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 무(僧舞)>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범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문장11호(1939.12) 수록
한국적 고전미를 노래한 이 시는 작자 19세 때 착상하여 11개월, 집필한 지 7개월 만인 21세 때 완성한 작품,
4연: 禪的 감성이 스몄다.
5연: 급박한 가락.
6연: 명상과 그리움.
7연: 주제연.
8연: 유장한 가락
*주제는 인간 번뇌의 종교적 승화
*나빌레라: 나빌일레라. 나비와 같구나.
<고풍 의상(古風衣裳)>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 끝 풍경이 운다.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에 半月이 숨어
아른아른 봄 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가는 밤
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주빛 호장을 받친 호장저고리
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살살이 퍼져 내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곡선을 이루는 곳
열 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치마 끝에 곱게 감춘 운혜(雲鞋) 당혜(唐鞋)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을 말하는 한 마리 호접
호접인 양 사풋이 춤을 추라, 아미(蛾眉)를 숙이고.....
나는 이 밤에 옛날에 살아 눈 감고 거문고 줄 골라보리니
거는 버들인 양 가락에 밪추어 흰 손을 흔들어지이다.
*문장 3호(1939.4) 수록
고풍이 서린 의상에서 느끼는 전아한 고전미를 노래하고 있다.
1~3행: 배경
4~6행: 저고리의 아름다움
7~8행: 치마의 미
10~12행: 고전미의 화신
13~14행: 고전미와의 일체감.
*주제는 의상으로 본 한국적 고전미.
<봉 황 수(鳳凰愁)>
벌레 먹은 두리 기둥, 빛낡은 丹靑, 풍경소리 날아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위엔 여의주 희롱하는 쌍룡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는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추석)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佩玉)소리도 없다.품석(品石)옆에서 정일품 종구품 어느 줄에도 나의 몸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에 호곡하리라.
*문장 13호(1940.2) 수록
몰락한 고궁을 소재로 하여 우국충정을 읊었다.
*주제는 망국의 설움
'거미줄 친 옥좌' 는 망국을 뜻한다.
<완 화 삼(玩花衫)>
차운 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상아탑 5호(1946.4)수록
목월에게 보낸 시. 이에 답한 것이 박 목월의 '나그네'이다.스스로 나그네가 된 것으로 가정하고 달랠 길 없는 민족의 한을 읊었다.
*주제는 다정 다한
*완화삼: 꽃(花)을 완상(玩)하는 선비의 도포(衫)
<정 야(靜夜)>
한두 개 남았던 은행잎도 간밤에 다 떨리고 바람이 맑고 차기가 새하얀데
말 없는 밤 작은 망아지의 마판 굴리는 소릴 들으며
산골 주막방 이미 불을 끈 지 오랜 방에서 달빛을 받으며 나는 앉았다.
풀벌레 소리도 끊어졌다.
<고 사(古寺)>
목어(木魚)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 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서역 만리 ㅅ길
눈부신 노릉 아래
모란이 진다.
<낙화(落花)>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청록집(1946)에수록
첫 연에서 숙명적인 인생관을 느낄 수 있다.
*성긴: 드문드문한.
<다부원(多富院)에서>
한 달 농성(籠城) 끝에 나와 보는 다부원은
얇은 가을 구름이 산마루에 뿌려져 있다.
피아 공방의 포화가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아아 다부원은 이렇게도
대구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고나.
조그만 마을 하나를
자유의 국토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 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더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황폐한 풍경이
무엇 때문의 희생인가를.....
고개 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자세대로
머리만 남아 있는 군마의 시체.
스스로의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 옆에 쓰러진 괴뢰군 전사.
일찌기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생령(生靈)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 바람에 오히려
간 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
진실로 운명의 말미암음이 없고
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던
이 가련한 주검에 무슨 안식이 있느냐.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은
죽은 자도 산 자도 함께
안주(安住)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사상계(1968.1)수록
6.25동란 때 종군했던 당시의 작품이다.
"다부원"은 낙동강 상류의 조그만 마을로 거기서 피아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다부원의 방어로 대구를 지킬 수가 있었다.
<풀 잎 단장(斷章)
무너진 성터 아래 오랜 세월을 풍설(風雪)에 깎여온 바위가 있다.
아득히 손짓하며 구름이 떠 가는 언덕에 말없이 올라서서
한 줄기 바람에 조찰히 씻기우는 풀잎을 바라보며
나의 몸가짐도 또한 실오리 같은 바람 결에 흔들리노라.
아,우리들 태초의 생명의 아름다운 분신으로 여기 태어나
고달픈 얼굴을 마주 대고 나직이 웃으며 얘기하노니
때의 흐름이 조용히 물결치는 곳에 그윽히 피어 오르는 한 떨기 영혼이여.
<추일 단장(秋日斷章)>
1
갑자기
산봉우리가 치솟기에
창을 열고
고개를 든다.
깎아지른 돌별랑이사
사철 한 모양
구름도 한 오리 없는
낙목(落木) 한천(寒天)을
무어라 한 나절
넋을 잃노.
2
마당 가장귀에
얇은 햇살이 내려앉을 때
장독대 위에
마른 바람이 맴돌 때
부엌 바닥에
북어 한 마리
마루 끝에
마시다 둔 술 한 잔
뜰에 내려 영영(營營)히
일하는 개미를 보다가
돌아와 먼지 앉은
고서를 읽다가......
3
장미의 가지를
자르고
파초를 캐어 놓고
젊은날의 안타까운
사랑과
소낙비처럼
스쳐간
격정의 세월을
잊어 버리자.
가지 끝에 매어달린
붉은 감 하나
성숙의 보람에는
눔발이 묻어 온다.
팔짱 끼고
귀기울이는
개울
물소리
*조 지훈의 시세계와 시집
제1기: 선적인 미의식의 시대
---민족적 정서, 전통에의 향수, 불교적 선미로 노래했다.<청록집(1946),<풀잎단장(1952),<조지훈 시선(1956)
제 2기:민주적 정치적인 사회시의 시대
--- 조국의 역사적 정치 현실에의 참여를 노래하였다.<역사앞에서(1959), 여운(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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