가듯(3연):은은한 자아의 신비경.

*조으는 보살(3연): 대자 대비의 경지.

*꽃 그늘(4연): 깨달음의 경지 

 

 

<빈 컵>

 

빈 것은

빈 것으로 정결한 컵.

세계는 고드름 막대기로

꽂혀 있는 겨울 아침에.

세계는 마른 가지로

타오르는 겨울 아침에.

하지만 세상에서

빈 것이 있을 수 없다.

당신이

서늘한 체념으로

채우지 않으면

신앙의 샘물로 채운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나의 창조의 손이

장미를 꽂는다.

로오즈 리스트에서

가장 매혹적인 조세피느 불르느스를.

투명한 유리컵의

중심에.

 

*시집 무순(무순)(1976)수록.

박 목월의 후기시에서 보편적인 경향을 보이는"현대풍 서정시" 의 한 대표작이다.

시인은 "빈 컵"에서 조차 따뜻한 애정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있는데, 이는 원숙한 인격의 경지에 이르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주제는 따뜻한 세계관의 희열.

 

 

<옥 피 리>

 

물살 흐르는

졸음결에

 

하얀히 삭아서

스며 오른 목숨밭

 

내 색시는 하얀 넋

천만 년 달밤

 

이슬 하늘 찬 달빛에

높이 운다.

 

*소재와 제목이 된 옥피리는경주 박물관 한 구석에 유물로 남은, 선조들의 음악성이 가든 피리이다.

물살(1연); 음악선을 지닌 곡선미.

졸음결(1연): 달관의 세계.

목숨밭(2연): 생활의 유동성

달밤(3연): 은근과 끈기.

찬 달빛(4연): 이성에 의한 냉정한 자아관.

 

 

<동 침(同寢)>

 

너를 보듬어 안고

구김살 없는 잠자리에서

몸을 섞고

너를 보듬어 안고

안개로 둘린

푸짐한 잠자리에

산머리여

너를 보듬어 안고

흥건하게

적셔 적셔 흐르는 강물 줄기에

해도 달도 태어나고

동도 서도 없는

잠자리에

너를 보듬어 안고

적셔 적셔 흐르는 강물 줄기여

너에게로

돌아간다.

 

*까딱 통속적이 되기 쉬울 소재를 예술적으로 고양시키고 있다는 데서 이 시인의 예술적 자질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은 시를 쓰는 마음을 " 정결한 동경과 무한한 아름다움과 영원한 생명의 애절한 꿈을 사모하는 일"이라 말하고 있다.

 

 

<가 정>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 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별을 짜 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초기에는 자연을 즐겨 다르던 목월은 50대에 들어서면서 생활시를 썼다. 이 시에는 냉냉한 현실 속에서 많은 식구들을 감당해야 하는 시인의 모습이 노래되고 있다.

*주제는 아버지로서의 고달픔과 애정 및 연민의 자의식.

 

 

<산 색(山色)>

 

산빛은 환히

밝아 오는데

 

꾀꼬리 목청은

틔어 오는데

 

달빛에 목선(木船)가듯

조으는 보살(菩薩)

 

꽃 그늘 환한 물

조으는 보살.

 

*이 시의 보살은 정적 속에 빠져 들어 가는 작자 자신이다.

보살은 결국 無我靜寂의 이미지를 준다.

*조으는 보살: 자연을 관조하는 것

*꽃 그늘 환한 물: 보살의 靈光이 동해에 비침을 뜻한다.

 

 

<난(蘭)>

 

이쯤에서 그만 하직하고 싶다.

좀 여유가 있는 지금, 양손을 들고

나머지 허락 받은 것을 돌려보냈으면

여유 있는 하직은

얼마나 아름다우랴.

한 포기 난을 기르듯

애석하게 버린 것에서

조용히 살아나고

가지를 뻗고,

그리고 그 섭섭한 뜻이

스스로 꽃망울을 이루어

아아

먼 곳에서 그윽히 향기를

머금고 싶다.

 

*현대 문학 창간호(1955.1)수록

인간적인 절망과 좌절 속에서도 되살아나는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주제는 허물어지고 배반당하는 데서 오는 감상과 애절.

 

 

<산이 날 에워싸고>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고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고 살아라 한다.

 

어느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구름처럼 살아라 한다.

바람처럼 살아라 한다.

 

*청록집 (1946)수록

동양인의 정신적 고향인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심저을 노래하고 있다.

*1연:자연 속의 삶

2연; 자연 속의 야성적인 삶

3연; 자연 속의  생명

*주제는 자연을 향한 동경

 

 

<하 관(下棺)>

 

관이 내렸다.

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내리듯.

주여

용납하옵소서.

머리맡에 성경을 얹어 주고

나는 옷자락을 흙으로 받아

좌르르 하직했다.

그 후로

그를 꿈에서 만났다.

턱이 긴 얼굴이 나를 돌아보고

형님!

불렀다.

오오냐. 나는 전신(全身)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그는 못 들었으리라.

이제

네 음성을

나만 듣는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

너는 어디로 갔느냐.

그 어질고 안스럽고 다정한 눈짓을 하고

형님!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는데

내 목소리는 미치지 못하는.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

 

*시집 (蘭.기타)(1959) 수록

작자가 사랑하는 동생을 잃고 읊은 시이다.

동생을 무덤에 묻는 형의 심정을 이승과 저승의 대비로써 나타내고 있다.

*주제는 생명을 초월한 그리움의 정

 

 

<나 무>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어느 들판에 우두커니서  있는, 한 그루 늙은 나무를 만났다. 수도승일까. 묵중하게 서 있었다.

다음 날 조치원에서 공주로 가는 어느 가난한 마을 어구에 그들은 떼를 져 몰려 있었다. 멍청하게 몰려 있는 그들은 어설픈 과객일까. 몹시 추워 보였다.

공주에서 온양으로 우회하는 뒷길 어느 산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하늘 문을 지키는 파수병일까. 외로와 보였다.

온양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 묵중한 그들의, 침울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그 후로 나는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

 

*나무의 각각 다른 세 가지 모습- 묵중-침울- 고독을 본 작자는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주제는 묵중하고 침울하고 고독한 시인의 삶의 모습.

 

 

<우 회 로(迂廻路)>

 

병원으로 가는 긴 우회로

달빛이 깔렸다.

밤은 에데르로 풀리고

확대되어 가는 아내의 눈에

달빛이 깔린 긴 우회로

그 속을 내가 걷는다.

흔들리는 남편의 모습.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메스를 가아제로 닦고

응결하는 피.

병원으로 가는 긴 우회로

달빛속을 내가 걷는다.

흔들리는 남편의 모습.

혼수 속에서 피어 올리는

아내의 미소.(밤은 에데르로 풀리고)

긴 우회로를

흔들리는 아내의 모습

하얀 나선 통로(螺旋通路)를

내가 내려간다.

 

*시집(청담 晴曇)(1964)수록

아내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아가는 남편의 심경을 노래하고 있다.

그 길은 제목 그대로 멀리 빙빙 도는 그야말로 "우회로"인 것이다.

*주제는 방황하는 마음.

*에데르: 마취약

*나선통로: 나사 모양으로 된 통로

 

 

<바람소리>

 

늦게 돌아오는 장성한 아이를 근심하는 밤의 바람소리

댓잎 소리 같은 것에 어비이의 정이 흐느낀다.

 

자식이 원술까, 그럴 리야

 

못난 것이 못난 것이

늙을 수록 잔 情만 붙어서

못난 것이 못난 것이

어버이 구실을 하느라고

 

귀를 막고 돌아 누울 수 없는 밤에 바람 소리를 듣는다.

적료(寂료)한 귀여

 

*사상계 177호(1968.1) 수록

 

 

<이 별 가>

 

뭐라카노, 저편 강 기슭에서

니 뭐라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라카노 뭐라카노

썩어서 동아밧줄은 삭아내리는데

 

하직을 말자, 하직을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거너는 바람

 

뭐라카노 뭐라카노 뭐라카노

니, 흰옷자락기만 펄럭거리고

 

오냐 오냐 오냐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이승 아니믄 저슬에서라도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라카노, 저편 강 기슭에서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오냐 오냐 오냐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박 목월의 시세계

제 1기 ; 청노루를 노래한 자하산 시대- 민요적인 가락으로 자연과의 교감을 노래했다(시집 '청록집,' '산도화')

제 2기 : 세속으로 내려온 원효로 시대 -6.25동란을 겪으며 원효로 자택에서 일상생활을 노래했다. (시집 '난. 기타.''청담')

제 3기 : 현대적 토속과 영혼의 추구시대 -깊이 있는 내면적 밀도의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집 '경상도의 가랑잎' '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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